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외상후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사람들
▶ 극도로 쇠약해진 심신에 튜브 연결·진정제 대량 투여 땐 강간·고문 등 환각공포 경험… 퇴원 후에도 장기간 고통
리지아 던스워스 는 CI U 병실에 입 원하고 있던 중 심한 환각과 환 영에 시달렸다.
리지아 던스워스(54)는 물가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호수나 바다는 그녀에게는 엄청난 공포감을 안겨준다. 원래 물을 두려워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바다나 호수를 멀리하기 시작한 것은 수년전 포트워스 병원의 중환자실(ICU)에서 끔찍한 환각에 시달린 이후의 일이다. 당시 복부감염과 수술로 심신이 극도로 쇠약해진 리지아는 기관에 튜브가 주입된 상태로 침대에 묶여 있었다. 호흡을 돕기 위해 입을 통해 기도로 튜브를 집어넣으면 환자는 질식할 것 같은 공포감에 사로잡혀 몸부림을 치게 된다. 이것을 막기 위해 간호사들은 환자의 몸을 끈으로 묶어침대에 고정시킨다. 환자에게 진정제를 대량으로 투입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진정제로 의식이 몽롱한 상태에서 리지아는 지독한 편집증적 환각을 경험했다. 창밖으로 그녀는 헬리콥터가 환자들을 대피시키는 광경을 보았다. 토네이도가 접근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헬기를 타지 못했다.
마치 영화 화면처럼 펼쳐지는 생생한 환각은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간호사들이 그녀를 풍랑이 이는 호수에 던지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겁에 질린 그녀는 대형 냉장고 안으로몸을 숨겼다. 그러나 정신을 차려보니 그곳은 절단된 신체 부위로 가득 차 있었다.
며칠 뒤 그녀는 퇴원을 했다. 몸은 회복됐지만정신적인 후유증은 쉽게 개선되지 않았다. 퇴원후 몇년간 리지아는 단기 기억상실에 시달렸고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리지아는 바다와 호수를 두려워하고. 비행기와헬기를 보면 기겁을 한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지도 못한다.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그녀는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 증상을 겪고 있다.
미국에서는 매년 500만명가량의 환자가 중환자실을 거쳐 간다. 이제까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중환자실에 입원했던 환자들의 35%는 퇴원후 최고 2년간 PTSD 증상을 나타낸다.
특히 호흡부전이나 심각한 감염을 동반한 중증질환으로 ICU 병동 체류시간이 늘어난 환자들이 더욱 심한 심각한 PTSD 증상을 보인다.
대표적 증상으로는 침투적 사고(intrusivethoughts)와 기피행동, 큰 폭의 기분변화, 정서적무감각과 부주의한 행동 등이 꼽힌다.
하지만 ICU에서 유발된 PTSD는 대부분 확인되지 않은 채 넘어간다. 환자가 중환자실을 나설때 의사와 가족은 그가 혼자 걸을 수 있는지, 몸이 얼마나 약해졌는지에만 신경을 쓴다. PTSD와같은 심리적 증상과 관련해 검사를 받는 것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현재 중환자를 다루는 응급의학 전문의들은ICU 환자뿐 아니라 가족에게까지 충격을 주는정서장애를 방지하거나 지속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침대에 몸이 묶인 채 환각상태에 빠져 몸을 뒤채는 가사지경의 환자를 바라보는 가족이 어떤심정일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때의 충격으로 환자 가족이 PTSD 증상을 보이는 경우도더러 있다.
전투에 참가한 군인, 성폭행과 자연재해 피해자도 생생한 플래시백(flashback)을 떠올리지만이것은 망상이나 환각이 아니라 끔찍한 실제 경험의 회상이라고 보아야 한다.
ICU 환자의 무서운 환각은 그 공포의 근원을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대응이 더욱 힘들다. 예를들어 한 환자는 ICU 음식카트에서 그의 몸에서벗겨낸 피부껍질을 판매하는 환영을 보았다.
존스 합킨스 의과대학의 심리학자이자 부교수인 O. 조셉 비엔베누 박사는“ ICU 환자들은 실제로 발생하지 않은 일을 생생하게 떠올린다”고 말했다.
