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년 미국생활 순간순간 시어에 담아...시는 나의 삶
<사진=함지하 기자>
어려선 육당 댁에서, 커선 양주동 박사 아래서 문학 배워
도미후 생업에 종사하면서도 시상 떠오를 때마다 메모
“역사를 모르고 시 쓸 수 없어...본질에 가까이 가도록 노력해야”
비즈니스를 활발하게 하면서도 시작(詩作)을 위한 메모를 쉬지 않고 남겼다는 김윤태 시인, 그는 한국일보 문화센터 김윤태문학교실을 통해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고 본인도 시집, 수필집 15여권을 펴냈다. 그의 문학 이야기를 들어본다.
●시를 쓰는 것은 팔자
미국에서 모국어로 시를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김윤태 시인은 그것을 ‘팔자’라고 말한다.“여러 번 그만 두려고 시도했으나 다시 쓰게 되었다. 시 쓰는 것은 팔자이다. 50여년 전 미국에 온 것을 후회 안한다. 젊은 시절 꿈도 희망도 있었고.....”그는 작정하고 시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아무 때나 시상이 떠오르면 쓴다. 식당 내프킨에도 쓰고, 운전하고 가다가 차를 세우고도 쓰고......”
현재 그는 19년째 한국일보 오피니언난으로 한달에 두 번 독자를 만나고 있다.
1940년도 충남 공주 출생인 김윤태는 교육자 집안에서 많은 책을 읽으며 성장했다. 일제하 학무국장으로 조선어 학자들을 남몰래 도와주던 할아버지가 사학자ㆍ시조시인 육당(六堂) 최남선 선생과 친구였기에 김윤태 소년은 초등학교 시절 잠시 서울의 육당 댁에 있었다. 당대 유명시인, 스님들이 집을 드나들었고 자연히 문학이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6학년때 서울시에서 현상 모집한 동시 ‘눈’으로 특상을 차지했고 58년 고등학교 3학년때는 문교부 주최 전국백일장 장원, 다음해인 59년 대학 1학년때도 연속장원하자 리버티 뉴스에 소개됐고 최초로 생긴 TV에 모윤숙 시인과 1주일간 문학에 관한 대담을 한 적도 있다.
당시 신흥대학(현 경희대학) 교수인 국문학자 양주동 박사가 그에게 연락, ‘국문학자로 키우고 싶다“고 해 4년이상 문학에 대해 배우기도 했다. 20대의 김윤태는 천재 시인이자 기인으로 소문난 김관식(金冠植) 시인과 교유하며 문학정신의 중요함을 체득했고 박인환, 신봉승 등 문인들과 어울렸다.
“명동의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박인환 시인은 ‘세월이 가면’ 시를 썼고 이진섭은 바로 작곡을 하는 것을 보았다. 당시 어린 나는 문인들의 심부름꾼으로 사랑을 받았다.” 김윤태는 “지금 그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을 내가슴에 있네”로 시작되는 명동 엘러지가 탄생한 현장에 있었고 전후문단을 이끌던 문인들이 거의 사망한 지금, 그 시절 산증인이다.
하지만 그가 시를 쓰자 집안의 반대는 심했다. 철도국 말단공무원인 아버지는 7남매의 장남인 그에게 ‘글 쓰지 마라, 판검사가 되라’고 했고 어머니는 당시 서울 장안에 개인으로 유일하게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있을 정도로 친정이 부자였으나 결혼 후 피아노 레슨으로 살림에 보태어야 했다.
●문학신동이 생업에 뛰어들다
1964년 대학 3학년때 미국에 유학온 김윤태는 마이애미 플로리다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다가 생활비를 벌고자 방위산업회사에 취직했다. 당시 마이애미에서 그가 길을 지나가면 사람들이 서서 구경할 정도로 동양인이 드물었다.
3년 후 부사장으로 승진할 정도로 회사의 신임을 받았지만 미 행정부가 쿠바 난민을 허용하자 마이애미 공항이 난민촌이 되고 다운타운이 본토 흑인들과 쿠바 난민들의 싸움으로 시끄러워졌다.
그는 미련없이 아틀랜타로 이주, 직장 경험을 기반으로 72년 식품공장 도매상을 대대적으로 차렸다. 미동부 지역 최고 도매상으로 50명의 직원을 데리고 대만, 홍콩, 필리핀, 한국산 라면과 간장 등 총판을 차려 돈을 엄청 벌었다. 그러다 불시에 들이닥친 FDA 직원에 의해 식품위생법에 걸리고 결국 수백만 달러의 박스제품을 아틀랜타 쓰레기장에 버리고 미련 없이 78년 뉴욕으로 터를 옮겼다.
