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년 전, 찰스 디킨스는 ‘두 도시 이야기’에서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 속 런던과 파리를 비교하며 격동하는 시대정신을 포착했다. 그로부터 먼 시간이 흐른 오늘, 나 역시 두 도시를 마음속에 떠올리며 비교해 본다. 하나는 나의 고국, 서울이고 다른 하나는 나의 현재, 이민자의 삶이 이어지는 미국의 도시, 로스앤젤레스(LA)이다. 과거의 도시 서울과 현재와 앞으로의 삶도 이어질 LA는 나의 삶의 연속성과 편안함, 충족감같은 인간적 욕망을 보장해줄 수 있을까?
서울 중심부 무교동, 다동 골목길을 배회하던 그 젊은 날이 내게는 여전히 선명하다. 음악 다방에서 흐르던 새로운 미국 팝송 음악, 첫사랑과 짧은 시선을 나누었던 공간, 단골 만화가게에서 새 책이 나오길 기다리던 유년시설의 설렘까지. 그러나 그 기억의 장소를 찾아 고국을 다시 밟았을 때, 내 앞에 펼쳐진 것은 너무나 낯선 풍경이었다. 고향같은 편안함으로 기억되는 그 장소에 초고층의 복합업무용 오피스텔이 하늘을 찌를 뜻이 솟아있고, 널찍하게 뚫린 대로는 내가 닳도록 걷던 골목길의 자취를 삼켜버렸다. 그곳에 분명 무언가 있었는데, 그 무엇도 남아있지 않았다. 도시는 기억의 외투를 벗어버렸고, 나는 시간 밖으로 밀려난 채 발걸음을 멈추고 그곳에 서 있어야 했다.
미국 땅에서 가장 많은 한국인이 거주하는 도시 LA. 이민자들에게 LA는 단순한 거처가 아닌 또 다른 ‘삶의 중심’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우리는 종종 유사한 상실을 경험한다. 다운타운의 초고층 현대식 건물사이의 소형 광장에 앉아있노라면 이곳이 시민의 공동생활 공간이 아닌, 기업의 자본가치를 상징하는 건축물과 조형물로 조성된 공간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사람을 위한 공간이라기보다 자본의 과시를 위한 전시장이 된 것이다. 그곳은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 텅 비어있고 외로움이 공명치는 것 같다. 낯선 타워들 사이에서 서로에게 무관심한 이민자의 삶은 외로움을 되새기며 자리 잡는다.
서울은 6.25 동란 이후 산업화와 근대화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온 도시다. 1960년대 이후 급격한 도시화 속에서 서울은 현대성의 이정표를 하나씩 세워왔다. 이제는 거주성, 지속 가능성, 그리고 국제 도시로서의 경쟁력을 아우르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무교동이나 강남의 변화는 단순한 지역 정비 차원을 넘어, 서울이라는 도시가 스스로를 글로벌 도시로 발돋음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한편 LA는 일찍부터 자동차 중심의 광역화 도시로 확장되어 왔다. 교외화가 두드러졌고, 도심의 기능은 점차 쇠퇴했다. 시는 2026년 월드컵, 2028년 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하여 낡은 업무용 건물을 주거용 초고층 아파트로 전환하고 퍼싱스퀘어 같은 공공 공간에 활기를 불어넣으며 보행자 중심의 도심 재생에 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변화가 도시의 생명력을 되찾는 일인지, 아니면 공간을 덧칠한 겉치레에 불과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된다. 여기서 나는 도시 역사가 루이스 멈포드를 떠올린다. 그는 “도시는 인간 생명의 유기적 발전을 담아야 한다. 역사의 층위와 기억이 도시 공간에 살아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멈포드에게 도시는 단순한 건물들의 집합체가 아니라, 사람들의 관계망, 공존의 리듬, 그리고 세대 간의 기억을 품은 생명체였다. 그런 점에서 그가 이상으로 삼았던 인문학의 고향 플로렌스의 시뇨리아 광장은 중세 도시의 ‘살아 있는 심장’이었다. 거기엔 상품 거래를 위한 시장이 있었고, 공개재판이 열렸으며, 광장 중앙에서는 축제가 펼쳐졌다. 오늘도 시끄러운 장마당이 서고 있고, 많은 관광객이 몰려들어 르네상스 시대 광장이 주는 위대함을 느끼게 한다. 정치와 종교, 일상과 예술이 어우러지던 그곳은 도시 전체의 자화상이자 집단 기억의 무대였다.
서울과 LA의 재개발은 효율성과 미관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그 속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를 지워버리고 있다. 도시가 발전할수록 우리는 과거를 잃어 버리고, 사회에서 탈락한 홈리스들에 대해 무관심하고, 차가운 시선을 보낸다. 도시는 단지 건물이나 도로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오래된 골목길, 그곳을 지나던 이웃들의 표정, 세월이 쌓인 공간이야말로 도시의 진짜 힘이다. 최신식 고층 건물만으로는 도시의 품격도, 정체성도 담을 수 없다.
나는 서울과 LA를 걸으며 묻는다. 우리는 도시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 기억을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까? 사라진 장소에서 느끼는 상실감은, 결국 사람을 위한 도시가 무엇인지를 되묻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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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성 도시계획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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