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추장 덕분에- 사라 김 리(Sarah Kim-Lee) 1

사라 선생님이 만든 요리와 함께
지난 2021년 9월, 프레시디오 시어터에서 'K-Food Festival: 고추장 만들기 축제'가 주샌프란시스코 대한민국 총영사관 주관하에 개최되었다.

오크라 무침,
현지 일반인을 포함하여 총 80여 명이 참석한 행사에서는 한식 요리연구가 장선용 선생님과 함께 고추장 만들기를 체험하고, 다양한 고추장 요리를 배워보는 시간을 가졌다. 순식간에 마감된 사전 체험 신청과 현장의 뜨거운 반응을 통해 미국 내 고추장 열풍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던 행사였다.
당시 주샌프란시스코 대한민국 총영사관에서는 요리 애호가이자 연구가인 Sarah Kim-Lee 선생님 (이하 사라 선생님)을 K-Food 위원장으로 임명하여 함께 축제를 기획했다.
이렇게 기획된 'K-Food Festival: 고추장 만들기 축제'는 전례 없는 팬데믹 상황으로 모두가 움츠려 들었던 우울한 시절을 ‘함께 모여 정성과 사랑으로 고추장을 담고, 건강하게 한식 문화를 나눈 행복한 추억’으로 만들었다. 서로가 서로를 멀리하며 단절과 혐오의 싹이 피어나던 시절에 그 싹을 제대로 잘라낼 ‘연결의 장‘을 마련한 것이다.

