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동란이 발발하기 약 한달전인 1950년 4월19일 보스턴에서는 전통의 보스턴 마라톤대회가 열렸다. 그리고 이대회에 출전한 한국선수 3명이 모두 1,2,3등을 차지하는 감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보스턴은 물론이고 대한민국 전역이 이 승전보에 열광했다. 1등 함기용, 2등 송길윤, 3등 최윤칠 선수등이 차례로 결승점에 들어옴으로서 마라톤 강국의 이미지를 굳히며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국민들의 열광도 잠시, 곧이어 동족상잔의 비극 6.25동란의 비보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당시 한국 선수들의 기록은 함기용 2시간32분39초, 송길윤 2시간35분58초, 최윤칠 2시간39분45초였다.
이날의 마라톤 코스는 보스턴 근교 합킨턴에서 출발, 뉴튼힐, 매서추세츠힐, 그리고 핫브레이크힐등을 거쳐 피니쉬 라인은 코플리 광장이었다. 당시 한국 선수단을 이끌고 온 코치는 베를린 올림픽 우승자인 손기정이었다. 신생 대한민국의 대표 선수로서 태극기를 가슴에 공식으로 달고 출전한 경기여서 그에게는 남다른 감회가 있었을 것이다. 한국 선수들이 우승을 독차지한 사실을 보도한 4월20일자 보스턴 포스트지는 ‘세 한국 선수들의 행복한 미소’라는 설명 아래 세 선수들이 활짝 웃고있는 사진을 3단 크기로 싣고 1면 톱기사를 할애했다.
이날 우승의 영광을 차지한 함기용 선수는 기자 인터뷰에서 트레이너 백선기가 없었더라면 자신은 코스를 잘못 들어 자칫하면 실격당할뻔 했던 순간을 솔직히 피력한 장면도 있었다. 골인 지점 4마일을 남겨놓고 내 다리는 나를 무척 괴롭혔습니다. 나는 그때마다 근육이 타이트해져서 심한 고통이 뒤따랐습니다.
또한 뉴톤이라는 동네에 들어서 커먼웰스 애비뉴와 센터 스트리트의 교차점에 다달았을때 나는 코스를 혼동해서 잠시 벗어났었습니다. 그때 트레이너 백선기
씨가 달려와서 큰소리로 나에게 오던 길을 되돌아 가라고 지시했습니다. 나는 그때까지 선두에 있었기 때문에 코스를 이탈한 사실을 전혀 모로고 있었습니다. 되돌아가서도 나는 내내 선두를 유지할수 있었습니다. 당시 백선기는 오크라호마주 필립스 대학을 다니던 유학생으로 손기정의 부탁을 받고 달려와 트레이너로서, 통역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경기 당일 뉴욕으로 부터 남궁염 총영사 부부와 소수의 한국인들이 참석해 감격스런 순간을 목격했으며 이 승전보는 곧 국내로 전해져 온 국민이 환호했던 경사였다.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백선기의 뒷바라지를 직접 눈여겨 보았던 남궁염 총영사는 대회가 끝난후 5월12일자로 백선기에게 헌신적인 협조에 대해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는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한편 이보다 3년 앞선 1947년의 51회 대회에서 역시 한국선수 서윤복이 2시간25분39초의 세계신기록을 수립하면서 우승하는 개가를 올렸다. 당시 서윤복 선수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이어서 사실상 무국적 선수였지만 가슴에 KOREA 표식과 태극기를 달고 출전했다. 이대회에는 남승룡, 손기정 선수등이 함께 참가했으나 손기정은 경기 직전 출전을 포기했다. 선수들은 한국을 떠날때 부터 힘이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프로펠러 미군용기에 탑승한 것만도 다행이었고 괌, 하와이, 샌프란시스코 등지를 거쳐 1주일만에 도착한 몸이라서 여독을 풀지도 못한채 경기에 임했다. 경기마다 선수들에게는 나름대로 뒷얘기가 있기 마련인데 당시 서윤복 선수에게도 해프닝이 있었다.
