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시대적 영토 야욕 배경은
▶ KGB 요원으로 동독 드레스덴 파견
▶ 냉전 최전선에서 소련 해체 직접 목격
▶ 조지아 침공·크림반도 병합·우크라 침공
▶ 인접국 친서방 움직임에 잇단 군사 개입
▶ 결국 과거 지배지역 영향권 회복 목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로이터]
우크라전 우세 속 수백 년 역사 얽혀
트럼프 중재에도 종전 협상 지지부진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시작된 지 벌써 1,185일째를 맞았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벌어진 가장 치명적인 전쟁”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준 상흔이 너무나 컸던 만큼, 1945년 주요국들은 유엔을 창설하고 무력에 의한 영토 변경을 국제법적으로 금지했습니다. 유엔헌장 제2조 제4항(모든 회원국은 그 국제관계에 있어서 다른 국가의 영토 보전이나 정치적 독립에 대해 또는 국제연합의 목적과 양립하지 아니하는 어떠한 기타 방식으로도 무력의 위협이나 무력행사를 삼간다)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 조항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행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곳곳에서 영토로 인한 크고 작은 분쟁이 있었지만, 영토 점령을 노골적으로 시도한 사례는 드뭅니다. 특히 2000년대 이후 발생한 전쟁은 모두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정권하에서 발생했습니다.
최근 우크라이나와의 종전 협상에서 영토는 다시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러시아는 자국이 점령하지 못한 우크라이나의 땅까지 넘기라고 우크라이나에 요구하는 형국입니다. 그렇다면 푸틴은 왜, 요즘 시대 지도자에 걸맞지 않게 ‘구시대적’ 영토 야욕을 갖게 된 걸까요? 그에게 영토 확장이 유독 중요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 냉전의 최전선에 나서다푸틴의 성장 배경은 그가 왜 권위주의, 침략적 외교, 반서방 전략을 일관되게 유지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핵심 열쇠 중 하나입니다.
1952년 가난한 노동자 계층의 집안에서 태어난 푸틴은 어린 시절부터 첩보원이 되고 싶어 했다고 합니다. 중학교 시절 장래희망으로 “내 꿈은 훌륭한 첩보원이 돼 적에게 패배를 안겨주고 인민에게 승리를 가져다주는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죠. 그는 1975년 레닌그라드대(현 상트페테르부르크대) 법대 졸업과 함께 당시 소련의 정보기관 국가보안위원회(KGB) 정식 요원으로 발탁됩니다. KGB 요원에게는 심리전, 거짓말 탐지, 정보 수집과 조작, 냉혹한 상황 판단 능력이 중시됐는데, 이 경력을 통해 푸틴은 “모든 인간은 목적을 위해 이용될 수 있다”는 냉소적 시각을 갖게 됐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1985년 냉전의 최전방인 동독 드레스덴에 파견된 푸틴은 동독과 소련 연방의 붕괴를 현장에서 지켜봤습니다. 1980년대 후반 국력이 약해진 소련은 동독을 비롯한 동유럽의 이탈을 막지 못했고, 결국 그는 15개 공화국으로 구성됐던 소련 연방의 해체와 베를린 장벽 붕괴를 직접 목격하게 됩니다.
▲ 서구공포증이 부른 전쟁1989년 귀국한 푸틴은 큰 좌절을 겪었습니다. 그는 과거 한 러시아 방송사가 제작한 다큐멘터리에서 “소련 붕괴는 비극이었다”며 “경제난으로 나는 달빛을 보며 택시를 몰아야 했고 우리는 완전히 다른 나라로 바뀌었다”고 말했습니다. 2005년 소련의 해체를 ‘20세기 최대의 지정학적 재앙’이라고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소련 붕괴 후 러시아인의 삶이 오히려 어려워지자 과거의 역사적 정체성 회복을 염원하게 된 것입니다.
푸틴은 이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인접국에 대한 군사 개입과 병합을 통해 과거 소련 제국의 영향권을 복원하려는 야욕을 드러냈습니다. 2008년 조지아 침공,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병합,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등은 이들 국가에서 친(親)러시아 정권이 붕괴하거나 서방 진영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할 가능성이 제기되자 이에 반발해 이뤄진 사건들입니다. 그동안 서방 국가 사이에서 ‘완충지대’ 역할을 했던 이 지역들이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이탈해 친서방화되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는 셈입니다.
이 때문에 일부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원인에 서방의 책임도 있다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서방은 나토를 ‘방어를 위한 동맹’이라고 주장하지만, 푸틴에게는 나토가 국경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위협으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국제정치학자인 존 미어 샤이머 시카고대 교수는 “2021년 집권한 바이든 정부의 나토 활성화와 우크라이나와의 안보협력 강화가 러시아의 위기감을 높여 전쟁을 촉발한 직접적 원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대(對)러시아 정책뿐 아니라 우크라이나와 유럽의 러시아에 대한 입장까지 강경한 방향으로 유도하면서 푸틴의 ‘안보 트라우마’를 자극했다는 주장입니다.
▲ 러시아 제국 부활 염원푸틴은 현대에 들어선 극우 민족주의 철학자 알렉산드르 두긴의 영향을 받았다고 평가됩니다. 두긴은 서방 국가에 대항해 러시아가 세계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유라시아주의(Eurasianism)’를 주창하는 인물로, 푸틴에게 큰 영향을 줬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러시아의 영향권을 확장하고, 서구를 견제하며, 강력한 중앙집권을 추구하는 푸틴의 통치 철학과 정확히 맞아떨어집니다.
결국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단순한 영토 확장에서 그치지 않고, 전략적·역사적·이념적 목표를 포괄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이 전쟁은 단기적인 군사 작전이 아니라 푸틴의 장기적 국가 비전과 연결돼 있습니다. 나토 확장을 저지하고, 과거 소련·러시아 제국이 지배했던 지역의 영향권을 회복하려는 것입니다. 나토 가입을 통해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푸틴에겐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겠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야심 차게 중재자로 나섰지만 종전 협상은 지지부진하기만 합니다. 이미 전장에서 러시아의 우세가 굳어진 상황인 데다 수백 년의 역사적 경험 속에서 비롯된 이 전쟁을 종식할 묘안이 나오긴 쉽지 않을 겁니다. 협상이 이뤄진다 해도 결국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보장하거나, 러시아의 안보 딜레마를 해결해 주긴 어려워 보입니다. “24시간 내 종전”을 약속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주춤한 이유도 이 전쟁의 뿌리가 그렇게 쉽게 뽑힐 리 없다는 걸 뒤늦게 깨달아서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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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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