오크라 무침을 든 사라 선생님
사라 선생님은 10대 초반이었던 1971년, 일리노이주 시카고로 이민을 왔다. 그때부터 어린 사라 선생님은 먹고 살기 위해 요리를 시작했다. 안동에서 나고 자라며 익힌 한국의 맛이 그리울 때마다 그 맛을 재현하기 위해 현지 식재료를 연구했지만 미국에서 한국의 맛을 품은 현지 식재료를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늘날 흔히 구할 수 있는 장 류는 물론, 들과 산에서 쉽게 구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나물류를 찾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다행히 사라 선생님이 살던 동네에는 시칠리아와 투스카니에서 이민온 이탈리아 할머니들이 많이 살고 있었는데 그분들의 도움으로 다양한 식재료를 다뤄보고 현지화된 요리 레시피를 개발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개발에 실패했던 맛은 한국의 고추장 맛이었다. 그래서 한 번은 한국에서 미국으로 고추장을 가져오기 위해 꾀를 내었다. 캔공장을 하셨던 사촌분께 부탁해 고추장을 캔에 넣어 밀봉한 것이다. 어린 사라 선생님은 캔에 든 고추장을 짐에 실은 채로 비행기에 탔고, 미국 입국 심사장에서 잔뜩 부풀어 오른 캔에 든 음식이 무엇인지를 심사관에게 설명해야 했다. 당시에는 사라 선생님도 아빠도 영어실력이 형편없었다. 그러나 다행히 아빠의 유창한 일본어 실력 덕분에 일본어를 할 수 있는 심사관을 찾아 무사히 고추장에 대해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캔에 든 음식을 확인하러 심사관 중 한 명이 캔을 들고 사라졌고, 잠시 후 그는 혼비백산하여 돌아왔다. 그리고선 어린 사라 선생님과 아빠에게 지금 당장 모든 짐을 챙겨서 어서 나가라고 다그쳤다고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도통 알 수 없었던 사라 선생님은 머지않아 깨닫게 된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시카고 집에 도착한 사라 선생님과 아빠는 공부하는 엄마를 위해 멀리 한국에서 가져온 캔 고추장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 고추장을 열기 위해 뚜껑에 칼을 갖다 댄 순간, ‘펑’! 캔에 들었던 고추장이 사방으로 튀었다. 비행기를 타고 오며 한껏 부풀어 오른 고추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작은 아파트 벽을 뒤덮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그 상황에서도 사라 선생님의 엄마는 얼굴에 튄 고추장을 쓸어 담으며 아까워하셨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고추장에 대한 사라 선생님의 애정은 남다른 것 같다. 고추장 때문에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생겼고, 고추장 덕분에 고추장 페스티벌도 기획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민 생활을 시작하며 없어서 아쉬운 것은 고추장만이 아니었다. 사라 선생님은 엄마의 빈자리가 항상 아쉬웠다. 미국에서 석사과정을 시작한 엄마는 여유 있게 요리를 할 시간이 없었고, 틈만 나면 봉사하러 나가셨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사라 선생님이 온전히 혼자 채워야 했다.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챙겨 받지 못한 것, 정성스럽게 준비된 식사를 매일 함께 나누지 못한 것 등의 아쉬움은 마음속 한 곳에 한(恨)으로 맺혔다. 그리고 결혼 후 자녀를 낳아 기르며, 아쉬웠던 엄마의 빈자리를 메우듯, 자식들을 위한 요리에 매달렸다. 새벽 3시에 일어나 밥을 지어 김밥을 말았고, 한 입이라도 더 먹길 바라는 마음으로 예쁜 플레이팅에 신경 썼다. 한식 요리를 맛깔스럽게 잘하기로 동네에 소문이 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큰손이 되었고, 나누는 기쁨에 그간 모르고 지냈던 요리의 재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사라 선생님의 요리 안에는 다양한 층의 기억이 켜켜이 녹아있다. 함흥 지방에 사셨던 할아버지가 찾아드셨던 음식의 기억과 안동에서 자라며 맛본 음식의 기억, 그리고 시카고에서 만난 이탈리아 할머니들의 손맛에 대한 기억들 말이다. 오감이 기억하는 그 맛을 현지화해 사라 선생님만의 고유한 창의력으로 재탄생한 요리들은 현재 사라 선생님이 운영하는 인스타그램 계정 @sarahkim_lee 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살기 위해 시작한 요리가 재밌어서 하는 요리가 되는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지만 안주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요리를 즐겨온 덕분에 누구와도 겹치지 않는 독창적인 요리 스타일을 갖게 된 사라 선생님.
‘한국의 맛을 내면서도 그 식재료가 한국 식재료에 국한되지 않는 점’은 사라 선생님 요리의 특징이다. 한 예로 사라 선생님댁 식탁에 자주 오르는 음식 중 하나가 오크라 무침인데 ‘오크라(Okra)’라는 식재료는 한국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사라 선생님이 예쁜 별모양 형태와 끈적끈적한 점액이 만드는 질감을 가진 오크라를 처음으로 본 것은 1971년 이민온 직후였다. 엄마의 아프리카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인데 그 이후에 케이준 스타일 (Cajun style) 오크라 튀김, 소금구이, 무침, 볶음 등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된 오크라를 맛보고, 일식 오크라 튀김, 낫또에 곁들인 오크라 무침, 오크라 미소국 등을 맛보며 한식 양념으로 만든 오크라 무침 레시피를 개발하게 되었다고 한다.
길이 없다면 만들면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현지 식재료를 통해 구현한 사라 선생님의 요리를 먹으면 저절로 힘이 난다. 오크라로 가지의 맛을, 고수로 미나리의 맛을, 연근으로 고기의 맛을 내는 그 요리를 먹으면 타향살이에 적응하느라 애쓴 마음이, 고추장보다 더 빨간 그 정성이 한꺼번에 밀려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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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 선생님의 요리 레시피]
오크라무침
준비물: 오크라 두 줌, 양념장(마늘 1쪽 간것, 참기름 1 작은 술, 진간장 ½ 작은 술, 국간장 1 작은 술, 액젓 1 작은 술, 이탈리안 칠리 플레이크 (pepper flake) 작은 ¼ 작은 술, 쪽파 다진것 약간, 깨 약간)
오크라를 물에 깨끗이 씻은 뒤 꼭지를 돌려 깎는다. 이때 오크라 꼭지를 잘라내어야 쓴맛이 나지 않는다.
도마위에 굵은 소금을 뿌리고 꼬지를 딴 오크라를 올려 소금으로 쓱쓱 문지르며 솜털을 제거한다.
2의 오크라를 물에 한번 더 씻어 소금기를 제거하고 물기를 제거한 뒤 반으로 자른다.
대나무 찜기에 면보를 깔고 물이 끓으면 3의 반으로 자른 오크라를 넣고 5분정도 찐다.
잘 익은 오크라를 식힌다.
중간 사이즈 볼에 모든 양념 재료를 넣고 잘 섞는다.
6에 식은 오크라를 넣고 살살 무친 뒤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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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라를 잘 고르는 요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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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표면에 솜털이 많이 있는 것으로 고른다.
각이 확실하게 있으면서 매끈한 것으로 고른다.
보랏빛이 살짝 있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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