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한인 후원으로 1987년 스토니브룩대서 첫 발
박성배 종교학과 교수 부임 계기로 개설 움직임
’한국의 밤’ 행사등 통해 8년간 60만달러 모금
1995년 AAS에 의해 한국학 발전 모델로 선정
뉴욕일원 미국대학에 한국학과 설립을 추진하기 위한 노력은 1980년대에 시작됐다. 처음 불을 지핀 곳은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 캠퍼스로 1987년 1월 한국학 프로그램이 공식으로 시작됐고 뉴저지 주립대인 럿거스대는 그보다 5년 늦은 1992년 9월에 한국어 강좌가 개강됐다. 이 두 대학의 한국과 관련된 학과정은 Korean Studies라고 할만큼 포괄적이고도 독립적인 운영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으나 그간 많은 발전을 거듭해 학계의 인정을 받고 있다. 두 대학의 한국학과 설립 과정에는 대학당국의 열성과 한인사회의 후원 노력이 함께 기울여져 결실을 맺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 과정을 더듬어 본다.
스토니브룩대 한국학과
스토니브룩대에 한국학과의 씨앗이 뿌려진 것은 UC 버클리에서 박사학위를 딴 박성배교수가 1977년 9월 이대학 종교학과 교수로 부임하면서 비롯됐다. 박교수가 스토니브룩에서 제일 먼저 한 일은 국제규모의 ‘원효사상 심포지움’을 두번?개최한 일이었다. 1979년 5월1일 열린 첫번째 심포지움이 성공을 거두자 대학측이 한국사상 강좌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그리고 두번째 심포지움에 앞서 1981년 2월24일 대학 당국이 ‘한국 종교학과정 설립 추진위원회’를 정식으로 발족시켰다. 이어 3월4일에는 동대학에 한국학과 설립을 후원하는 뉴욕일원의 한인들이 추진성명을 발표했다. 2차 심포지움(3월22일-23일)도 성황을 이루었고 다음해인 1982년 제1회 스토니브룩 한국학 발전기금 모금 ‘한국의 밤’ 행사가 동대학 영빈관에서 개최됐다.
모금은 83년 5월 ‘한국학과 설립추진 모금위원회’로 명칭 바꾸고 위원장에 강자구 박사를 추대하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부위원장에는 최종일, 고광재 박사, 상임고문에 박성배 교수를 선출, 범동포적인 모금운동에 돌입했다. 당시의 목표는 1백만 달러였다. 모금총액이 1백만달러가 되면 주정부에서 매칭펀드 1백만달러를 합해 총 2백만달러로 명실상부한 한국학과로 발족시킨다는 청사진을 마련했다.
이듬해인 84년 1월15일 리버사이드처치에서 열린 제2회 ‘한국의 밤’ 행사는 성공적이었다. 350여 한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무용가 조원경, 가야금 박상원등이 출연한 이날 행사의 모금액은 3만달러가 조금 넘었다. ‘한국의 밤’ 행사는 해를 거듭할수록 뉴욕 한인사회의 문화적 명물이 되었고 85년의 3회를 거쳐 86년의 4회에 이르러 모금액이 총 20만 달러가 넘었다. 강회장이 한국 요로에 스토니브룩 한국학과 설립의 중요성을 알리고 청와대까지 로비를 한 결과 한국학술재단을 통해 매년 2만달러씩이 주미대사관, 총영사관을 거쳐 지원됐고
특히 개인적인 고액 기부자들도 생겨났다. 강자구 위원장이 솔선해 1만달러를 쾌척한데 이어 최수용, 조일환, 최희용, 정수일등이 거액을 기부했다. 그렇게 8년동안 모금한 액수가 60만 달러를 넘었다.
당초 스토니브룩이 목표로 세웠던 한국학과의 과정은 한국어, 한국역사, 한국 예술, 그리고 한국 철학과 종교사상등 4분야였다. 그리고 그 첫출발로 1987년 1월에 ‘한국학 프로그램(Program in Korean Studies)’을 공식 출범시키면서 박성배 교수를 디렉터에 임명했다. 그후 1989년 최익환 교수(한국문학, 은퇴)가 제1대 한국학과 교수로 부임한 이래 정진배, Mark Setten, 조성택, 윤원철 찰스 뮬러, 박진영, 전헌등이 거쳐갔으며 현재는 박성배 교수(불교의 화엄사상과 선종),?김홍경 교수(유교, 도교 및 동양 지성사)와 함께 주현, 손희정, 지은정 교수가 한국의 문화와 언어를 가르치고 있다.?스토니브룩대는 또한 현재 한국의 많은 대학들과 활발한 학술교류 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한국으로부터 많은 학자들과 문화인들을 방문학자라는 이름으로 초청하여 문화교류와 학술적인 공동연구를 전개하고있다.
1995년 가을 미국의 아시아학회(AAS: Association for Asian Studies)는 버팔로 뉴욕주립대학교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한국학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라는 주제를 채택한 적이 있었다. 이때 ‘스토니브룩대의?한국학 프로그램의 성공의 비결’을 단일 주제로 토론한 결과 한국학 발전의 한 모델로 선정했다. 여기서는 뉴욕 일원 동포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점과 대학당국의 조직적인 후원이높이 평가되었다.?그리고 다음 세가지 점들이 무게있게 언급되었다.
