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증시, 만성 저평가 상태 지속
▶ 외부 충격마다 취약했던 경제 체력
▶ 금융 불안도 실물만큼 경제 타격
▶ 주가 안정이 투자심리 회복 관건
▶ 증시 활성화로 내수·혁신 활력 기대

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는 가운데 디스플레이에 상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통과 관련 보도가 나오고 있다. [연합]
이달 3일,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이 ‘주주’까지 확대된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반대론자(주로 기업)들로부터 강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한국이나 독일처럼 제조업 중심의 산업 구조를 가진 국가에서는 이번 개정안이 시행되면 기업들이 더 많은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등 주주 이익 극대화에 집중하게 될 거라는 우려를 쏟아낸다. 주주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를 택한 미국과 영국에서는 제조업 기반이 쇠퇴했다는 주장도 눈에 띈다.
충분히 일리 있는 주장이지만, 몇 가지 흠결이 있다. 상법 개정안으로 배당 지급이 늘어나고 주식시장이 부양되면, 실보다는 득이 훨씬 더 클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자세히 살펴보자.
▲ 가계의 부동산 편중 현상을 바꿀 수 있다면?
주식시장이 만성적 부진에서 벗어날 때, 한국 경제는 세 가지의 큰 이익을 얻을 것이라 생각된다. 첫 번째 이점은 부동산에 과도하게 쏠린 경제 전체의 자금 흐름을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명목 국내총생산에 비교한 주요 자산가치 배율을 보여주는데, 토지 및 건물이 거의 8배에 이르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국내 학자들이 오랫동안 “부동산처럼 유동성이 낮은 자산에 투자했다가 1990년 일본 꼴 날 수 있다”고 경고했음에도, 부동산 편중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주식이 ‘위험은 높고 수익률이 저조한’ 자산이었기 때문이다. 1986년 주식과 서울 아파트에 각각 1억 원을 넣었다면, 2024년 16억 원과 27억 원으로 격차가 벌어진다. 나아가 투자의 위험 면에서 주식은 서울 아파트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38년 동안 서울 아파트 가격이 마이너스 상승률을 기록한 것은 5번밖에 되지 않지만, 주식 가격은 13번에 이른다. 이뿐만 아니라 부동산은 담보대출 받기에 용이하며, 주거의 안정까지 고려하면 주식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투자 매력도 측면에서 높은 우위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주주에 대한 보상이 강화되며 주식 가격이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부동산에 ‘올인’된 투자 구조가 달라지면서 버블 붕괴 위험이 낮아지는 것은 물론, 가계부채에 대한 우려가 크게 줄어들 것이다. 아울러 과도한 부채로 인한 이자 부담으로 소비가 위축되던 문제도 해결될 것으로 기대된다. 5,000만 인구를 자랑하는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면서도 수출에만 의지하는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문제가 있었는데, 이를 해결할 실마리도 잡을 수 있다.
▲ 혁신성장의 토대 마련한국 주식의 만년 저평가 현상이 완화했을 때 기대되는 두 번째 효과는 경제 전반의 혁신 역량 강화다. ‘제조업만이 살길’이라고 부르짖는 이들도 많지만, 최근 세계경제의 성장을 촉진하는 부문이 인공지능(AI)과 양자컴퓨팅 그리고 자율주행 등 첨단 과학 기술이 집약된 분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첨단 기술 분야를 육성할 때 가장 중요한 요인은 창업가들에게 풍족한 돈이 지급되는 것이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그리고 메타의 마크 저커버크 등 첨단 기업의 창업자들은 모두 초기엔 산업 외부자였다. 반대로 코닥이나 제록스 그리고 모토로라처럼 압도적인 경쟁력을 자랑하던 1등 기업조차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면이 컸다. “역마차 주인이 철도를 만들 리 없다”는 조지프 슘페터의 지적처럼, 새로운 신생 기업의 출현은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이 측면에서 보면, 한국은 부족한 면이 많다. 캐나다와 미국 등 북미 국가에 비해 벤처캐피털(VC) 투자 규모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물론 영국이나 스웨덴, 독일 등 유럽 국가에 비해 잘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주식시장이 활성화돼 혁신 기업이 높은 평가를 받으며 상장하고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면 현재보다 더 큰 성취를 일으킬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참고로 지난해 한국에서 1조 원 이상의 가치로 평가받는 신생 기업, 즉 유니콘이 단 2개 출현하는 데 그쳤다. 미국에서는 50개, 그리고 중국에서 10여 개의 유니콘이 나타난 것에 비해 아직 갈 길이 멀다. 협소한 내수시장의 한계를 벗어나 세계 시장을 개척해 나가는 기업이 탄생하기를 간절히 바란다면, 벤처 생태계를 육성하고 자본시장을 키우는 것 이외에 다른 뾰족한 방법을 찾기 힘들다.
물론 자본시장을 육성하고 벤처캐피털 투자금액을 키우는 것만으로 첨단 기술 분야를 육성할 수 없다. 15년 넘게 동결된 대학 등록금 문제부터 연구개발(R&D) 예산 증액 등 수많은 과제가 산적해 있다. 그러나 시장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다. 풍족한 돈이 뿌려진다면 첨단 기술 분야에 유능한 인재들이 몰릴 것이고, 기술 개발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 의대에 뛰어난 인재가 몰리는 이유는 수익 전망이 밝기 때문인 것처럼, 첨단기술 분야의 전망이 밝아지고 스톡옵션 대박 사례가 등장한다면 다른 문제들은 큰 어려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 경제의 안정성이 높아진다한국증시의 저평가 해소는 경제 전체의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등 강력한 외부 충격이 닥칠 때마다 한국 경제는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었다. 해외 수요가 줄어들고 기업 실적 전망이 악화되니 경제 전반의 수요가 위축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실물 부문에서 발생한 충격 외에, 금융시장이 그토록 쉽게 붕괴되지 않았던들 성장률이 그렇게 위축되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경제가 위축된 이유는 단순히 생산·수출 같은 실물 부문의 타격만이 아니라, 주가 폭락 등 금융시장의 불안도 큰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경제는 심리’라는 말에서 연상되듯, 주식 가격이 폭락하고 환율이 폭등하는 상황에서 소비 및 투자심리가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 주식시장이 오스트레일리아처럼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더라도, 경제가 그토록 급격한 약세를 보였을지 의문이다. 그 덕에 오스트레일리아 경제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을 제외하고는 1983년 이후 단 한 차례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적이 없다.
물론 오스트레일리아는 ‘슈퍼애뉴에이션(Superannuation)’이라는 특유의 퇴직연금 제도가 주식시장의 안전판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에 반해 지난해 우리나라 퇴직연금 432조 원 중 83%는 원리금 보장형에 속해 연 2% 안팎의 낮은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만일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자의 신뢰가 높아진다면 오스트레일리아의 사례가 한국에서 재현될 수 있을 거라 본다. 기업들이 주가가 빠질 때마다 배당금 인상 및 자사주 매입으로 대응해 주가 폭락 리스크가 제약된다면, 퇴직연금의 운용 방향도 달라지고 가계의 노후도 더 안락해질 수 있다.
‘너무 낙관적인 예측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독자들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코스피 3000 포인트 공약부터 문재인 정부의 코스닥 부양 정책, 그리고 윤석열 정부의 ‘기업 밸류업 정책’까지 역대 정부가 증시 부양 정책을 내세운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 만성적 저평가 상태에 빠져있던 우리 증시가 개선되는 것만으로도 내수 불황을 퇴치하고 부동산 거품의 공포를 몰아내며, 혁신산업을 육성할 수 있다. 이 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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