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결혼했으니 꼬박 30년 채웠다. 아니 벌써! 눈이 쟁반만해지지만 신이 준 선물, 망각 덕에 오랜줄 모르고 살았다. 잊으면 안되는 것도 잊고, 잊을 수 없는 것도 잊었다. 마음이 과거에 머물기 싫어했다. 좋았던 기억도 슬펐던 기억도 겪었던 그 시절에 두고 왔다. 지나온 것들은 선별할 것 없이 현재를 떠받치는 힘이 됐다.
결혼해서 처음으로 추석 모임을 밖에서 외식으로 끝냈다. 시아버지 결정이었고, 앞으로 차례나 제사 다 안한다는 공표도 하셨다. 지난 30년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남편은 결혼초 명절 전이면 근사한데서 저녁을 먹이고 선물을 사줬다. 내가 철없는 어린 후배였으니 엄청 짠했을테다. 생각해보니 시어머니도 지금 내 나이. 와, 여전히 철없을 때네. (지금 나처럼.)
어머니는 미에 관심이 많았다. 내 예물로 맞춘 다이아를 본인 다이아랑 바꿨다. (크기가 다른데 내가 모를줄 알았나.) 우리집서 해준 밍크코트를 롱 기장으로 바꿨다. (나중에 나준다고 했다던데 시누이줌) 무튼 나는 이 두가지 이슈로 결혼을 그만두자고 압구정 한복판에서 빽, 소릴질렀다. 너뭐돼? 나못해!
그런줄 알고도 한 결혼이니 모든 불합리에 순응해야했다. 며느리 들이고는 원래 안하던 떡을 직접 하고, 만두를 몇백개씩 빚고, 전은 부쳐도 부쳐도 끝이 없고. 그러다 임신 기간 초기에 명절 노동으로 무리가 되어 그만 유산되어버린 적도 있다. 명절에 안갈 수 없어 힘겹게 서있는 어린 며느리에게 흘기던 어머니 얼굴 생생하다. “병원에서 조심하래요” 하는 소리에 “얘, 누군 애 안낳아봤니! 처음엔 다 그래.”
어머니도 젊었던거다. 물론 그걸로 모든 실수와 허영을 덮을 수는 없다. 그 이후로도 수많은 사건들은 차고 넘치므로. 내가 잘 잊는 것은 나를 위해서다. 내 정신 건강을 위해 잊어주는 것.
30년 만에 해방된 기분이다. 아직 건강한 시부모님이 요즘의 세태를 파악하시고 자유를 선언했다. 긴긴 세월을 함께 보내고 깨닫는 것. 가족도 모두 남이라는거다. 내 생의 손님같은 존재. 그러니 적당한 거리와 마음과 지원과 응원이 필요할 뿐, 선 넘으면 안된다. 그 선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해방된 명절을 기리며 묻어둔 기억을 휘저으니, 또 생각나는 에피소드 하나.
어머니는 신발 중독이시다. 사고 또 사고. 아버님이 그만 사라 소리 지른 모양. 어느날 어머니 생신이라 집에 갔더니 감춰둔 쇼핑백을 내게 팍 안기며, 너 이거 사왔다해라! 알고 보니 또 구두. 그런데 지금 보니 그런 탐욕이 삶을 재밌게 살게하는 원동력이다. 우리 어머니 여전히 보석 좋아하고 옷과 신발 너무 좋아한다. 난 앞으로 살면서 무엇을 탐할 것인가. 명절에서 해방된 것만으로도 이리 충만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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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영 (주)즐거운 예감 한점 갤러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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