첫째, 뉴욕일원의 한인들이 조직한 ‘스토니브룩 한국학회’는 단순한 모금 단체가 아니라 매월 모여 함께?한국을 공부하면서 스토니브룩의 한국학 운동에 앞장 섰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이런 운동을 정열적으로 이끈 사람들은 특히 강자구 내과의사가 초기에 10년이 넘도록 희생적으로 앞장 섰으며, 김수곤 정신과 의사가 현재도 10년이 넘도록 한국 공부 모임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이밖에도 임원기, 김병석, 윤여민, 배시영, 윤명희, 송웅길등 역대회장들이 계속 뒤를 이어 운동을 이끌어 갔다.
둘째, 대학당국의 후원자로는?존 마버거 총장과 그 후임인 셔리 케니 총장, 로버트 네블 인문대학장의 공헌을 언급하지 않을수 없다. 이들의 열성과 적극적인 후원이 원동력이 되었다. 이들은 모두 한국을 여러번 방문했고 돌아 와서는 예외없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한국의 심오한 문화전통을 높이 평가했다. 셋째,뉴욕의 명물 스토니부룩의 ‘한국의 밤’ 행사에서 모금된 돈으로 박사과정에 장학제도를 마련,?많은 한국학 전문가들을 배출시켰다. 박사과정은 물론 석사, 학사과정 학생들에게도 많은 장학금을 주어 그 혜택을 넓혔다.?
지난 2000년 이래 한국학회를 이끌어오고 있는 김수곤 회장은 매달 한차례씩 열리는 스터디 그룹을 종전의 교양강좌식에서 탈피, 참석자 스스로가 강사가 되기도 하고 학생이 되어 한 주제를 놓고 파고드는 토론으로 발전시켰다. 매달 청년학교에 모여 한국의 전통과 문화, 철학, 종교, 역사등 선택한 주제를 놓고 열띤 토론의 장을 운영하고 있다.
럿거스대 한국어 강좌
한인학생.한인사회서 매칭펀드 모금
뉴저지 주립 럿거스대의 한국어 강좌 설립운동의 시초는 1988년 동대학 한인학생회 주최로 이정환등 박사학위를 밟고있던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야간 강좌가 시작됐고 학점이 배정되는 한국어 강과로 발전시키기 위한 모금운동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매년 ‘한국문화의 밤’를 통해 계속되었다. 91년 1월 한인학생회(당시 회장 이승재)는 모금대상을 넓히기 위해 학부모와 동창회원들에게 취지문을 발송하는 한편 럿거스 재단에 구좌를 설치하고 그간 모금된 7천달러를 입금시켰다. 이 소식에 접한 경제학과 유종근 교수(전 전북지사) 가 동대학 한인교수와 학생회 대표, 그리고 뉴저지 한인사회 리더들과의 회동을 주선하고 한국학과 설립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당시 북부뉴저지 한인회(회장 서의수)와 뉴저지 한인총연합회(회장 박동근)가 이의 중요성을 인식, 한인회 사업으로 모금 골프대회를 주최하면서 후원활동이 시작됐다. 이어 각지역 한인회, 상인번영회, 기타 단체들이 모금운동에 동참하게 되었고 대학측과의 교섭과정에서 창구 일원화가 이루어졌다. 1992년 2월8일 뉴저지총연(당시 회장 이영빈)은 임시총회를 소집하여 총연 산하기구로 럿거스대 한국학과 후원회를 발족시켰다. 위원장에 유인석, 상임위원에 지성철 교수, 오다윗 신부등이 선출되었고 각 지역한인회장들이 자동직 위원으로 위촉되었다. 후원회와 학교당국이 수차례 회의를 통해 매년 3만달러의 강좌 운영비 가운데 후원회가 절반인 1만5천달러씩을 3년간 부담하고 나머지 기금은 학교재단이 출원하는 방식으로 학국어 과정을 설치키로 합의했다. 그리고 첫해 약정액을 재단측에 납부함으로서 1992년 9월7일 역사적인 한국어 강좌가 시작됐다.
이후로 후원회는 여러해에 걸친 모금활동을 통해 부담금을 완불함으로서 학교당국에 의한 한국어 과정이 정착되었다. 모금은 안트리오 초청음악회, 장금정 도예전시회, 골프대회등을 통해 이룩되었고 정영인, 최선근, 심재길, 조용래, 이건용등 개인 기부자들에 의해 충당되었다. 현재 럿거스대 한국어 과정은 초, 중, 고급반을 비롯해 한국문화, 한국역사, 종교둥 전반에 걸친 연구및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지난해부터 한국어 교사양성 프로그램 석사과정을 뉴욕, 뉴저지 일원에서 처음으로 설치해 금년에 첫 졸업생을 배출했다.
럿거스대 한국어 강좌(1993)
조종무<언론인. 한국 국사편찬위원회 해외사료 조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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