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이 다가오면 생각나는 잊지 못할 감사 카드가 하나 있다. 내가 채용하려 했던 어느 구직자가 보낸 것이었다.
3년 전 실험실 테크니션을 물색할 때였다. 인사과에서 한 응모자의 이력서를 보내왔다. 이름은 마틴. 나이는 30. 남가주 출생의 남미계 미국인으로 고교 졸업 후 조경회사와 시 공원 관리직원으로 일한 경험이 있고, 결혼해서 두 살된 아들이 있으며 스페인어도 능숙하게 구사한다는 내용이었다.
면접을 위해 마틴과 마주 않았다. 외모가 준수한 그는 왠지 정서적으로 불안정해 보였다. 나는 그가 나이에 비해 순진하다고 생각했다.
“경험은 없어도 되지만 배우려는 의지와 일에 대한 흥미는 있어야 합니다. 잠깐 일하다 그만 두면 서로 손해겠지요"
나는 그가 맡을 일을 상세히 설명해 주고 공장을 견학시켰다.
마틴과 다시 마주 앉았다. 여전히 그는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의식적으로 나의 시선을 피한다는 생각이 들며 내가 그의 시선을 피해주었다. 이미 훑어본 그의 이력서를 만지작거리다 무심코 나의 눈길은 그의 경력 란에 가서 멈췄다. 내가 뭘 잘못 보았나 싶어 눈을 씻고 다시 보아도 틀림없이 ‘1996’이었다.
"마틴, 연도가 잘못 표시됐어요. 2006년이 맞지요?"
그의 마지막 경력이 1996년이었던 것이다. 그는 뒤통수라도 한대 얻어맞은 듯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천장을 잠시 올려다보고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난 처음부터 미스터 황이 알고 있는 줄 알았어요. 1996년이 맞아요."
“아니, 지난 10년 동안 도대체 뭘 했다는 거요? 설마 놀고먹지는 않았겠지요. 가족이 있는데…" 내가 웃으며 물었다. 그가 고뇌에 찬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감옥에… 사회에 나온 지 이제 두 달 쨉니다"
그의 대답에 이번엔 내가 놀랐다. 나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그 연유를 물었다.
“살인이요. 직장 동료가 주범이었어요. 현장에 함께 있다 공범으로 체포됐지요"
그가 체념한 듯 털어놓았다. 모범수에게 주어지는 혜택으로 수형기간 중 옛 애인과 결혼도 했고 아이도 하나 얻었노라고 덧붙였다.
“이 인터뷰가 아홉 번째예요. 채용이 안 돼도 그만입니다. 열 번째가 예약돼 있거든요"
그가 냉소적으로 말을 뱉으며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너도 적당히 둘러대서 나를 퇴짜 놓겠지" 하는 태도였다.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떨어뜨리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전과 사실을 인사과에 보고해야 하나, 그가 실험실 동료들과 과연 잘 어울릴 수 있을까, 마틴을 채용할 것인가? 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나의 결단을 통보했다.
“마틴, 같이 일합시다. 나만 알고 있을 테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마틴에게 악수를 청했다. 마틴이 나의 손을 꼭 잡았다. 눈물이 그의 눈에 반짝 어렸다.
홀로 어려운 결단을 해놓고 나는 며칠간 남모르는 고민에 빠졌다. 전과를 은폐한 사실을 사장이 알게 되면 문제를 삼지 않을까, 마틴이 살인 전과자라는 사실이 사내에 알려지면 어쩌나, 또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을까?
마틴의 첫 출근 날이 되었다. 그러나 입사 신체검사까지 마친 그는 나의 고민을 헤아리기라도 한 듯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부끄럽게도 안도의 한숨을 몰래 내쉬었다. 어쩌면 나는 그가 나타나지 않기를 은근히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한 달 뒤 나는 편지 한통을 받았다. 마틴으로부터 온 감사 카드였다.
“미스터 황, 인생의 가장 어려운 순간에 내 손을 잡아주었어요. 조경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살겠어요. 감사합니다. 마틴”
황시엽 / W.A. 고무 실험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