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온 지 30년 된 멕시코 이민자 페레다 부부와 딸 다마리스.
라티노 이민자 게토화는 기우
3세대 이민자 모국어 거의 상실
어느 때보다 빨리 영어권 동화
이민자의 증가와 함께 미국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움직임이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다. 스페인어를 쓰는 라티노 이민자들이 미국 사회에 동화하지 않고 게토화 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국가 분열까지 우려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민자 언어사용에 관한 한 보고서는 이것이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LA 타임스 기사를 간추려 소개한다.
마누엘 페레다(57)는 수년 째 밤에는 영어를 배우고 낮에는 식당에서 접시 닦기로 일한다. 그의 아내 로자(54)는 수시로 영어 관용구를 익히며 스패니시-영어 사전을 들춰 본다. 그들은 영어를 더 배울수록 더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으며 더 많은 돈을 멕시코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미국에서 30년 이상 산 그들이지만 영어보다는 스페인어가 편하다. 헌팅턴 팍 인근 집에서나 직장에서는 스페인어를 자주 쓴다.
그러나 미국에서 태어난 딸 다마리스(20)는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나 아주사에 있는 대학에 다닐 때, 디즈니랜드에서 일할 때 주로 영어를 쓴다. 그녀는 이중 언어의 가치를 알지만 미국에서 자라면서 스페인어보다는 영어로 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29일 퓨 히스패닉 센터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페레다 가족과 같이 스페인어를 주로 쓰는 이민자 가정도 세대가 지나면 점점 더 영어에 능숙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3대만 되도 스페인어는 사실상 자취를 감춘다는 것이다. 2002~2007년 자료를 토대로 작성된 이 보고서에 따르면 라티노들도 영어가 경제적 성공의 열쇠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자리를 얻고 주류 사회에 합류하기 위해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이 연구소 선임 연구원인 드베라 콘은 말한다. “언어야말로 동화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결과는 미국 이민 역사가 확인해주고 있지만 라티노 이민자는 미국 사회에 동화하려하지 않으며 그 숫자가 늘어나면서 영어에 위협이 되고 있다는 널리 퍼진 편견과는 배치되는 것이다.
UC 어바인 사회학 교수인 루벤 럼보트는 “사람들이 ‘스페인어를 원하면 2번을 누르시오’ 하는 메시지에 과민 반응을 보인다”고 말한다. 그는 “영어가 이민자들에 의해 위협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이민자들의 영어 습득은 미국 역사상 지금이 가장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영어 숙련도는 오랫동안 남가주와 미국 전역에 걸쳐 논쟁의 대상이 돼 왔다. 학교 시험이나 가게 사인, 투표용지에 이르기까지 어떤 언어를 쓸 것인가를 놓고 싸움이 벌어졌고 연방 의회에서는 직장에서 영어만 사용할 것을 강요하는 고용주 처벌 문제를 놓고 최근 논쟁이 있었다.
이민을 제한하고 영어만 사용할 것을 법제화하기를 원하는 그룹은 미국 기업들이 라티노가 스페인어를 계속 사용하는 것을 쉽게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보수적인 이민 정책을 지지하는 이민 문제 연구소의 마크 크리코리언 사무국장은 “퓨 연구소 보고서는 장기적인 문제점을 보여준다”며 “미국에 살고 있는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자녀 중 1/8이 영어를 잘 못하며 이민자들 손자 손녀의 6%도 영어를 잘 못하는데 이는 나쁜 소식”이라고 말했다.
영어를 미국의 공용어로 만들 것을 주장하고 있는 ‘U.S. English’의 대변인 랍 툰켈은 퓨 보고서에 나타난 것처럼 멕시코 이민자의 71%가 잘 못하는 것은 걱정거리라고 말했다. 스페인 말만 해도 각종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영어를 배우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이제 미국은 영어가 옵션인 사회가 돼 가고 있다”고 말했다.
1만4,000여 라티노를 상대로 실시한 퓨 보고서에 따르면 라티노 1세 중 영어로 원활히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고 말한 사람은 23%에 불과했지만 2세로 가면 이 숫자는 88%, 3세로 가면 94%로 늘어난다. 라티노 중에서도 멕시칸들의 영어 습득이 가장 더딘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이들의 교육 수준이 낮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 보고서는 또 라티노의 88%가 영어 습득이 미국에서 성공의 지름길이며 46%는 영어가 차별의 가장 큰 요인으로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살바도르에서 이민 온 마누엘 만시아(39)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할리웃에 있는 일일 노동자 센터에 가 건축 일을 찾아보기 전 영어 공부를 한다. 때로는 이 센터에 개설돼 있는 영어 강좌를 듣기도 한다. 지난 6년 간고용주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영어를 배웠지만 좀 더 잘 하면 더 돈을 많이 주는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것으로 그는 믿고 있다. 그는 “영어를 못해서 기회를 놓친 적이 있다”며 시간 당 15달러를 주는 드문 일자리가 있었으나 언어 때문에 결국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
퓨 보고서에 따르면 이민자 중 영어를 잘 하는 그룹은 대학을 나왔거나 어려서 왔거나 미국에서 오랜 기간 지난 사람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비슷한 보고서들도 이민자들의 모국어는 시간이 지날수록 퇴색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럼보트가 작년에 발표한 보고서는 라티노들이 아시안이나 유럽인들보다 모국어를 오래 보존하지만 이들도 3대가 되면 96%가 영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돼 있다. “세금과 죽음 같이 LA에 사는 멕시칸들에게도 모국어의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럼보트 보고서는 결론짓고 있다.
갓난아기 때 엘살바도르에서 온 자니 로드리게스(27)는 2003년 롱비치 스테이트 칼리지를 졸업했는데 영어와 스패니시를 모두 능숙하게 구사한다. 퓨 보고서는 44%의 라티노성인이 두 가지 언어를 구사하며 직장에서 28%는 스패니시만을, 24%는 영어와 스패니시를 같이 쓰는 것으로 분석했다.
라티노를 상대로 비즈니스를 하는 페레다 부부의 경우 스패니시를 사용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처음 왔을 때보다 미국 사회가 스패니시 사용자들에 대해 관대해 졌다고 말한다. 병원이나 관공서를 제외하고는 거의 어디서나 스패니시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이들은 영어를 배우는 것이 어렵지만 미국에 살러 온 이상 더 영어를 잘 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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