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놀룰루미술관은 1927년 개관부터 한국관(Korean room)에서 한국미술품을 전시했다. 미국의 미술관들 중 가장 처음으로 한국미술 전시실을 공개한 것이다. 미국에서 두 번째로 한국 전시실을 공개했던 기관은 브루클린박물관(Brooklyn Museum)으로 확인되는데, 그 시기가 1974년이었던 점을 상기한다면, 그보다 약 50여년 앞서 한국 미술을 대중에게 소개했던 호놀룰루미술관의 노력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일본에 의해 대한제국의 국권피탈이 심화되고 식민지화가 진행되던 시기, 미국령에 속했던 하와이 섬에서 한국(Korea)의 이름을 걸고 한국 미술을 대중에게 소개했던 미술관의 행보는 설립자였던 앤 라이스 쿡(Anna Rice Cooke, 1854-1934)에 의해 시작되었다. 선교사의 딸로 태어나 홈스쿨링으로 교육받은 그녀는 미술품에 대한 스스로의 판단과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수준 높은 컬렉션을 만들었고, 총 4,500여점에 달하는 소장품과 개인 저택 부지를 토대로 호놀룰루 미술관을 설립했다. 1927년 미술관의 공식 개관 당시 쿡 여사가 기증한 한국 미술품은 104점이었는데, 그 중 불화, 도자기, 목가구 등 다양한 유물 20여점이 오픈 첫 날부터 대중에게 소개되었다. 당시 전시품을 포함한 쿡 여사의 수장품은 20세기 전반의 한국미술 컬렉션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를 지니는데, 특히 그녀가 수집한 70여점 이상의 고려청자 컬렉션은 양적인 면과 질적인 면 모두에서 상당 수준에 이른다고 평가받는다. 미술관의 한국 사랑은 설립자 이후로도 꾸준히 이어졌는데, 특별한 애정을 보인 인물로는 1947년부터 1963년까지 관장을 역임한 로버트 그리핑(Robert P. Griffing Jr.)이 있다. 그는 관장 재직 시절, 한국 전쟁으로 위험에 처했던 한국국립박물관 소장품의 안전을 위해 호놀룰루미술관을 임시 보관처로 제안할 만큼 한국과 한국 문화재를 각별하게 여겼다. 당시 여러가지 이유로 국내유물의 해외 반출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한국이 전쟁의 총포로 수많은 문화재를 잃어버릴 위험에 처하자 선뜻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그의 행동은 한국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관심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호놀룰루미술관은 1953년 한국 전쟁 휴전 이후 그리핑 관장을 중심으로 미국 내에 한국의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최초의 순회전시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기도 했다. 한국 국립박물관 소장 국보급 유물 200여점으로 구성된 “한국미술명품전 (Masterpieces of Korean Art)” 은 초대 박물관장 김재원 박사의 주도로 1957년 12월부터 1년 6개월 동안 미국 본토 7개 도시를 순회하며 소개되었고, 마지막 8번째로 호놀룰루미술관을 찾아 1959년 6월까지 공개되며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당시 언론 및 관객들에게 찬사를 이끌어낸 이 전시는 전쟁으로 황폐해진 한국의 이미지를 크게 쇄신시키며 호놀룰루미술관을 비롯한 미국 내 유수의 박물관이 한국 미술에 더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 미술관의 한국 소장품은 1927년 쿡 여사의 첫 기증 이후 많은 사람들의 유물 기증 및 후원을 통해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2016년 현재 약 1,100여점에 달하는 한국 유물이 미술관에 등록되어 있고, 그 영역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도자기는 물론 선사시대 석기부터 삼국시대 토도기, 고려시대 금속기, 조선시대 회화 및 목가구를 아우른다. 미술관은 2001년 이후 한국 외교통상부 산하 국제교류재단의 후원으로 재단장한 한국전용 전시실을 상시 운영하며, 매 4개월 주기로 전시품을 교체하여 도자기를 중심으로 회화, 목가구, 직물 등을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다. 지난 한 세기동안 한국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보인 호놀룰루미술관이 앞으로도 변함없이 그 뜻을 지켜갈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의 관심과 사랑을 바라는 마음이다.
* 이번 회를 마지막으로 “호놀룰루미술관 산책” 연재를 마감합니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한국일보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오 가 영
호놀룰루미술관 아시아부 한국미술 담당
한국국제교류재단 파견 객원 큐레이터
<고송문화재단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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