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TED)는 대중들에게 삶과 태도, 그리고 세상을 바꾸는 힘을 가진 아이디어들에 관한 강연을 제공하는 비영리 단체다. 학자와 기업인, 각계 전문가들이 강연자로 나서는 테드 강연은 동영상으로 무료 배포돼 뜨거운 인기와 호응을 얻고 있다. 대중들에게 지적 자극을 제공하는 새로운 소통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수많은 테드 강연들 가운데 지금까지 가장 많은 조회 수를 기록하고 댓글도 가장 많이 달린 것은 영국의 교육자이자 작가인 켄 로빈슨 경이 지난 2006년 했던 강연이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찾아 본 이 강연의 제목은 ‘학교는 어떻게 창의성을 죽이나’(How Schools Kill Creativity)이다. 로빈슨은 잘못된 교육의 결과로 ‘학습능력’ 즉 공부 잘하고 성적 좋은 것이 곧 지성이라는 잘못된 생각이 우리를 지배하게 됐다고 꼬집는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엄청난 조회 수는 교육에 대한 관심에 동서양이 따로 없음을 확인시켜 준다. 그런데 로빈슨의 강연을 듣다 보면 마치 한국의 교육현실을 꼭 집어내 비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그만큼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지적한 책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가 지난해 한국에서 출간돼 화제가 됐다. 책을 쓴 교육공학자 이혜정 교수는 4.3점 만점에 평균 4점 이상을 받은 서울대 2, 3학년 최우등생 46명을 심층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그들의 공부비법을 알아보려 했다.
그런데 조사를 했더니 애초의 긍정적 의도를 난처하게 만드는 결과가 나왔다. 인터뷰에 응한 최우등생들 가운데 87%가 “교수의 강연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받아쓰고 이를 시험 답안지에까지 그대로 옮긴다”고 밝힌 것이다. ‘비판적 사고’가 아닌 ‘수용적 사고’가 한국 최고 명문이라는 서울대 최우등생들의 비법이었던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1학년 때 자기 생각을 주로 써냈다가 참담한 성적을 받은 경험이 있는 많은 학생들이 2학년부터는 비판적 사고를 포기하고 수용적인 우등생의 길을 택한다는 사실이다. 교육이 창의성을 키워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이를 죽이고 있다는 실증적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서울대 최우등생들의 학습방식을 보면 수십년 전 대학 강의실 풍경과 어찌 그리 똑같은지 놀랄 정도다. 그때도 강의실 가장 앞자리에 앉아 교수의 말을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귀 기울이며 토씨 하나까지 따라 적던 학생들이 학점 좋고 공부 잘한다는 말을 들었다. 시대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사회가 요구하는 지식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졌는데도 한국의 우등생 패턴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학생은 늘고 교수는 줄면서 미국 대학들이 많이 망가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요구하는 수업방식이 한국보다는 더 보편화 돼 있다. 고등학교 때까지 한국식 공부로 뛰어난 성적을 올려 좋은 대학에 들어간 한인 학생들은 종종 이런 분위기에 애를 먹는다.
이민사회에서 자녀들의 명문대 입학은 부모들에게 가장 큰 보상이 된다. 그리고 이런 목표를 이루는 데는 수용적 사고가 당장은 더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에 길들여지면 창의적인 인재로 자라기 힘들다. 아이비리그와 스탠포드, 버클리 등 미국 내 14개 명문대학에 입학한 한인 학생들 가운데 40% 이상이 중도 탈락한다는 컬럼비아대학의 한 박사학위 논문 내용은 수용적 사고에 길들여진 학생들의 한계를 통계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삼성과 애플 간 격차에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관리’와 ‘혁신’이라는 이미지로 대표되는 두 기업의 문화차이가 이런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또 매년 노벨상 시즌만 되면 한국인 수상자가 없음을 아쉬워하면서 다른 나라 수상을 부러워하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온다. 지난 연말도 어김없이 그랬다. 하지만 한국 최고 엘리트 교육기관의 최우등생들 면면을 보노라면 앞으로도 노벨상과의 잦은 인연은 기대하기 힘들겠다는 암울한 생각이 절로 든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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