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앓이 70년. 통일의 꿈은 변치 않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서로 삿대질하며 앙앙불락 하고, 때론 야수처럼 물어뜯었다. 미움과 증오의 세월 한편으로 잠시 대화도 하고 왕래하기도 했지만 다시 도루묵이었다. 긴 침묵과 ‘인내’는 이어지고… 이 역류의 계절에 다시 통일이란 절대 화두를 꺼낸 사람이 있다. 류재풍 박사(74). 머리가 희끗하도록 볼티모어에 소재한 로욜라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쳤던 교수이지만 이제는 ‘원 코리아 연합’ 공동의장이란 이름으로 더 다가온 그다. 광복 70주년을 맞으며 워싱턴에서 전례 없는 대규모 통일 축제 행사를 준비 중인 그를 만났다.
-의회 만찬과 링컨 기념관 앞에서의 축제 등 대규모 통일행사를 개최한다. 취지가 뭔가?
곧 미 대선 토론회가 열릴 것인데 북한 문제가 대두될 가능성이 높다. 이란과의 핵 협상이 타결되면서 유대인의 파워를 업은 정치세력들이 반(反) 이란 정치공세를 북한 문제에 연계시켜 펼 가능성이 많아졌다. 그러나 정작 한국의 총선정국에서는 북한과 통일문제가 대두될 가능성이 적은 편이다. 우스운 이야기다. 한국과 미국의 선거정국에서 북한 문제가 쟁점이 돼 통일의 열기가 고조되게 해야 한다,
또 젊은이들이 통일의 주역이 돼야 하나 관심이 없다. ‘우리의 소원’ 같은 통일의 노래는 나 같은 구세대들이나 부르지 젊은 세대들에는 설득력이 없다. 그래서 새로운 통일의 노래를 만들어 보급시키려 하는 것이다. 통일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열정을 환기시키자는 것이다.
-14일(금) 의회 캐넌 코커스 룸에서의 만찬에는 누가 참석하나?
한미 양국의 오피니언 리더 150-200명이 참석할 것이다. 언론계, 학계, 외교계는 물론 한인 단체장들도 초청했다. 만찬을 겸해 통일의 열기를 지피자는 것이다. 벤 카딘 등 연방 상원의원 4명과 하원의원 12명이 이번 만찬의 공동 초청자다.
-15일(토) 링컨 메모리얼 광장에서의 통일축제는 어떻게 꾸며지나?
광장 앞에 가설 무대가 설치된다. 유명 가수인 양파와 나윤권이 히트 곡을 부르고 둘이서 새로운 통일의 노래인 ‘원 드림, 원 코리아’를 합창하게 될 것이다. 작곡가인 김형석 씨도 참가한다. 통일 선언문도 발표된다. 지난 5개월 동안 고심을 거듭하고 자문을 받아가며 기초한 것이다. 같은 날 동경의 히비야 공원에서도 같은 행사가 열리며 서울에서는 10월9일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서 6만명 규모의 새 통일 노래 및 통일선언문 발표 행사가 열린다. 워싱턴 행사는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SBS를 통해 방영될 예정이다.
-왜 남북통일을 해야 하나?
통일을 꼭 해야 하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북한 주민들을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줘야 한다. 둘째, 항상 전쟁위기로 떠는 불안감을 해소시켜주자는 것이다. 북 핵이나 인권문제는 통일이 안 되면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셋째는 신라의 삼국통일 이래 1천500년 동안 우리는 단일국가로 살아왔다. 유구한 역사 속의 통일된 국가로 다시 되돌아가자는 거다. 그것은 사회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난 숙명이다. 그러나 우리의 통일은 미-소의 꼭두각시였던 1945년의 상태로 가자는 게 아니라 재통일(Reunification)이어야 하고 새로운 차원의 통일이어야 한다. 전 세계적인 불황기에 접어든 요즘 통일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한국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노동력과 지하자원, 소비자들이 결합하면 상상을 초월한 대박이 터진다.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통일은 이뤄진다.
-지난 70년 동안 남북 정권 공히 통일의 실천에는 관심이 없었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일본도 한반도 통일에 부정적 입장이었다. 통일은 과연 가능한 것인가?
19세기 후반부터 한국은 외세에 당하고만 살았다. 내 할아버지는 3.1운동 후 일경에 체포돼 옥고로 인해 돌아가셨다. 나라를 빼앗기고 분단되고… 학창시절에는 조상들이 못난 줄로만 알았다. 힘도 없고 세계의 흐름에 대한 지식도 없고 90% 이상이 문맹에 95%가 농민이었다. 통일을 하고 싶어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지금은 통일을 못 한단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 유엔 사무총장, 세계은행 총재 모두가 한국인이다. 통일을 하려면 싸움으로 지새운 과거를 돌아보면 답이 안 나온다. 미래를 보고 해야 한다. 다행히 국제환경도 우호적이다. 독일은 영국과 프랑스 등 주변국의 반대가 심각했지만 통일을 했다. 미국은 물론이지만 중국도 한국 주도의 통일을 지지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중요한 건 우리의 의지다. 국민들이 마음을 모으면 된다.
-평생 후학들에게 사회학을 가르치는 대학교수로 살아왔다. 은퇴 후에 남북통일 운동에 매진하는 계기가 있나?
내가 태어난 곳이 함흥이다. 아버지께서 은행 지점장으로 파견 나가 계셨다. 해방되던 해에 서울로 와서 쭉 장성했다. 그 후로도 부자는 아니지만 큰 어려움 없이 유복한 삶을 살았다. 대학 교수 은퇴 후에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생각해봤다. 여행과 글쓰기도 좋지만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내가 아직 북한에 남아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를 생각하면 북한 주민들의 참상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친구로 ‘통일은 대박이다’란 책을 펴낸 신창민 교수의 영향도 받았다. 무엇보다 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좋은 학교 나오고 유복한 환경에서 살았는데 북한에서 고생하는 동포들을 보면 뭔가 갚아야 할 책무 같은 게 생겼다. 가만히 있으면 죄책감이 들고 맘이 편치 않아 늦게나마 나서게 된 것이다.
-지금 하는 통일운동의 종착지는 어디까지인가?
통일의 열기에 불을 붙이는 불쏘시개 역할만 했으면 한다. 한국과 미국의 대선 정국에서 통일화두가 쟁점이 되고 그 열기가 고조되면 내 역할은 끝날 것이다.
■류재풍 교수는
1941년 함흥 생. 1945년 11월 월남. 서울고와 서울대 법대 졸업 후 미네소타대에서 사회학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두 대학을 거쳐 1976년부터 가톨릭 학교인 로욜라 대 사회학과 교수로 2012년까지 봉직했다. 현재는 명예교수이며 원 코리아 재단 대표이자 원코리아연합 공동의장이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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