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AL기 폭파, 한국정부 자작극’ 누명 벗나
▶ 미 국무부, KAL기 폭파 테러사건 관련 비밀해제 문서 공개
대한항공기 858편 폭파테러 용의자로 바레인에서 체포된 북한공작원 김현희가 1987년 12월15일 김포공항에서 압송되고 있다.<연합뉴스>
비행기 실종순간부터 김현희 특별사면까지 외교뒷전 상황 상세기록
일부서 제기되고 있는 조작설. 김현희 가짜설 맞물려 주목
미국은 1987년 11월29일 대한항공기 ‘KAL 858’편 공중폭파 테러 직후 북한이 사건을 한국의 ‘자작극’으로 몰아가려하자 당시 용의자로 체포된 북한공작원 김현희(여·50)를 직접 취조해 북한의 개입을 자체적으로 확인한 사실을 베이징 외교채널을 통해 북측에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또 북한의 추가 도발을 막기 위해 김현희 조사기록을 포함, 자체적으로 확보한 북한 개입 증거들을 소련과 중국에게도 신속히 제공한 것으로 확인됐다.이 같은 사실은 미국 국무부가 최근 대한항공기 폭파 테러 사건 관련 비밀해제 외교문서 53건을 추려내 ‘Korean Air Flight 858’이라는 제목아래 엮어 공개함에 따라 밝혀졌다.
국무부의 자료 공개는 김현희가 지난 달 한국 TV 방송에 출현해 노무현 정부가 자신을 가짜로 몰아가려 했다고 폭로한 시점과 맞물려 이뤄진 것이어서 더욱 주목된다. 문서들은 KAL기 858편이 비행 도중 미얀마 근해에서 실종된 순간부터 한국 법원에서 폭파범으로 유죄선고가 내려진 김현희가 특별사면을 받을 때 까지 외교 뒷전에서 벌어진 상황을 주한미대사관, 주일미대사관, 주중미대사관과 워싱턴 본부가 주고받은 전보로 지금까지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여러 내용도 담겨있다.
미국은 특히 당시 폭파 사건이 한국의 수사는 물론 자체적 조사 결과 북한의 소행으로 확인됨에 따라 전두환 한국 대통령이 대북 군사 보복조치를 취할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었으나 한국 정부가 예상외로 차분하게 대응하자 이를 매우 반갑고 다행스럽게 받아들였으며 그 대가로 사건 관련 자체적 입수 정보 공유, 미 해군 정찰기 동원 잔해 수색 지원, 한국과 수교가 없는 국가들 대상 수사 협조 설득 등 한국 정부의 모든 협력 요청에 적극 나섬으로 응답했다.
한국의 대북 군사 보복조치에 대한 미국의 우려는 한국 정부의 김현희 수사 결과 발표를 하루 앞둔 1988년 1월14일 제임스 릴리 주한미대사가 청와대를 방문해 전두환 대통령을 면담한 자리에서 확연하게 드러나는데 전 대통령은 당시 한국의 의도를 직접 문의한 릴리 대사에게 “김일성과 그의 아들 김정일은 정신상태가 병적이고 고칠 수도 없는”(mentality that was both sick and incorrigible)사람들로서 “한국의 군사적 보복이 정당한 선택이기는 하지만 현재 한국은 정권 교체 과정에 있고 올림픽을 개최해야 하기 때문에 군사 행동을 취할 시기가 아니며 이는 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그럴 것”이라고 안심을 시켰다.
미국은 한국이 외교적 대응 노선을 택하자 그러한 결정을 장려하는 차원에서 북한을 테러지원국 리스트에 올리고 북한 학자들과 체육인들의 미국 비자 발급을 취소하고 미국 외교관들과 북한 외교관들과의 비공식 접촉마저도 금지하는 등 강경 대북 조치를 취했으며 국제무대에서는 외교력을 동원해 유엔과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등이 북한의 KAL기 테러 행위를 규탄하도록 앞장섰다.
