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떠남의 계절이라면, 겨울은 정적과 죽음의 계절이라 하겠다. 겨울이 오면 부활의 봄이 머지않다고 하지만, 그래도 겨울에는 고단한 인생길을 더욱 더 돌아보게 된다. 우리의 삶에서 ‘허무’란 단어는 꽤 친근하다. 그것은 우리가 극히 유한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제 갓 40대의 직장동료 여성은 아침에 깨어보니 옆에 자던 남편이 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전날 잠자리에 같이 들었던 남편이 차가운 시체가 된 것이다. 이럴때 ‘허무’란 표현 밖에는 달리 말할 수가 없다.
성경에는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흔히 인생을 일장춘몽, 또는 나그네 길이라 말한다. 물론 이 세상에는 의식주만 해결된다면 그 외 것은 사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인간이 의식주 해결로 모든 욕구가 해결된다면 그 삶은 동물과 다를 것이 없겠다. 인간은 살기를(live) 원하지, 다만 존재만(exist)으로 만족할 수 없다. 그래서 삶의 의미나 목적, 또는 사명을 모르고 사는 삶은 진정한 삶(life)을 산다고 말하기 힘들다. 버지니아 맥클린 바이블 교회의 담임목사 론 솔로몬은 젊었을때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았으나, 예수를 만나기전까지는 삶의 의미를 몰라 사는 것이 참 고통스러웠다고 고백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헤밍웨이의 작품의 일관된 주제는 ‘허무’이다. 노벨문학상 작품인 ‘노인과 바다’에서 이 주제는 뚜렷하게 돋보인다. 그는 결국 엽총으로 자살함으로 생을 끝냈다. 그의 단편 ‘깨끗하고 봄빛 환한 곳’의 한 장면에는 텅 빈 술집에서 알코올 중독자인 한 고독한 남자가 홀로 술을 마시며 중얼거리는 모습이 나온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허무하게 빛나시며, 그 나라가 허무하게 임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허무하게 이루어지소서. 오늘 우리에게 허무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허무하게 용서하듯 우리의 죄를 허무하게 용서하시고, 우리를 허무한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허무한 악에서 허무한 우리를 구하옵소서. 허무한 주의 이름으로 허무하게 아멘’. (최인호의 유고집 ‘눈물’에서)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와 온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고, 또 우리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말한다. 그래서 명상가 파스칼은 ‘우리 가슴에는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빈 공간이 있다’라 말했고, 성 어거스틴은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 그 품에 안기기까지는 진정한 안식은 없다’라고 말했다. 가슴에 이 공간이 채워지지 않고, 마음에 평안이 없기 때문에 술이나 마약, 성, 도박, 또는 폭력은 이 빈 자리를 채우려는 몸부림이 아닐까?
모든 피조물의 목적과 용도는 그것을 만든 사람 만이 알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기독교인들은 그 인생의 의미와 목적, 인생길의 지침을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깨닫는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만이 우리의 존재 이유를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지도요, GPS이고, 건물 청사진이요, 조립 설명서이다. 세상의 찰나적이고 유한적인 것으로 우리 마음의 빈 공간을 메꾸려는 노력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를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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