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오 는 필라델피아에서 나고 자란 오리지날 필리다.
1960년 생으로 어릴 적 1963년부터 현재까지 사우스웨스트 필라델피아에 거주해 오고 있다.
센트럴 하이 스쿨이 그의 모교. 고교 졸업 후 디키슨 칼리지,릿커스 법대 등을 거쳐 고향 필라델피아에서 검사로 사회 첫 발을 내 디딘 후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다 현재는 자윈 바움 대형 로펌에서 국제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그의 사회봉사 활동은 널리 알려져 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한 무료 법률봉사에 앞장 서 와 필라델피아 인권상을 수상하기도 하는 등 많은 수상 경력이 그것을 말해 준다.
데이빗 오 의 희생, 봉사정신을 말할 때 그의 부친을 빼 놓을 수 없다. 그의 부친은 1953년 필라델피아에 최초로 한인 목회를 개척한 고 오기항 목사이다. 고 오기항 목사는 목회뿐만 아니라 이민자들의 실제적인 필요를 채우기 위해 법률 서비스와 의료 서비스를 펼치고 아시아법률센터를 설치해 한국인뿐 아니라 아시아계 이민자들에게 무료 법률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희생과 봉사에 한 몸을 바쳐왔다. 그러면서도 5자녀를 키우며 절제된 크리스챤의 삶을 살아 많은 이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아왔다.
데이빗 오의 봉사정신, 강한 정신력, 뚝심 등은 이런 아버지에게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보인다.
데이빗 오 는 1988년 필라델피아 검사를 사직하고 돌연 군에 입대한다. 그것도 법무관으로 배속 받을 수 있음에도 일반 사병으로 지원해 사병들의 교육훈련을 똑같이 받는다. 훈련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마친 데이빗 오 는 장교 자격이 부여돼 이후 ‘에어 본’으로 불리는 군 특수부대에 배속, 근무하게 되는데 당시 이라크 전쟁의‘사막 폭풍 작전’에 투입 대기 중 전쟁이 끝나 버리는 바람에 막상 참전은 하지 못한 채 필라델피아로 돌아온다.
지난 선거운동 기간 중 불거진 이때의 그린베레 논란에 대해 3년 동안의 군 생활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는 표현으로 그린베레 유무를 떠나 군 생활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진심을 전하기도 했다.
군 전역 후 자윈 바움 이라는 대형 로펌에 들어가 1992년 당시 에드 렌델 시장의 인수인계과정에서 활약하기도 했으며 주지사 톰 리지가 지명해 당시 무역에 관한 한국 정부와의 특별 미션을 무난히 수행, 능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2003년에 이어 지난 2007년 두 번째 시의원 도전에서는 일반 개표 때까지만 해도 7표 앞서다가 마지막 부재자 투표에서 뒤져 122표차로 낙선하는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당선으로 그 같은 어려움을 모두 이겨내고 필라델피아 한인 역사상 첫 시의원이 되는 영예를 누리게 됐다.
특히 데이빗 오 는 필라델피아 지역의 경제적 중요성에 대해 누구보다도 해박한 지식과 발전을 위한 방안 등을 연구, 의정활동에 주안점을 둘 것으로 알려져 필라델피아 지역의 경제 발전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부인 희선씨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조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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