또 북한이 대내외적으로 사건을 한국의 ‘조작극’으로, 김현희를 한국 안전기획부 첩자로 몰아붙이는 선전을 펼치자 주중미대사관을 통해 당시 주중국 겸 주북한 대사로 있던 잠비아의 마인자 초나 대사에게 미국이 김현희를 직접 취조한 내용을 포함, 북한의 개입 사실 결론을 내린 자체적 조사 분석 결과를 알려주도록 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눈길을 끄는 내용들 중에는 당시 한국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북한이 노태우 여당 후보를 돕는 결과를 낳을 수 있는 무모한 테러 행위를 저지른 의도에 대해 한국과 미국정부 모두가 매우 의아해 했다는 것과 따라서 국제사회가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확실한 수사 및 증거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에 뜻을 함께하고 양측이 이를 위해 만전을 기울인 흔적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주한미대사관은 한국 법정 재판에서 북한의 개입을 입증하는 뚜렷한 증거들이 충분히 제출됐음에도 불구하고 한국내 ‘북한 동조자들’(North Korean Apologists)이 북한의 선전과 같이 폭파 사건을 한국정부의 조작으로, 또 김현희를 국가안전기획부의 첩자로 몰아세우기에 나서자 “말 그대로 별스럽다”(bizarre though it may sound)며 우려를 표하고 이 같은 움직임을 워싱턴이 참고하도록 보고해 아직까지도 한국에서 일부 언론과 정치인들이 KAL기 폭파 사건 조작설, 김현희 가짜설을 제기하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볼 때 매우 흥미롭다.
■ 잠비아 중국주재 대사, 미대사관에 북한개입 입증 정보 요구
주한미대사, 김현희 취조내용 증거로 제시
주중국미국대사관은 1988년 2월1일 워싱턴 본부에 전보를 띄운다.
전보는 주한미대사관, 주셴양미국총영사관, 주일미대사관과 호놀룰루 태평양지휘사령부에도 참고로 보내진다.
북한주재 대사를 겸하는 마인자 초나 잠비아 중국주재 대사가 1월18~25일 평양을 방문해 북한 외교부 부장과 관리들, 평양주재 외국 대사들 등을 만나고 돌아와 KAL 858 테러 사건과 관련 북한의 직접적인 개입을 구체적으로 입증하는 추가 정보를 대사관에 요청해 왔다는 것.
전보는 초나 대사가 “북한의 직접적인 책임을 묻는다는 커다란 의미를 고려할 때 서울에 있는 여성(김현희)의 자백을 떠나 반박할 수 없는, 또는 거의 반박할 수 없을 정도의 증거가 제기돼야 한다”며 “자신과 다른 동료들은 아무리 북한 정부일지라도 그들이 이 같은 테러행위로 이득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믿기가 어렵기 때문에 도대체 누가 KAL 858 폭파로 이득을 얻을 수 있을까와 그 동기를 깊이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전보는 또 초나 대사가 북한 외교부 부장을 만난 자리에서 북측은 한국이 조작한 사건이라고 직접 주장하지는 않았다고 말했으나 이와는 달리 1월17일,18일 북한 TV와 라디오에서 널리 보도된, 또 1월23일자 영자신문 ‘평양타임스’가 기재한 1월15일자 조선중앙통신 발표문은 북한이 폭파사건 책임을 한국으로 돌리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 뒤 대사관이 초나 대사의 요청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가를 문의한다.
그러자 주한미대사관은 2월3일 워싱턴에 전보를 친다. 전보는 주중미대사관과 주일대사관에도 참고로 전달된다. 제임스 릴리 주한미대사는 전보에서 2월1일자 주중미대사관 전보를 언급하며 “잠비아 대사가 제기한 문제점들에 대해 우리가 전해줘야 할 정보들 중에는 김현희의 1월15일 발표 당시 그녀가 북한어를 사용했다는 결론을 내린 ‘해외방송정보국’(FBIS)의 언어전문가 분석 결과가 포함돼야 할 것으로 믿는다”고 제안한다.
릴리 대사는 또 “우리는 항공기를 한국이 자체적으로 폭파시켰다며 KAL 858과의 그 어떠한 관계도 부인하는 평양의 선전에 영향을 입은 다른 관리들과 외교관들로부터 추가 문의를 받게 될 것을 예측한 베이징 (대사관)의 분석에 동의 한다”며 “한국 외교통상부에도 북한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반박할 수 있도록 준비하게 하고 그러한 정보를 우리와 공유해 서로가 조율된 입장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제안할 방침이다”고 밝힌다.
릴리 대사는 이어 “우리는 또 귀하(워싱턴)가 잠비아 대사에게 김현희씨가 베오그라드와 부다페스트에서 가명으로 자신에게 접근한 북한인 3명(베오그라드 2명, 부다페스트 1명)의 사진을 우리가 조정한 환경에서 꼽아냈다는 사실을 알려 줄 것도 권고한다”며 “당시 그녀가 꼽아낸 사진 3장은 우리가 보여준 총 26장 사진들 중에서였고 그녀가 꼽아낸 인물들은 사실 모두 그녀가 그들 도시를 방문했을 당시 현지에 배치돼 있던 북한조사국 요원들의 사진이었다. 우리는 이를 그녀가 북한을 위해 활동했음으로 믿을 만한 자체적 증거로 간주 한다”고 덧붙였다.<신용일 기획취재 전문기자> yishi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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