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렛 낸시는 좀 부드럽게 말하자면 ‘어려운 케이스’였다. 감정의 동요가 심하고, 전투적인 데다 툭하면 식사를 거부했다. 너싱홈 직원들은 시도 때도 없는 96세 노파의 손찌검에 넌덜머리를 냈고, 동료 입소자들도 경계심을 보였다.
이처럼 ‘대책 없는’치매환자를 장기간 거둬줄 양호원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하지만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위치한 비애티투즈(Beatitudes) 너싱홈이 가족들의 긴급요청에 따라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진이 말썽 많은 ‘퇴출 환자’를 받아들인 뒤 낸시에게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새벽 2, 3시에도 먹고 싶은 음식 배부르게
환자들 과거 신상 뒤져 맞춤형 서비스
난폭한 언동 말썽꾸러기 환자들 얌전해져
비애티투즈는 너싱홈의 전형적인 규칙을 완전히 무시한 채 낸시가 원하는 시간에 아무 때나 자고, 먹고, 목욕하도록 허용했다.
새벽 2시건 3시건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식단과 먹거리에도 제한을 없앴다. 사실 낸시뿐만 아니라 비애티투즈에 입주한 모든 치매환자들은 본인이 원하기만 하면 설사 ‘불량식품’이라 해도 양껏 먹을 수 있다. 다른 너싱홈과 달리 초컬릿은 무제한으로 제공된다.
낸시에게는 인형도 주어졌다. 처음엔 그녀를 담당하는 관리자조차 “인형은 너무 지나친 것 아니나”며 반대했지만 인형을 품에 안은 채 흔들어주고, 쓰다듬고, 밥을 먹일 때마다 낸시가 급속히 차분해지는 것을 목격하고 난 뒤 생각을 바꾸었다. 비애티투즈의 간호 방식은 환자들에 대한 다른 너싱홈들의 접근법과 확연히 구분되지만, 그렇다고 제멋대로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과학적 증거에 바탕한 최신 연구결과를 남들보다 먼저 받아들여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을 뿐이다.
안타깝게도 치매를 다스리는 약물치료제는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기억의 끈을 놓쳐버린 환자들이 ‘접속불능’의 세계에서 가급적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돌보는 것이 지금으로선 최선책이다.
따라서 ‘치매와의 전쟁’에서는 의사나 병원보다는 가족과 너싱홈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통계에 의하면 미국에서만 1,100만 명이 치매에 걸린 친척을 집에서 돌보고 있고, 너싱홈의 입주자들 가운데 3분의2가 여러 단계의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
따라서 원호처를 비롯한 연방정부와 주정부 기관들은 이들 간병인들을 지원하고 훈련시키기 위해 과학적 연구결과에 바탕한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채택하고 있다.
새로운 연구결과 중에는 흥미로운 내용이 적지 않다.
과학자들은 치매환자들에게 신경이완제와 항불안성 약품을 투입하는데 반대한다. 환각 증세와 공격성을 진정시키는데 주로 사용되는 이들 약품이 부작용에 특히 민감한 일부 환자들에게 잠재적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환자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직접적 요인, 요컨대 통증이나 우울증을 다스리는 약품을 제공할 것을 적극 권장한다.
방과 건물의 외양을 바꾸거나 치장을 하는 것도 환자의 행동과 기분에 큰 영향을 미친다.
미의학협회저널의 연구에 따르면 치매환자 수용시설의 밝은 조명은 우울증과 인지력 저하, 신체 기능력 상실을 줄여준다.
조명을 밝게 하면 생체리듬이 강화되는 것은 물론 환자들이 주변과 사물을 잘 볼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활동성을 높여준다.
독일의 일부 너싱홈은 건물 밖에 가짜 버스정거장을 설치해 두는데, 이는 치매 환자들이 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이다. 정거장에서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다보면 대부분의 환자들은 어디론가 가려했던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다.
치매환자들의 방이 4층에 위치한 비애티투즈의 경우, 이들이 엘리베이터를 함부로 타지 않도록 승강기 앞에 검은 사각형의 천을 깔아둔다.
시각과 공간 인지력 즉 시공간적 지각력을 상실한 치매환자들은 검은 사각형 천을 구덩이나 절벽으로 해석한다.
알론조 연구주임은 이들이 사각형 천의 가장자리를 오갈 뿐 천 안쪽으로 들어서는 일은 없다고 말한다. 이와 반대로 환자들을 엘리베이터에 태워야 할 경우에는 검은 천을 흰 천으로 가려둔다.
새로운 연구결과에 따르면 감정은 인지력이 훼손된 후에도 지속적으로 작동한다. 아이오와 대학은 이를 입증하기 위해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대학 관계자들은 방금 전의 일조차 떠올리지 못하는 기억상실증 환자들에게 ‘소피의 선택’이라든지 ‘철목련’ 등 눈물과 슬픔을 자아내는 영화, 혹은 빌 크로스비나 ‘미국의 가장 웃기는 홈비디오’처럼 웃음과 행복감을 선사하는 작품들을 보여주었다.
영화가 끝난 뒤 6분 후에 물어보니 거의 모든 환자들이 자신이 본 영화장면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30분 후에 감정 평가를 실시한 결과 이들은 영화에서 받은 슬프거나 행복한 느낌을 그대로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실험결과를 근거로 신경심리학 박사과정 연구원인 저스틴 파인스타인은 치매환자들의 행동장애가 대부분 슬픔이나 불안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사물이나 상황에 대한 정보는 사라져도 ‘감정의 기억’이 남아 이것이 논리적 연결고리를 찾기 힘든 행동으로 표출된다는 것. 비애티투즈의 스태프는 치매 환자들의 신상에 관한 기록을 샅샅이 뒤져 그들이 평소 좋아했던 것들을 찾아낸다. ‘화이트 숄더스’ 향수를 즐겨 사용했던 환자들에게는 그 향수를 뿌려주고, 자식들 부양에서 삶의 보람을 느꼈던 96세 노파 낸시에겐 그녀가 돌봐 주어야 할 인형을 준다. ‘감정의 기억’을 활용한 접근법이다. 낸시는 인형을 벤자민이라 부르며 지극 정성으로 돌본다.
비애티투즈의 테나 알론조 연구주임은 요즘 벤자민을 매개로 낸시와 ‘접속’한다. 이 날도 그녀는 낸시의 휠체어 옆에 주저앉아 “벤자민의 구두가 멋지다”며 대화를 시도한다. 이어 “정말이지 당신은 내가 아는 최고의 엄마”라는 찬사를 던지자 낸시는 머리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반응한다. “내가 이놈에게 정성을 쏟고 있다는 걸 누군가 알아주는 건 참 기분 좋은 일이야.”
<뉴욕타임스-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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