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마의 섬 감옥’에서 탈출한 3명의 죄수 행방 묘연
▶ 살아있으면 모두 80대, 99세 되어야 공소시효 만료
50년 전 1962년 6월11일 밤, 북가주 바다에 떠 있는 섬 감옥 알카트라즈 연방교도소 내 3명의 죄수는 평소처럼 감방에 갇혀 있었다. 9시30분 그들의 감방 밖 복도를 돌던 간수들은 그들을 보았다. 밤새 정기적 야간점호를 할 때마다 잠자는 모습을 보았으며 아무런 이상한 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3명의 죄수들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간수들이 그들의 침대에서 발견한 것은 시트에 덮인 베개 위, 진짜 머리털을 붙인 얼굴 모형들이었다. 긴급비상이 걸리고 연방수사당국, 주와 지역 경찰, 해안경비대가 총동원되어 대대적인 합동수색작전을 벌였다. 알카트라즈 섬과 샌프란시스코 만 일대를 이 잡듯 샅샅이 뒤진 1932년 린드버그 아기 유괴사건이후 사상 최대의 수색작전이었다.
고무 우비로 만든 조잡한 뗏목이 근처 섬에서 발견되었다. 그러나 탈옥수들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날 이후 그들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연방당국은 그들이 빠른 조류와 얼음처럼 차가운 낮은 수온의 거친 물살에 휩쓸려 익사했고 시체들은 금문교 아래 바다로 밀려갔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프랭크 리 모리스와 클레어런스 및 존 앵글린 형제가 철통경비의 교도소를 탈출해 어디엔가 숨어 아직 살아있을 것이라는 판타지는 반세기가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 애호가들에겐 호기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더 락(The Rock)”이라고 불리는 알카트라즈는 알 카포네, 머신 건 켈리 등 악명 높았던 범죄자들이 수용되었던 연방교도소로 ‘탈출 불가능’으로 알려질 만큼 미 전국에서 경비가 가장 삼엄한 감옥이었다. 1934년부터 1963년까지 29년간 연방교도소로 사용하는 동안 아무도 성공적으로 탈출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다. 탈옥을 감행했던 41명 중 26명은 다시 잡혔고 7명은 사살 당했으며 3명은 익사했고 2명은 행방불명이다. 모리스와 앵글린 형제까지 도합 5명이 탈옥 후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것이다.
3명 다 은행 강도로 장기수였던 모리스와 앵글린 형제의 탈출기는 아직도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어 그동안 수많은 기사와 필름을 통해 다각적으로 분석되었다. 1963년 J.캠벨 브루스의 책 “알카트라즈 탈출”이 출판되었고 1979년에는 같은 제목으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모리스 역을 맡았던 영화가 개봉되었으며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도 4개나 제작 방영되었다.
2011년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다큐멘터리 “알카트라즈로 부터의 증발” 등 TV다큐멘터리들에 의하면 탈옥의 주모자는 모리스로 알려졌다.
IQ138로 지능이 뛰어났던 모리스는 1926년 워싱턴에서 태어나 11살에 고아가 되었으며 13살에 절도로 체포된 후 교화학교에 보내져 구두수선을 배우게 했으나 졸업 후부터 본격적으로 강도와 마약 등 범죄의 길로 들어섰다. 은행 강도 혐의로 10년형을 받고 복역하던 루이지애나 주 교도소에서 탈옥했다가 절도로 체포된 후 1960년 알카트라즈로 이감되어 14년형을 복역 중이었다.
조지아 주 가난한 농부의 14남매 중 두 자녀로 1930년과 1931년에 태어난 존 과 클레어런스 앵글린 형제는 일찍부터 절도 등 범죄에 연루되어 교도소를 들락거리며 여러차례 탈옥을 시도하기도 했다. 1958년 은행강도 혐의로 체포되어 존은 15년, 클레어런스는 10년형을 받고 캔자스 주 연방교도소에서 복역하다가 알카트라즈로 보내졌었다.
그들이 탈옥을 계획한 것은 1961년 후반기부터였다. 이들 3명 외에도 1~2명이 더 가담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감방 뒤쪽으로 난방 덕트와 플러밍 파이프 등이 지나가는 좁은 복도가 있었다. 각자 훔쳐온 스푼으로 뒷 복도로 통하는 콘크리트 벽을 뚫어 넓힌 환풍구를 통해 복도로 빠져나와 지붕 위로 올라간 후 파이프를 타고 아래로 내려와 두 개의 철조망을 넘어 뗏목을 타고 섬을 떠나는 것이 이들의 탈출경로였다.
도주한 후 침대에 남겨두기 위해 변소휴지와 석고로 머리모형을 만들었고 교도소 용 우비 50벌을 이어 붙여 뗏목과 구명조끼를 만들었다. 감방 위쪽 빈 공간이 이들의 작업대였다. 일부가 작업을 하는 동안엔 모리스가 아코디온을 연주하며 망을 보기도 했다.
드디어 ‘탈출의 밤’, 단 한 가지가 계획에서 어긋났다. 4번째 가담자인 알렌 웨스트가 자기 감방의 벽을 뚫지 못한 것. 콘크리트가 떨어지는 것을 감추기 위해 시멘트를 약간 발라놓았는데 너무 굳어져 버린 때문이었다. 탈출의 상세한 내용은 대부분 웨스트가 조사관들에게 털어놓은 증언에 의한 것이다.
섬을 탈출한 것은 밤 10시경, 짙은 안개 속으로 그들은 사라졌고 다음 날 2마일 북쪽의 섬 앤젤 아일랜드 해안에서 우비 뗏목과 노 등이 발견되었다.
FBI는 케이스를 종료시켰으나 1993년 토머스 켄트라는 알카트라즈 전 복역수가 TV 인터뷰에서 자신도 당시 탈출제의를 받았지만 수영을 못해 거절했다고 밝힌 후 US마샬서비스에 의해 수사가 재개된 상태다.
이들 3인의 생존설은 확인되지 않은 채 계속되고 있다. 당시 뗏목이 발견된 장소엔 발자국들도 있었으며 그날 밤 인근지역에서 자동차가 도난당했다는 주장도 나왔고 클레어런스 토머스가 감옥에서 만든 가죽 주머니에 탈옥수들의 도피처가 담긴 채 또 다른 앵글린 형제에게 전달되었다는 주장, 앵글린의 본가에 매년 무슨 때마다 익명으로 꽃이 배달되었으며 1978년 앵글린 형제의 어머니 장례식에는 FBI가 쫙 깔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장한 이들 형제가 참석했었다는 등등…앵글린 가족들은 이들 형제가 브라질로 도주했을 것으로 믿고 있다.
알카트라즈 연방교도소는 재정난으로 이듬해인 1963년 문을 닫고 1976년 국립역사유적지로 개장했으며 모리스와 앵글린 형제는 1979년 공식 사망한 것으로 처리되었다. 만약 살아 있다면 이제 모두 80대 노인이 되었을 이들은 각자 99세가 되어야 공소시효가 마감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LA타임스-본보특약>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