맨하탄 42가 5애비뉴에 델리 식당을 크게 열었는데 불경기가 닥치면서 3년 8개월만에 문을 닫았다. 크게 벌었다가 크게 망하곤 하는 모든 비즈니스에서 손 뗀 김윤태는 ‘아, 글을 쓰자’고 결심했다.그는 1년간 집에서 칩거 하면서 시를 썼다.
그동안 열심히 생업에 종사하면서도 시인으로서의 습성은 버리지 못해 레스토랑 내프킨에, 식품상 수첩에 메모를 해왔고 그것은 메가 박스들이로 남아 시로 탄생했다. 이때 쓴 시가 모여 1992년 첫 번째 시집 ‘우리 숲속으로 가지 않으련’이 탄생했다. 이후 세탁소를 20년 동안 하면서는 시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그러자 상복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뉴욕한인이 문학상 대상받다
김윤태는 순수문학상 본상 수상(제2회), 문예사조문학상(제6회), 대한민국 펜 문학상, 영랑 문학상 본상(제1회) 등을 수상했는데 2001년 한국시연구협회 제정 제1회 이육사 문학상을 받으며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본인이 한국에서 제정한 문학상 대상자로 선정돼 영광스럽다”고 소감을 밝힌 바 있다.
뉴욕에 30년 이상 살면서 그는 미동부문인협회 창립회원ㆍ부회장ㆍ이사장, 한미문학가협회 창립ㆍ한미문학가협회 창립고문,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미동부지역 위원회 초대회장, 월간순수문학 편집위원 및 심사위원, 계간 문예운동 심사위원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왕성한 창작의욕은 ‘아사달’, ‘원효의 무릎을 베고’, ‘사랑이여 보아라’, ‘하대리에 부는 바람’ 등의 9권 시집과 수필집 ‘거기에도 무궁화 꽃은 있네’, ‘뉴욕에서 세상보기’ 등으로 결실을 맺었다. 수십년간 미국에 살아오면서 스쳐간 순간순간들을 주옥같은 시어에 담았다. 먹고살기 위해서 해온 경험들이 녹아 문학이란 꽃으로 피어났다.
그는 문학에 관한한 엉터리나 허술한 것에는 양보가 없다.
“한국문학을 하는데 두 부류로 나눈다면 순수문학을 지향하는 부류, 취미로 하는 부류이다. 순수문학을 하고자 하면 한국 문단에 도움이 되는 게 좋다. 한인동포들도 한국문단에서 상을 타고 인정을 받고 한국문학사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
“역사를 모르고서는 문학을 할 수 없다. 시를 쓰려면 본질을 알아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본질론을 안 다음 시학을 알아야 한다. 이 본질에 가장 가까이 가도록 하는 사람이 시인이다.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시인은 무엇을 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말하느냐를 알아야 한다.”
그는 요즘 4권의 책을 준비하고 있다. 시집 ‘열차 한잔 그리운 겨울 거리’. 수필집 ‘김윤태 수상수필집’, ‘김윤태 수필집’, ‘김윤태 칼럼 수필집’이다.
그는 자신의 시세계를 빛나게 이루면서 8년 이상 뉴욕한국일보 문화센터 김윤태 문학교실을 통해 24명의 제자를 길러냈다. 그들은 월간 순수문학, 문예운동을 통해 한국문단에 등단했다.
“한국에서 심사위원들이 시가 훌륭하다, 참 잘 가르쳤다는 말을 들으면 자랑스럽다. 영랑문학상 본상을 탄 제자도 있다. 3년 전 건강이 안좋아지면서 문학교실을 그만 두게 되었다. 내년쯤 뉴저지에서 다시 열 생각이다.”
수 년 전부터 허리병으로 집안에서만 지내야 했는데 젊은시절, 아틀랜타에서 식품점을 하며 직접 무거운 짐을 나르는 막노동으로 척추에 금이 가는 부상을 입었던 것, 나이가 들면서 척추의 금이 벌어지면서 3년이상 심각한 고통 속에 살았다. 1년 전 대수술을 했고 현재 건강을 회복 중이다.
김윤태는 부인 박애자씨와 슬하에 2남1녀를 두었고 큰딸은 약사, 큰아들은 월가 투자회사, 막내아들은 자전거로 대륙횡단을 한 유명 여행가이다. 손자손녀가 5명이다. “있던 흔적, 없던 흔적이, 이 나이에 모든 것이 없어지고 있다. 없다는 것은 허무한 것이다. 70이 지나고 나니 다 허무하다. 그래도 철학이 있고 문학이 있어 다행이다”며 그는 ‘시 사랑’으로 인터뷰를 마감했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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