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의 제사, 형식에 구애받지 않아
한국에서 온지 얼마 안된 L모씨(38, 나일스)는 최근 선친의 기일을 맞아 제사 준비를 하던 중 의외의 변수에 당황했다. 돌아가신 곳은 한국인데 제사를 미국에서 지내는 경우 기일 산정을 어떻게 하는지 몰랐기 때문. 주위에 물어봤지만 제각각 ‘한국 시각에 맞춰야 한다’, ‘제사를 지내는 당사자 시간이 중요하다’, ‘어떻든 상관없다’ 등 서로 다른 답변이 돌아와 별도움이 안됐다고 했다. 한국에서도 혹자는 고인의 영정까지 모시고 미국으로 가야 한다는 데 반해 다른 일부는 시대가 바뀌어 굳이 그럴 것 없다고 하는 등 일치된 의견이 없었다는 귀띔이다. 그는 심지어 귀신은 바다를 건너지 못하니 제사만큼은 한국에서 지내라는 사람도 있었다며 결국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몰라서 그냥 나 편한대로 했다고 웃었다.
이에 대해 시카고 불타사 주지 현성스님은 예전 유교적 전통이 강했을 때라면 모를까 요새는 그런 형식적인 면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며 몸이 없는 영혼이 시간을 따지거나 바다를 건너지 못한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밝혔다. 그는 제사를 지내는 마음이 진실하면 됐지 기일을 엄수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며 돌아가신 조상에게 뜻을 전하기 위해서는 정성이 제일이라고 전했다. 굳이 제사를 지내야만 할 필요는 없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현성스님은 불교에서는 매년 음력 4월15일 하안거를 시작, 참선에 들어간다며 이 때 조상을 위한 100일 기도를 같이 시작하면 스님들의 영력에 힘입어 좋은 곳으로 천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미주 한인 다수가 믿는 개신교에서는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중서부장로교회 이우섭 목사는 장례를 치르고 일주년이 되는 날 고인을 추모하는 간단한 예배를 드리며 설교와 말씀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며 꼭 기일을 준수하기보다는 각 가정마다 정한 규칙에 따르는 등 일정한 원칙은 없다고 전했다. 다운타운에 거주하는 K모씨(30)는 제사를 지내진 않지만 매년 날짜를 정해 친지들이 모여 가족 예배를 보곤 한다며 제사라는 형식보다는 흩어졌던 가족이 모인다는 내용이 더 중요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편 천주교의 경우 개신교와 같이 원칙적으로는 제사를 권장하지 않지만 영혼 숭배 금지 등 몇몇 제한사항을 준수한다면 예외적으로 허용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한국에서처럼 기일에 친지들이 모두 모이는 경우가 드물어 제사를 지내도 간소하게 치르거나 아예 생략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카고 순교자성당의 한 교인은 제사는 지내도 안지내도 그만이라며 남편이 원해 시부모님 기일에 간단하게 치르긴 하지만 자식들에게 내 제사를 부탁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순교자성당 천요한 신부는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죽은 이를 맡기고 위령미사와 기도만 바쳐도 충분하다며 굳이 지내고 싶다면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 뒤 형식을 갖추려 하지 말고 죽은 이를 정성되게 생각하라고 조언했다. 봉윤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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