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데이빗 강 USC 한국학연구소장
▶ “미국인들‘코리아’인식 무관심할 정도로 빈약해, 한인 2, 3세도 민족 유산 지키고 전승할 책임 커”
한국계 2세인 데이빗 강 USC 한국학연구소장이 한반도 연구의 의의를 설명하고 있다.
“ 비한인들에게‘코리아’를 제대로 알게 하는 게 목표입니다”
언뜻 보면 영락없는 미국인으로 보이는 수려한 외모이지만, 강씨 성을 가진 그의 피에는 ‘한국’이 흘러넘친다. 미 서부를 대표하는 한국학 및 한반도 전문가로 꼽히는 데이빗 강(49·한국명 강찬웅) USC 한국학연구소장이다. 북한지역 평안북도 출신의 한국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를 둔 한국계 2세로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어도 곧잘 구사하는 강 소장은 “실향민인 부친으로부터 북한 이야기를 많이 들으며 자라 자연스럽게 한반도의 분단과 동아시아 문제에 깊이 빠져들게됐다”고 말한다. 지난 2009년부터 5년째 USC 한국학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강 소장은 본보와의 특별 인터뷰에서 “사실 미국 사람들은 코리아하면 ‘북한과 남한’이 존재한다는 사실만 알뿐 그 이상은 무관심에 가깝다”며 “우리 연구소를 미국 최고의 한국학연구소로 키워 한국과 미국 양국의이해를 돕는 연구기관으로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데이빗 강 소장과의 일문일답.
-USC 한국학연구소 설립된 지 19년이 흘렀다
▲우선 우리 한국학연구소는 ‘코리아’ (한반도)를 중심으로 동북아 지역 연구에 충실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10년 전에는 전임교수가 1~2명에 불과했다. 2006년 도산 안창호 하우스가 연구소 단독건물이 된 뒤 한국학 전임교수가 5명으로 늘었다. 특히 USC 재학생 중매년 500여명이 한국학을 부전공으로 선택한다. 미국에서 한국학연구소 자체 건물을 확보한 곳도 USC가 유일하다.
-부임 당시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미국 대학 내 여러 한국학연구소가 존재하지만 ‘간판’만 내건 경우도 많은데, 제대로하고 싶었다. 한반도를 연구하고 이를 미국 사회에 알릴 ‘좋은 학자’를 확보하는데 노력했다.
그 결과 현재 한국학 전임교수만 다섯 분이 계신다. 또한 교수님들과 각종 연구를 진행하는석·박사 연구원도 약 13명이다. 한국학연구소연구 인원이 하버드나 컬럼비아보다 많아졌다.
그만큼 다양한 학술연구와 한미 양국을 이해하는 연구사업 진행이 가능해졌다.
-USC 한국학연구소가 중점을 두는 것은
▲연구소장으로서 내가 바라는 점은 ‘미국인’ (비한인)에게 코리아를 알게 하는 것이다.
미국 주류사회에 남한과 한반도라는 지역 본연의 모습을 접하게 하고 싶다. ‘한국을 세계에 알리자’라는 모토를 갖고 있다. 아시아에서 한국의 위상은 커졌는데 미국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잘 모른다.
-한국을 알리기 위해 어떤 활동을 펼치고있는가
▲교내에서 한국학연구소는 한국과 연관된 강좌를 1년에 약 20개 개설하고 있다. 대학생과 대학원생 등 한 해 500~600명이 강좌를 수강하며 ‘코리아’를 배운다. 미국 정규학교 교사 초청 연수, 한국 파병 미군 간부 대상 한국연구와 문화 교육도 정기적으로 진행한다. 이밖에 한반도 이슈에 관한 세미나와 강연에 일반인을 초청하고 있다.
-한국을 알리는 일이 왜 중요한가
▲나는 국제관계 및 경영학 교수로 학생 200여명에게 동북아 지역을 가르친다. 미국 학생들은 동북아 하면 아직도 ‘중국’이나 ‘일본’을 떠올리고 관심을 갖는다. 반면 남한이나 한반도는 아직도 모른다. 하지만 미국 뉴스를 보라.
