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의 호화 술집 Y바. 손님 중 한 명인 에이프릴 사전트(30)가 의자에서 몸을 기울여 술병 가운데를 감으며 올라간 돋을 새김된 뱀 무늬를 손가락으로 쓰다듬고 있다. 백화점 화장품 가게 앞에서 향수병을 고르는 것 같은 동작이다. 상점에서는 한 병에 60달러, 술집에서는 300달러 정도에 팔리는 이 보드카는 이탈리아 디자이너 로베르토 카발리가 내놓은 것으로 내용물과는 별 상관없이 드러매틱한 포장과 비싼 가격표로 한몫 보는, 점점 향수 장사 같아지는 요즘 리커 비즈니스의 면모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멋있고 비싼 알콜 음료를 마시려는 미국인들의 입맛에 맞춰 요즘 주류시장은 수백종의 새 술들로 넘치고 있다.
<특별 제작된 자체 받침에서 조명을 받아 빛나는‘로베르토 카발리’ 보드카(왼쪽)와‘엑스터시’리커>
“비쌀수록 잘 팔린다”
술시장 갈수록 고급화 드러매틱 분위기 위해
내용물보다는 포장·이미지가 한몫
음식과 음료의 소매판매 동향을 추적하는 시장조사회사 AC 닐슨에 따르면 미국 사람들은 술값으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돈을 쓰고 있어 1995년부터 2005년 사이에 증류주, 포도주와 맥주 매출은 47%나 증가했다. 그 추세는 증류주의 경우 특히 두드러져 팔린 양으로 측정할 때 증류주 매출은 2002년 이래 10%가 늘었고 로베르토 카발리 보드카처럼 값비싼 술이 많아짐에 따라 매출 수익은 더 빨리 증가, 2002년 이래 21%가 늘었다.
값에 상관없이 고급화되어가는 소비자들의 수요에 맞춰 업계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 2년 사이에 플레이버를 첨가한 보드카, 럼, 테킬라는 210종이 넘게 새로 나왔다. 한 병에 평균 25달러가 넘는 수퍼 프리미엄급만 해도 수십종이나 된다. 미국 증류주협의회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05년 사이에 이런 고가의 주류 판매로 벌어들인 돈은 62%가 증가했다.
더 비싼 것을 마시는 추세는 포도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한 병에 15달러가 넘는 포도주 판매는 지난해에 11%, 올해는 18%가 증가했다. 반면 맥주는 제일 비싼 수입 맥주를 제외하고 매출이 신통치 않다.
독주의 판매가 증가한데는 젊은층이 큰 몫을 했다. 라스베가스에서‘파트론’ 테킬라를 마시는 것이 목격된 패리스 힐튼이나 래퍼 에미넴 같은 스타들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지만 주류회사들도 저명 인사들을 이용해 소문을 낸다. ‘봉’ 보드카는 지난 5월 마이애미에서 열린 패리스 힐튼의 CD 출시를 후원했고 도널드 트럼프도 지난달에 열린 래퍼 디디의 CD 출반파티에 자기 이름을 단 ‘트럼프 보드카’ 3병을 내놓았다. 이 보드카는 24k 순금으로 그림을 그린 병에 담겨 있다.
가미한 술은 더 잘 팔린다. 보드카는 원래 아무 맛도, 냄새도, 향도 없는 술이지만 주류회사들은 거기에 플레이버를 넣고 알콜 도수를 낮춰 그 맛을 더 도드라지게 만들어 판매한다. 예를 들어 ‘압솔룻’이 1월에 발매할 배 맛이 나는 보드카는 10번째 선보이는 가미 보드카다. 현재 전체 보드카 매출의 11%를 차지하고 있는 플레이버드 보드카는 더 많은 여성들을 주당에 입문하게 만들었다. 순수파는 보드카란 아무 맛도 나지 않아야 한다고 불평하지만 바텐더들은 가미한 보드카를 가지고 계속 새로운 칵테일을 만들어내고 있다.
비싼 보드카를 마시면 다음날 숙취 증세가 덜하다는 사람도 있으나 신분과시용으로 값 비싼 보드카를 마시는 사람들도 있다. 술집에서 병으로 주문하면 소매 값의 5~10배를 더 내야 하는데도 호기롭게 병째 주문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값비싼 증류주에 대한 최근의 열광은 뉴욕의 주류 수입업자로 지금은 고인이 된 시드니 프랭크가 1997년에 ‘그레이 구스’ 보드카를 만들면서 시작됐다. 당시 보드카 시장의 리더였던 ‘압솔룻’보다 병당 10달러 정도 더 비싸게 내놓아 세련된 이미지를 키우려는 생각이었던 그는 고급 자선행사에 아낌없이 기증하고 할리웃 스타들이 타는 리무진에도 납품했다. 곧 매출이 날개 돋친 듯 신장됐고, 보드카의 생산지로 프랑스를 고르고 무광택 젖빛 유리에 새가 날아오르는 이미지를 넣은 ‘그레이 구스’는 경쟁사의 눈길을 끌어 럼으로 유명한 ‘바카르디’가 2004년에 23억달러에 매입했다. ‘그레이 구스’는 여전히 조금 더 고급 보드카를 마시고 싶은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상표다.
<시카고의 Y바에 진열된 술병들>
‘그레이 구스’의 성공으로 테킬라 고가화의 문도 열리기 시작했다. 모발관리용품 ‘폴 미첼’ 라인을 만든 존 폴 데호리아가 테킬라 회사 ‘파트론’을 만든 것은 1989년. 우아한 코르크 뚜껑에 멕시코 전역에서 가장 좋은 아가베 선인장만 원료로 사용한다는 자랑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신통치 않았던 매출이 2001년, 탐 크루즈가 영화 ‘바닐라 스카이’에서 마시는 장면이 사람들 눈에 띈 이후 달라지기 시작했다. 스눕 독 같은 래퍼들이 가사에 ‘파트론’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한 것도 도움이 됐다. 지금까지 ‘파트론’은 랩부터 컨트리까지 100곡도 넘는 노래 가사에 언급됐다. 이 회사의 최고 영업책임자 존 맥다널은 음악가들에게 ‘파트론’을 다뤄달라고 돈을 지불한 적은 없다지만 ‘파트론’을 마케팅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일년에 2,500만달러 정도를 판촉에 쓰고 있다.
래퍼 제이-Z 같은 이는 아예 주류업에 뛰어들었다. 고급 보드카 ‘아마데일’을 좋아하다 못해 스코틀랜드에 있는 그 제조사를 사들였다. 저명인사들이 술에 투자하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고가의 증류주야말로 알콜음료 부문에서 가장 이윤이 많이 남는 것이기 때문이다. 증류주의 평균 총 이윤폭은 20% 이상으로 포도주의 18%, 맥주의 15%보다 높다.
그런데 손님을 끄는 데는 보드카 자체보다 병의 디자인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도널드 트럼프는 네덜란드에서 수입하는 ‘트럼프 보드카’ 병을 ‘아이 ♥ 뉴욕’ 광고 캠페인으로 유명한 뉴욕의 그래픽 디자이너 밀튼 글레이저에게 디자인하게 했다. 네덜란드 회사 ‘봉 스피릿’은 지난해에 플로리다에서 출시한‘봉 보드카’
<‘봉 보드카’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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