요도관을 삽입하거나 IV 라인을 연결할 때 마취상태의 환자는 강간이나 고문을 당하는 환영을 보게 된다.
ICU는 쾌적한 분위기와는 거래가 멀다. 환자의 수면여부에 관계없이 늘 켜져 있는 전등, 각종 기계와 경보장치가 한데 어울러져 만들어내는 불협화음 등은 영화 ‘트와이라이트 존’ (TheTwlight Zone)의 세팅을 연상시킨다.
ICU에서 시행되는 일부 치료는 음침하고 기분나쁜 느낌을 주지만 꼭 해야 할 필수조치다. 이가운데 하나가 중환자의 호흡을 돕기 위해 기관에 플래스틱 튜브를 집어넣는 인튜베이션(intubation)이다.
기관에 튜브를 삽입하면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환자는 공포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같은 침습적 시술(invasive procedures)은 환자가 PTSD 증세를 보일 확률을 높인다. ICU에서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외상후증후군 위험도커진다. 일반적으로 여성이 남성에 비해 PTSD에걸릴 위험이 높아지고 우울증이나 다른 정서장애를 지닌 경우에도 확률이 쑥 올라간다.
그렇다고 ICU 병동에 입원시키기 전에 중환자의 집안 내력이나 병력을 꼼꼼히 확인하기도 힘들다. 대부분 환자들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병실로 들어온다.
나이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노인 환자는 물리적 회복 속도가 더디지만 PTSD 증상을보이는 환자는 오히려 젊은 층에 더 많다.
노인에 비해 자연사 위험에서 훨씬 멀찍이 떨어져 있던 젊은 중환자는 눈앞에 닥친 예상치 못했던 죽음의 가능성 때문에 정신적으로 더욱 흔들릴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게다가 젊은이는 총격사건이나 교통사고 등 정신적 후유증을 남기는 경험을 겪은 후 중환자실로 들어온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의학자들은 ICU 환자들 사이에 가장참담한 플래시백을 초래하는 원인을 알아내기시작했다.
이들이 주목한 주범은 진정제다. 환자들이 플래스틱 호홉보조기에 저항하지 않고 조용히 누워있도록 만들려면 진정제 사용이 필수적이다. 진정제는 통증을 관리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문제는 마취상태를 가져오는 진정제 가운데 상당수가 환각과 환영을 촉발한다는 점이다. 흔히사용되는 약품으로는 항울제 성분을 지닌 벤조디아제핀이 꼽힌다. 발리움과 아티반, 진통효과를위한 아편분의 약품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10년간의 연구를 통해 과학자들은 진정제가 초래한 중환자의 환각상태가 PTSD의 토대를 이룬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에 따라 응급치료학협회는 지난 1월 진정제투입에 관한 새로운 지침을 작성해 배포했다.
새로운 지침은 ICU 담당의사에게 우선 환자의통증을 치료한 후 벤조디아제핀 사용여부를 검토할 것을 권한다.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진정제 투약 정도가 가벼울 때 인지기능과 신체기능의 재활 회복이 빨라진다. 환각이나 환영을 일으키는 횟수와 강도역시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진정제 투약을 중단한 이후에도 환각상태가 계속될 수 있다.
존스 합킨스의 응급의학과 부교수인 데일 니드햄 박사는 상당수 중환자들은 심신이 모두 쇠약해진 가운데 귀가하게 된다며 이들이 완전히 회복을 할 때까지 보통 6개월에서 1년 정도가 걸린다고 말했다.
영국과 독일, 그리고 일부 스칸디나비아 국가에서는 ICU 담당 간호사들이 중환자의 후유증을경감하고 정서장애 지속기간을 단축시키는데 앞장서 왔다.
이들은 중환자 간호 내역을 일지 형식으로 작성해 퇴원 때 환자 보호자에게 넘겨준다. 보호자는 일지에 의지해 퇴원 후 환자가 보이는 환각증상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ICU 괴담이 발생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중환자실에서 발생한 일의 세세한 내용이 대부분 밖으로 전달되지 않은 채 그곳에 머무른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주치의는 환자가 ICU 병실에서 어떤여정을 밟았고 어떤 시련을 겪었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리고 이로 인해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필요한 검사를 받도록 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게 된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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