‘북한,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삼성’ 등등 관련 뉴스가 참 많다. 그만큼 한반도는 미국에 굉장히 중요하다. 현재 남북한은 세계에서 중요한 나라가 됐다. 한국은 20세기 경제발전에 성공했고 민주화도 평화롭게 이룩했다. 미국 사람들은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와 ‘한반도’란 존재를 꼭 알아야 한다. USC가 미국 정규학교 교사들에게 한국 역사와 문화 교육에 나서는 이유도 그 파급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주류사회의 한반도에 대한 인식은 어느 정도인가
▲미국 사람들은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남한인가, 북한인가?”라고 묻는다. 요즘 데니스로드먼 방북 소식이 미국 사람들 사이에서 ‘웃음거리’로만 회자된다. 사람들이 아는 한반도에 관한 지식은 굉장히 얇다.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는 약 100명 정도 활동하는데 중국이나 일본 연구와 비교하면 굉장히 규모가 작다. 한인사회와 미국 내 한국학연구소가 분발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어도 잘 한다. 어릴 적은 어땠나
▲아버지는 평안북도 정주 출신으로 ‘실향민’이다. 아버지 가족은 1947년 월남했고 아버지는 서울대 물리학과에서 공부했다. 1955년 장학생으로 UC버클리로 유학 온 뒤 한국어를 공부하던 어머니를 만나 3년 뒤 결혼했다. 어머니는 한국에 가서 영어교사를 할 것인지, 한국 유학생과 결혼할 것인지 고민하다 결혼을 택했다. 이후 할아버지와 고모들 모두 미국으로 이민 와 베이지역 리버모어에서 대가족으로살았다. 어릴 때부터 김치와 한식을 주로 먹었고 한국어를 사용했다. 아버지는 늘 한국에 관한 이야기를 내게 해주셨다.
-한반도를 연구하게 된 계기는
▲아버지게서 내가 어릴 적 북한 고향에 대해서 많이 말씀해 주셨다. 아버지의 고향이 어떻게 생겼는지, 왜 갈 수 없는지가 궁금했다.
자연스럽게 남북한의 분단 원인에 대한 관심을 키웠고 1987년 한국의 정치 격변기를 한국에서 직접 체험했다. 이후 한반도 문제에 깊숙이 빠져들게 됐다.
-2~3세에게 정체성 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한국학연구소를 운영하며 발견한 사실은한인 2~3세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혼란스러워한다는 점이다. 이민 1세들은 자녀들이 한인이란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주류사회에서 성공하길 바란다. 반면 2~3세 대부분은 어쩔수 없는 상황 속에 영어만을 구사한다. 1세대와 2세대가 공유하는 가치가 서로 떨어져 있음을 느낀다. 미국에서 태어난 2~3세들은 수세기 동안 살아남은 한국의 역사를 배우고 가족들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공유할 필요가 있다. 정체성 교육은 어려운 일이지만 또 그만큼 중요하다. 이민 1세, 한인 2~3세 모두 한인사회가 쌓아온 유산을 지키고 전승할 책임이 있다.
-한반도 통일 전망을 어떻게 보는가
▲나는 한 번도 한반도 남과 북을 서로 남남인 ‘독립국가’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코리아는 고려시대부터 하나의 나라였다. 우리 모두‘남한이 북한이 변하도록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가’라는 고민을 해야 한다. 2014년 북한은 1990년이나 2002년과 다르다. 느리고 작은 변화이지만 국가의 통제력은 줄어들고 외국 교역에 의존하는 경제구조가 파고들고 있다. 이런변화는 올바른 방향이라고 본다. 북한 정치가변해 자유가 퍼지고 경제가 개방되는 등 그쪽이 현 국제사회 일원이 되길 바란다.
-한인사회에 하고 싶은 말은
▲USC에서 공부하는 한반도 전문가들이미 전역 곳곳에서 남북한 코리아를 알리도록한인사회가 앞장서 달라. 우리 연구소가 발전기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한인사회가 계속 관심을 갖고 후원해 주길 부탁드린다.
■데이빗 강 소장 약력
▲1965년 출생
▲1988년 스탠포드대 우등 졸업
▲1995년 UC 버클리 정치학 박사
▲1995-2008년 다트머스 칼리지 교수
▲2009년 USC 국제관계 및 경영학 교수부임
▲2009년 USC 한국학연구소장 취임
▲저서
-‘서방에 앞선 동아시아: 5세기에 걸친 무역과 공물’(2010)
-‘중국의 부상: 동아시아의 평화, 권력, 그리고 질서’(2007)
-‘북한의 핵-햇볕정책 논쟁’(2003, 공저)
-‘편파 자본주의: 남한과 필리핀의 부패와개발’(2002)
<김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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