선두를 달리고 있던 서선수가 30킬로미터 지점에 다달았을때 한 시민이 박수를 치면서 개끈을 놓치는 바람에 개가 갑자기 도로 안으로 뛰어들었다. 뛰어든 개 때문에 앞서가던 서윤복이 넘어지면서 그사이 7-8명의 선수들이 이를 피하며 앞다투어 지나갔다. 서선수는 다시 일어섰으나 이번에는 운동화 끈이 풀려 이를 수습하느라 상당히 뒤쳐졌지만 끝내 선두를 탈환해 우승을 거두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그후 반세기가 지나도록 이대회에서 우승한 한국 선수는 좀체로 나타나지 못했다. 코스도 난코스이지만 대회에 출전한 몇몇 선수들이 월계관 앞에서 번번이 좌초했다. 1957년 대회에 출전한 임종우는 2시간24분55초라는 한국 최고기록을 세웠지만 3위에 머부르고 말았다. 93년 대회에 출전한 김재룡은 2시간9분43초로 2위에 머물렀다. 이대회는 주최측이 역대 우승자를 초청한 의미있는 대회로서 한국선수로 서윤복, 함기용등이 참석했었다. 1년후인 94년 황영조 선수가 대회에 도전했지만 그역시 5위애 머물렀다. 당시 기록은 2시간8분9초였다.
그리고 나서 2001년 제105대회에 출전한 이봉주 선수가 2시간9분43초 기록으로 반세기만에 월계관을 차지했다. 특히 이봉주는 마라톤 왕국 케냐의 11년 연속 우승을 저지한 선수라고 외신들이 대서특필했다. 이와같이 보스턴 마라톤 대회는 한국민과 아주 친밀한 대회가 되고 말았다. 요즘에는 한국 대표선수들뿐 아니라 미전역에서 마라톤을 하는 동포 선수들이 대거 참가하는 모습을 볼수 있다.
1950년 대회를 휩쓴 한국선수들. 뒷줄 오른쪽 부터 손기정 코치, 함기용 우승자, 백선기 트레이너. 앉은 오른쪽이 2위 송길윤, 왼쪽이 3위 최윤칠.
■ 출발점 부근에 ‘한국선수 우승 기념비’
NE 이민 100주년 기념사업회, 보스턴 장로교회 후원으로 건립
보스턴 마라톤은 미국 독립전쟁 당시의 투쟁을 기념해 1897년 창설된 세계최고 권위의 국제마라톤으로서 매년 4월 셋째주 월요일에 열린다. 아메리카 마라톤으로 불리우는 이대회는 런던, 로텔담, 뉴욕시 마라톤과 함께 세계 4대 마라톤으로 꼽히고 있다.
이 마라톤 대회의 출발점인 합킨턴의 2 메인 스트릿에는 역대 한국 우승자들의 위상을 기리는 기념비가 서있다. 대회 우승자인 서윤복, 함기용, 이봉주 선수등의 업적을 기리고 보스턴 지역에 살고있는 한인들의 자긍심을 고취하는 뜻에서 기념비를 세웠다. 이 기념비는 지난 2004년 10월3일 뉴잉글랜드 이민 100주년 기념사업회가 마라톤 출발점에 소재한 보스턴 장로교회(담임목사 권덕영)의 후원을 얻어 건립한 것이다. 제작은 원덕수 건축사가 담당했다. 보스턴 장로교회는 매년 마라톤 경기 당일 프로선수들이 출발시간 까지 몸을 풀며 휴식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교회 체육관을 제공하고 있다. 2001년에 우승한 이봉주 선수가 경기에 임하면서 이 교회의 보살핌 덕을 톡톡히 보았다고 한다.
스타트 라인 부근에 세워진 한국선수 우승 기념비
조중무<언론인,한국 국사편찬위원회 해외사료 조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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