▶ 촬영 중 사망·중상자 1990년 이후 200명 육박, 총기 오발로 세상 뜬 브루스 리의 아들부터 이름 없는 운전기사까지
▶ 유명 배우 아닌 경우엔 소리 소문도 없이 묻혀 벌금만 내면 책임도 면제

‘악어 사냥꾼’이라는 애칭을 지닌 호주의 스티브 어원이 오스트레일리아 퀸스랜드의 동물원에서 9피트짜리 앨리게이터 암컷을 붙잡고 있다. 뒤쪽은 그의 미국인 부인 테리. 스티브 어윈은 호주에서 해저촬영 중 노랑가오리의 꼬리독침에 쏘여 숨졌다.
지난 2012년 영화‘어벤저스’(Avengers)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은 관객들 가운데 출연진과 제작진 이름이 이동자막으로 처리된 엔드 타이틀을 눈여겨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더구나 보조 스탭으로 영화제작에 참여한 존 서틀스의 이름이 누락된 사실을 아는 관객은 전무했다. 그는 이름이 알려진 배우가 아니었다. 중요한 조연도, 촬영 스탭도 아니었다. 서틀스는 영화사에 소속된 트럭 운전기사였다. 그는 LA스튜디오에서 어벤저 세트장이 세워진 뉴멕시코로 자신이 직접 몰고 가야할 트럭을 점검하다가 짐칸 뒤켠에서 떨어져 숨졌다
영화판에서는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매년 카메라 앞뒤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 몇몇이 부상을 입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기까지 한다. 팔다리가 잘려나간다든지 화상을 입거나 소도구로 사용된 흉기에 출연 배우가 절명하기도 한다.
촬영장의 안전사고 하면 흔히 대역연기자인 스턴트맨부터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사다리에서 떨어진다든지, 장비에 깔리거나 안전가드가 없는 기계를 다루다가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영화산업은 제작과 관련한 모든 사안을 꼼꼼하게 기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촬영현장은 어수선해보일지 몰라도 모든 게 치밀한 계획과 철저한 관리 아래 진행된다.
일단 영화가 만들어져 극장에 걸리면 관객들을 끌어 모으기 위한 대대적인 홍보캠페인이 전개된다.
그러나 촬영장 사고는 대부분 소리 소문 없이 묻힌다. 수백, 수천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를 찍다가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영화사는 대부분의 경우 단지 4자리 숫자의 벌금을 내는 것으로 면죄부를 받는다.
AP통신은 최근 자체 조사를 통해 1990년 이후 최소한 43명이 세트장에서 숨졌고 150여명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고 밝혔다. 영화계의 각종 자료와 언론기사 등을 근거로 뽑아낸 수치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AP는 세트에서 발생한 몇몇 주요 사고 기록이 ‘미국직업안전위생국’(OSHA) 데이터베이스에 아예 저장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대표적인 예가 1993년 ‘크로우’(The Crow) 촬영장에서 터져 나온 총기오발사고였다. 이 사고로 주연배우였던 브랜던 리가 어이없이 목숨을 잃었다. 브랜던은 세계적인 쿵푸스타 브루스 리의 아들이다.
당시 OSHA는 사고경위를 조사해 1,500페이지짜리 파일을 만들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기록을 데이터베이스에 입력시키지 않았다. 이에 대해 OSHA 대변인은 담당직원의 단순착오였다고 밝혔다.
물론 해외 로케 중 발생하는 사고도 있다. 지난 8월 26일 부다페스트의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 후속편 세트장에서 현장직원이 사망한 것을 비롯, 지난 2000년 이후 최소한 37명이 숨졌다.
촬영 중 스타가 부상을 당하면 대서특필된다. 2014년 ‘스타 워스’(Star Wars) 7편을 찍다가 다리가 부러진 해리슨 포드가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1982년 빅 모로와 두 어린이의 목숨을 앗아간 ‘트와이라잇 존’ 헬기 추락사고를 추적한 언론인 스티븐 페이버는 “화면에 얼굴이 등장하지 않는 제작지원 일꾼들의 부상은 거의 외부에 노출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브랜던 리의 사망이후 세트장에서의 화기관리가 강화됐지만 OSHA가 당시 사고를 낸 제작사에 물린 벌금은 고작 8만 4,000 달러에 불과했다. 그나마 1990년 이후 촬영장 안전사고와 관련한 최고액의 벌금이었으나 후에 5만 5,000달러로 하향조정 됐다. 반면 브랜던의 유작인 크로우는 5,000만 달러 이상의 흥행수익을 거뒀다.
AP의 조사에 따르면 심각한 사고의 책임을 물어 OHSA가 스튜디오에 부과한 벌금의 거의 절반이 후에 삭감됐다.
서틀스의 추락사에 대해 LA 영화제작사에 떨어진 벌금도 745달러가 전부였다. 벌금형의 이유는 트럭 뒤 칸에 적절한 손잡이를 설치하지 않았고 운전기사들에게 응급처방 키트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서틀스에게는 따로 배상금이 지급되지 않았다. 그의 딸 라넷 레온은 아버지의 산재보험을 받기 위해 힘겨운 과정을 거쳐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촬영장 사고로 죽거나 다친 영화판 뜨내기들에겐 ‘워컴’이라 불리는 산재보험이 유일한 구제책이다. 내부 규정상 소송청구는 아주 예외적인 케이스에만 허용되기 때문이다. 일단 영화사와 고용계약을 체결하고 나면 규정을 따라야 한다.
영화판의 허드렛일 담당자들은 할리우드의 대형 스튜디오와 영화인 관련 노조들을 규합, 광범위한 연합체를 조직한 후 2003년부터 ‘세이프티 패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영화제작에 관여하는 각 분야의 근로자 5,000여 명에게 안전훈련을 실시했다.
세이프티 패스는 올해 수 십만명에 달하는 촬영장 근로자들에게 재교육을 실시하는 야심찬 프로그램을 발진한다.
세이프티 패스는 지난 2014년 2월 카메라 조감독 사라 존스의 사망으로 이어진 조지아주 열차전용교량 사고 등 보다 광범위한 안전논의를 위한 촉매제 역할을 했다.
올해 초 존스의 부모는 LA에 위치한 촬영장을 방문했다. 당시 세트장에는 셜리 맥클레인과 아만다 세이프리드 등 주연 여배우들이 앞으로 나올 영화 ‘더 라스트 워드’(The Last Word)의 한 장면을 찍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묵묵히 그들의 주위에 둘러선 스탭진을 향해 리처든 존스는 딸의 처절한 마지막 순간을 묘사한 후 “촬영장에선 제발 서로의 안전을 챙겨주라”고 호소했다.
그가 말을 마치자 맥클레인은 존스 부부에게 다가가 “우리 모두가 서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셔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리처드 존스는 눈물을 글썽이며 “내 딸이 너무도 사랑했던 영화계를 갈가리 찢어발기고 싶지 않다”며 “대신 우리는 영화산업을 더욱 안전하게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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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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