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폐 증상 중고생 2명 중 1명 “왕따 경험”
의사소통과 관계형성에 어려움을 느끼는‘자폐 범주성 장애’ 청소년들이 교내 집단 따돌림의 주된 피해 그룹인 것으로 나타났다.
코니 앤더슨은 아들의 성적이 급속히 떨어지기 시작하자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하지만 아들을 괴롭히는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헤아릴 수 없었다. 볼티모어 지역의 고등학교 4학년생인 올해 17세의 아들은 자폐증의 일종인 아스퍼거 장애 환자였다. 인지기능은 멀쩡하지만 대인관계 등의 사회적 기술이 턱없이 부족한 그는 도무지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줄 몰랐다. 소통장애는 자폐증 환자들 사이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이다.
눈에 띠는 특이한 행동 때문 공격대상으로 쉽게 노출
놀림·폭행 당하면 공황상태 빠지고 폭력성 드러내기도
의사소통 능력 부족, 피해사실 부모에게 알리지도 못해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집중력을 잃어갔고, 성적은 상위권에서 바닥권으로 주저앉았다. 아들의 방황이 길어지면서 엄마의 가슴도 타들어갔다.
코니의 요청으로 카운슬러가 나서 수차례 면담을 가진 후에야 그가 동료들로부터 집단적인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에게 가해지는 ‘왕따’와 조롱, 집단적 괴롭힘의 무대는 주로 구내식당이었다.
가해 학생들은 급우들이 보는 앞에서 그의 바지를 무릎 아래로 끌어내리는 등 못된 장난질을 일삼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교내 불링(bullying: 괴롭힘)은 이미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이슈다. 주 차원에서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한 법이 연달아 제정됐고, 각 교육구 단위로 교내 괴롭힘 방지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하지만 최근 청소년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우려스런 현상이 발견됐다. 의사소통과 관계형성에 어려움을 느끼는 ‘자폐 범주성 장애’ 청소년들이 가해자(불리: bully)들의 집중적인 공격대상으로 드러난 것.
자폐의 정도와 예후는 대단히 다양하다. 따라서 이들을 모두 포용하는 자폐 범주성 장애라는 새로운 진단명이 나오게 됐다. 쉽게 말하면 자폐증후군이다.
UC버클리의 사회복지학 부교수로 이번 보고서를 작성한 폴 스터징은 자폐아들을 겨냥한 교내 괴롭힘은 심각한 공중위생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자폐아들 가운데 ‘불리’들의 괴롭힘을 받을 위험이 높은 대상은 정상인과 마찬가지의 독립적 생활을 이끌어갈 가능성이 가장 높은 아이들이다.
이들은 코니의 아들처럼 인지기능 장애가 없기 때문에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 적을 두고 있다.
고기능 자폐아에겐 다른 발달장애 증상은 없으나 비정상적인 행동이나 특이한 버릇 때문에 아무래도 승냥이 같은 불리들에게 쉽게 노출된다.
자폐아를 둔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가 학교에서 조롱과 괴롭힘을 당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러나 새로운 연구는 자폐아 괴롭히기가 교내에 만연된 상태임을 보여준다.
자폐 증상을 지닌 중고교 학생 920명의 전국 표본을 이용해 추출한 스터징의 자료는 이들 중 46%가 괴롭힘을 당했다고 밝혔다. 이에 비해 일반 청소년들 가운데 조롱과 왕따를 당한 사람의 비율은 10.6%였다.
스터징의 연구는 또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를 지닌 어린이들이 불링을 당할 위험이 가장 높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나대는 아이들은 표적이 되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당하기만 하는 건 아니다. ADHD 환자들은 주된 피해 집단인 동시에 공격성을 과시하는 그룹이기도 하다.
반면 자폐아들이 저지르는 불링은 보고된 전체 건수 가운데 14.8%로 평균치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이는 1만1,000명의 특수교육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10년간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추출한 것이다.
자폐 범주성 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아이건 어른이건 간에 비사교적이고 소통에 어려움을 느끼며 사회적 신호에 둔감하다.
자폐증의 또 하나의 특징은 의례라든지 버릇에 집착한다는 점이다. 존스 홉킨스 대학의 불링 전문가이자 청소년 폭력방지센터 부소장인 캐더린 브래드쇼 박사는 자폐아들의 이 같은 특징이야말로 이들을 괴롭힘의 대상으로 만드는 요인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주로 놀림과 욕설, 폭력에 시달린다. 놀이나 일반 활동에서 제외되는 ‘따돌림’은 기본이다.
볼티모어 소재 케네디 크리거 연구소의 인터액티브 오티즘 네트웍 원장 폴 로 박사는 사회적 기술은 없으나 인지기능이 정상인 고기능 자폐증 청소년들이 가장 심한 따돌림을 당하는 곳이 바로 중학교라고 말했다.
중학생들의 사회적 상호작용은 대단히 복잡하다. 이들은 상례에 기준을 벗어난 동료의 실수를 절대 용납하지 않으려 드는 연령층에 속한다.
로 박사는 중학교의 구내 카페테리아에 잠깐 앉아 있으면 이런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자폐증상을 지닌 어린이들은 그렇지 않은 형제에 비해 교내 따돌림에 노출되는 확률이 세 배나 높다.
LA에 거주하는 10대 고기능 자폐아의 어머니는 중학생인 아들이 학우들로부터 정기적으로 괴롭힘을 당했다고 털어놓았다.
이들의 ‘이지메’는 집요했다.
구내 운동장에서는 물론 길가에 숨어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에게 떼를 지어 덤벼들거나 그를 향해 돌이나 물건을 집어던지기도 했다.
자식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이름을 공개하지 않은 이 어머니는 “아주 사소한 일로 아들을 골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 예로 아들의 책이나 숙제를 훔치는 것만으로도 그를 완전한 공황상태로 몰아넣을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아들은 운동장을 뱅글뱅글 돌면서 “누가 내 숙제를 훔쳐갔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그에겐 이런 상황에 대처할 사회적 기술이 없었다.
집요한 괴롭힘을 피하기 위해 그녀의 아들은 차편으로 귀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완전한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차를 기다리던 아이는 기회를 노리던 학우들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하고 말았다.
결국 학교 측이 개입, 폭력에 가담한 학생들을 처벌했다, 아이의 엄마는 폭력 학생들의 부모로부터 사과전화를 받았지만 마음의 상처를 온전히 지워낼 수는 없었다.
자폐아들은 의사소통 능력이 극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부모에게조차 그들이 당한 일들을 털어내지 못한다.
불리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들이야말로 뒤탈 걱정할 필요 없이 마음껏 두드려댈 수 있는 ‘동네북’이다.
사회적 기술이 심하게 부족한 자폐아는 아예 그들이 괴롭힘을 당한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한다.
브래드쇼 박사는 “자폐 범주성 장애에 속한 아이들은 빈정거림이라든지 유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있는 곳에서 의도적으로 망신을 주어도 이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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