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슈 추적
▶ 대한인 동지회 사태로 본 이민사 유적 현황·문제점
미주한인 이민사의 주요 유적지 중 하나인 LA의 대한인 동지회 건물(구 동지회 북미 총회관)이 최근 소유주의 채무 불이행으로 차압 후 경매 위기에 처한 것으로 드러나면서(본보 9, 12, 15일자 보도) 무관심 속에 방치돼 있다시피 한 이민사 유적들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보존 노력 및 지원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특히 대한인 동지회는 대한인 국민회와 함께 초기 미주 한인 이민사회 독립운동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단체로 그 유적지가 지니는 역사적 가치를 고려할 때 관련 당사자들간 소송 등으로 위기에 놓인 동지회 건물의 정상화와 보존을 위한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자세가 요구되고 있다. 동지회 건물 사태를 계기로 LA에 남아 있는 이민사 및 독립운동사 유적들의 역사와 현황을 되짚어보고 앞으로의 과제를 살펴본다.
■대한인 동지회
이승만 박사 주축으로 창설
소유권 싸고 분쟁… 경매위기
이승만 박사를 주축으로 창설된 독립운동단체인 대한인동지회가 사용하던 건물. 아래 사진은 초창기 모습.
■국민회관
도산 선생 발족 한인 첫 통일기구
기념관 복원… 역사교육 장으로
도산 안창호 선생을 중심으로 발족된 대한인국민회관 건물. 아래 사진은 국민회원들이 함께 한 모습.
▲대한인 동지회와 북미총회관
대한인 동지회는 1924년 11월17일부터 4일 동안 호놀룰루에서 개최된 동지회 대표회의에서 이승만 박사를 주축으로 창설된 독립운동 단체다. ‘3.1 정신 계승과 비폭력 행동을 통한 조국독립, 단체 중심의 질서 존중 및 단합, 한인 경제 자급’을 3대 정강으로 발표한 동지회는 1929년 10월 LA에 동지회 북미총회를 결성했으며, 한인들의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1943년 4월11일 그 당시 한인타운 역할을 하던 36가에 첫 동지회 북미총회관 건물을 구입했다. 이어 1947년 USC 근처 2716 Ellendale Place의 건물을 구입해 이사를 한 게 현재 동지회 건물이다.
당시 LA의 동지회 북미총회는 송철씨와 송헌주 목사, 이살음 목사, 박호근, 안상학씨 등이 중심적으로 활동했으며 조국 독립을 위한 워싱턴DC 구미외교부의 활동을 지원했으며, 당시 동지회 북미 총회관은 대한인국민회 총회관과 함께 미주 한인 이민사회 독립운동의 산실 역할을 했다.
초기 이민자의 자녀로 전쟁영웅으로 우뚝 선 고 김영옥 대령도 동지회 사무실을 자주 찾았던 일화를 소개하고 자신의 아버지가 동지회 회원들과 독립운동에 나선 모습을 보며 자신에게도 민족의식이 자라났음을 회고하기도 했다.
▲동지회관의 역사와 현주소
해방 후 하와이와 LA 동지회는 한국 정치에 뛰어든 이승만 박사 지원과 함께 한국전쟁 후원, 유학생 지원, 주요 인사 모임 등의 활동을 펼쳤고 이후 국민회와 뜻을 합쳐 ‘새로운 한인사회 건설’ 운동 등을 펼쳤다. 이후 1972년 현 남가주 한국학교 전신인 무궁화 학원이 동지회 회관에서 문을 열기도 했고 동지회 1세대가 세상을 떠나자 후손들이 동지회의 명맥을 유지했다.
이후 1990년대 후반부터 대한인 동지회 소유권을 둘러싼 내분이 발생했다. 송헌주 목사의 딸 김영옥씨와 송철 선생의 아들 게리 송씨는 1997년 대한인 기독교회 목사로 이모세씨를 청빙, 현재 동지회 건물에 대한인 기독교회가 들어서 있으나 이 목사가 자신이 동지회 회장임을 주장하며 서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2009년 4월 서류상 소유권자인 게리 송씨가 동지회 건물을 담보로 25만달러를 빌린 뒤 이를 갚지 못해 경매 처분 위기에 몰린 것이다.
▲대한인 국민회와 국민회관
대한인 국민회는 1903년 도산 안창호 선생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창립한 공립협회에서 출발했다. 공립협회와 하와이의 합성협회 대표들은 1908년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열린 북미애국동지대표회의에 참석해 단체 통합에 합의하고 이후 1909년 도산 선생을 중심으로 대한인 국민회를 발족, 도산 선생이 초대 총회장을 맡았다.
‘최초 미주 한인 통일기구’ 대한인 국민회는 한인사회 친선을 도모하고 을사조약 폐기운동, 합병 반대운동, 파리평화회의 대표 파견, 안중근 변호 모금운동 등 활발한 독립운동에 나선다. 독립군 사관 양성을 목표로 소년병학교와 숭무학교, 국민군사관학교를 세웠다. 3.1운동 이후 상해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국민회원들은 막대한 독립자금을 상해로 보냈다.
현재 대한인 국민회 기념관인 대한인국민회 북미총회관(1368 W. Jefferson Blvd)은 1937년 남가주 한인 이민자들의 모금으로 부지를 매입해 직접 건립했고 이곳에서 국민회 회보인 신한민보가 발행되기도 했다.
▲문제점과 과제
대한인 국민회관은 지난 2003년 50만여달러에 달하는 홍명기 회장 등 한인사회의 성금과 한국 정부의 지원금 2억원을 바탕으로 기념관을 복원, 애국선열의 역사를 담은 상징적 의미를 지닌 건축물로 다시 태어나 한인 초기 이민사 사료 등 수천점의 이민사 유물이 전시되고 있으며 현재 대한인 국민회 기념재단, 흥사단, 그리고 현 건물주인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가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또 LA시 사적지 548호로 지정됐고 국민회관 앞길이 도산 안창호 광장으로 명명되기도 했다.
그러나 대한인 동지회 건물의 경우 본보 보도 이후 흥사단이 보존을 위한 매입 가능성을 밝혔지만 부채에 따른 경매 위기에다가 건물 관리권과 소유권을 놓고 당사자들이 수년째 소송 공방을 벌이는 등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보존 관리를 위한 노력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와 관련 한국 국가보훈처의 외국사적지 담당 병해주 사무관은 “해외 독립운동 사적지 지원은 관련 시설의 ‘역사적 의미, 공동관리협의체, 지원에 따른 체계적 운영계획’이 필요하다”며 “LA 대한인 동지회 건물의 경우 현재까지 정보가 없으며 동지회 건물 보존단체가 체계적으로 구성되면 지원 검토는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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