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53년이 저물어가는 12월초 강원도 관대리에 위치한 미 10군단장 지도 아래 새로 창설되는 한국 야전군 사령부 창설을 위해 지명되었다. 나는 2사단장 근무 6개월에 또 다른 일을 개척키 위해 사단을 강영훈 장군에게 위임하고 제1 야전군 초대 참모장 겸 군사령관 대리라는 명칭을 받고 일동에서 경비행기로 관대리를 향해 떠났다.
나는 우선 관대리에 있는 미 10 집단 군단장이던 클라크 중장에게 신고하였다. 그는 2차대전 때 미 전차 지휘관으로서의 명성이 있었으며 미군 장교들에 의하면 교육에 관한 권위자로 알려져 있는 성실 근엄 노력형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의 참모장 하비 피셔 대령은 후일 주한 미 1 집단 군단장이 되었으며 작전 참모 애브램 대령은 유럽에서 패튼 장군의 전차 사단의 선두 대대장을 지낸 자로서 후일 미 육군 참모총장을 지내다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이름을 기리기 위해 미국 전차 이름을 래브램 탱크라 명명한 줄로 안다. 클라크 장군은 나에게 자기 옆 숙사를 제공하며 그와 그의 일반 참모들과 장군 식당에서 식사를 같이 하게 했다. 식사 후는 영화 관람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2사단장으로서의 일동 생활과 비교해 호화스런 미 참모들의 생활에 놀라는 동시에 개울 맞은 편에 건설 중이던 야전군 사령부를 준비 중인 한국 참모들에 대한 죄의식에 고민하였다. 부족한데서 지휘할 수 있는 자격은 오로지 장병들과 생활고를 같이하는 길 뿐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
나는 클라크 중장과 그의 참모들을 알만한 기한은 다 지났다고 판단해 수일 후 클라크 장군에게 한국 측 건설 현장에 가서 기거했으면 한다는 소원을 조심스레 이야기해보았다. 클라크 장군은 최초에는 당황하는 눈치였다. 다른 참모들에게 나에게 서운한 대접이라도 한 일이 있었는지 물어본 모양이다. 나는 재차 내가 불편한 것이 아니고 한국 군대의 지휘관으로서 부하들과 고락을 같이하겠다는 요지를 설명해주었다. 그도 지휘관인지라 승낙해 주었다. 이로써 나는 시내 물 건너편에서 정지 공작 중이던 관대리 제1 야전군 사령부 장병들과 군사령부가 창설될 때까지 사령부 부지 내에서 거주하게 되었다.
나는 우선 2인용 천막 4개를 내 막사를 중심으로 설치케 했다. 일반 참모용 막사다. 당시 막사의 불편으로 고위급 참모들은 인근 마을 민가를 숙식을 위해 이용하는 형편에 있었다. 그리고 나는 장성 식당을 개설해 참모급 장교들이 이용토록 하였다. 나는 집 사람에게 부탁해 개성 보쌈김치를 담아 보내도록 부탁했다. 나와 같이 식사하는 일반 참모들을 유혹하기 위해서이다. 저녁에는 나의 천막이 일반 참모들의 노름장이 되었다. 못하는 화투와 트럼프가 야밤까지 계속돼 웬만하면 영내에서 취침함이 편하게 유도하였다. 식당과 잠자리가 개선되니 영내 취침 장교들의 수가 늘기 시작했다.
한번은 야밤 장교 침실용 막사를 순시해 보았다. 그곳에서 취침하고 있는 장교 중에는 독립군 출신으로 나이든 장교가 많았다. 그들은 대한민국이 독립된 후 초급 장교로 임관시킨 독립군 장교들이었다. 그들에게 외박을 왜 안하나 물어보았다. 자기들은 죽지 아니하고 독립된 나라의 군복을 입고 있는 것만도 행복하다는 말을 듣고 역시 독립군 출신은 다르다고 느껴보았다. 그들은 후에 병사구 사무일에 봉사하다가 연령 관계로 일찍 군문을 떠나게 되었으나 독립군 출신으로서는 어느 정도 잃은 나라를 찾기 위해 해외를 떠돌던 한의 일부를 풀어보았다고 느껴본 사람들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