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어나서 이렇게 오랫동안 기립박수를 받아보긴 처음”
제75회 칸 국제영화제가 오는 28일 폐막을 앞두고 세계 각국의 영화 21편이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경쟁부문은 아니지만 칸 영화제에서 인기가 높은 미드나잇 상영에서 이정재 감독의 데뷔작‘헌트’가 한국 영화로는 가장 먼저 개막해 한국영화의 높아진 위상을 보였다. 이어 23일 상영된 탕웨이와 박해일이 주연한 박찬욱 감독의‘헤어질 결심’이 외신의 최고 평점을 기록했고 26일 폭발적인 관심 속에 고레에다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송강호, 강동원, 이지은(아이유) 등이 출연한‘브로커’가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3년 만에 정상으로 돌아온 칸 국제 영화제에서 공개된 한국 영화 3편을 소개한다.
감독 데뷔한 이정재의 ‘헌트’ “영화 재밌게 보셨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메르시 보꾸!”
지난 20일(현지시간) 자정 프랑스 칸 뤼미에르 극장에서 최초 공개된 영화 ‘헌트’를 연출하고 주연한 이정재는 영화가 끝난 뒤 기립박수를 보내는 객석을 향해 감사 인사를 전했다. ‘헌트’는 1980년대 안기부 에이스 요원 박평호와 김정도가 남파 간첩 총책임자를 쫓으며 거대한 진실과 마주하게 되는 첩보 액션 드라마다. 이정재는 박평호 역을 맡았고 ‘태양은 없다’ 이후 23년 만에 연기 호흡을 맞춘 절친한 친구 정우성이 김정도 역을 연기했다.
제75회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초청된 ‘헌트’는 ‘오징어 게임’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은 그의 감독 데뷔작이다. 그는 “생애 가장 긴 기립박수를 받은 것 같다. 칸 영화제에서 ‘헌트’ 첫 상영을 하는 게 작은 꿈이었는데 이루게 돼 기쁘고 너무나 감사하다”고 벅찬 소감을 밝혔다.
이날 이정재의 곁에는 정우성이 있었고 그의 연인 임세령은 뒷줄에 앉아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상영에 앞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정재는 “당초 배우로만 이 작품에 참여할 예정이었지만, 물망에 올랐던 정지우·한재림 감독이 잇달아 하차하면서 감독 데뷔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 주인공 둘이 팽팽하게 맞서는 구도로 바뀐데 대해 그는 “평호와 정도는 각각 다른 이데올로기에 이용당하고, 그래서 서로 대립합니다. 그런 얘기가 하고 싶었어요. 우리는 상대방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분쟁하지만, 실은 그건 누군가가 선동하고 만드는 것이라는 걸요”라고 설명했다.
절친한 사이인 정우성은 4년 동안 영화를 준비하고 촬영하는 내내 함께했다. 이정재 감독은 “우성씨의 친구이자 동료다 보니까 욕심이 생겼다. ‘정우성은 이정재가 제일 잘 찍었다’라는 말을 꼭 듣고 싶었고, 사명감도 들었다”며 “정우성이라는 배우가 기존에 잘 하지 않았던 표현이나 행동을 일부러 집어넣고, 회의할 때도 정도가 제일 멋있어야 한다는 말을 내내 했다”고 웃음을 지었다.
‘돌아온 거장’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폭력-섹스 없는, 정훈희의 노래 ‘안개’같은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형사와 용의자로 만나는 박해일과 탕웨이. [로이터]
제75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헤어질 결심’을 연출한 박찬욱 감독. [CJ ENM 제공]
‘매혹적이고 독선적인 뉴 누아르로 돌아왔다’ ‘칸 영화제 경쟁 부문의 기준을 높이고 독보적인 비주얼 스타일리스트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했다’
23일(현지시간) 칸 영화제에서 베일을 벗은 박찬욱 감독의 신작 ‘헤어질 결심’에 대한 외신들은 찬사를 보냈다. 영화제 중반까지 평점 최고점을 기록하며 또다시 한국영화에 황금종려상을 안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했고 주인공 탕웨이를 제일 먼저 여자주연상 후보에 올렸다.
‘헤어질 결심’은 변사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 해준(박해일 분)이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에게 사랑을 느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멜로 스릴러다. 6년 만에 칸에 다시 온 박찬욱 감독은 “어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어른스러운 영화를 목표로 했다. 그렇다고 해서 꼭 폭력과 섹스를 강하게 묘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고 관객에게 스며드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장에서 전작과 달리 충격적 묘사가 왜 없냐는 질문을 받자 박 감독은 “다른 감독이라면 이런 질문을 안 받았을 텐데”라며 웃었다. 이어 그는 “해외 배급사 관계자가 영화 소개 문구로 ‘박의 새로운 진화’를 쓰겠다고 하길래 그건 좀 위험하다고 했다. 그럼 더 진화한 폭력과 섹스를 예상할 것 같아서다”라며 “그냥 그런 장면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안 넣었을 뿐”이라고 답했다.
박 감독은 최조실에서 나누는 형사와 용의자의 대화를 사랑을 키워가는 연인처럼 묘사했다. 그는 “해준은 서래와 눈빛을 교환하고 친절함을 베풀고 미행하고 몰래 훔쳐본다. 형사니까 정당화되는 것이지 사실 스토킹이다.
서래도 그걸 불쾌해하기보다는 믿음직스러운 남자가 밤새 나를 지켜주는 것처럼 느낀다. 두 사람이 처음에 만나서 호감을 느끼고 밀고 당기고, 유혹하고, 유혹을 거부하는 이런 모든 것이 하나가 되는 거다.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박 감독은 “두 번째 심문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자 핵심적인 장면”이라며 “우습지만 동시에 슬프고, 주인공들이 중의적으로 마음을 드러낸다”고 덧붙였다.
황금종려상 두 번째 도전, 고레에다 감독의 ‘브로커’“베이비 박스로 만난 예기치 못한 특별한 여정”
26일 칸 영화제 상영에 앞서 레드카펫에 오른 영화 ‘브로커’의 주연배우들. 송강호(왼쪽부터), 이지은(아이유), 이주영, 강동원. [로이터]
“고레에다 감독의 작품은 차가운 얘기로 시작해 따뜻한 휴머니즘으로 끝날 거라는 생각이 들죠. 그런데 이번에는 따뜻함에서 시작해 차갑고 냉정한 시선으로 사회와 세상을 바라보게끔 영화세계가 펼쳐집니다.”
25일 칸 영화제에서 공개된 ‘일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한국 배우들의 앙상블 연기가 극찬을 이끌어낸 작품이다. 고레에다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면서부터 상현 역에 송강호를 염두에 뒀고 영화 ‘의형제’에 송강호와 함께 출연한 강동원을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브로커’는 베이비 박스에서 의도치 않게 만난 이들이 엉뚱하게도 가족으로 변해가는 특별한 여정을 그린 영화다.
세탁소를 운영하지만 늘 빚에 시달리는 ‘상현’(송강호)과 베이비 박스 시설에서 일하는 보육원 출신의 ‘동수’(강동원). 거센 비가 내리는 어느 날 밤, 그들은 베이비 박스에 놓인 한 아기를 몰래 데려간다. 하지만 이튿날, 생각지 못하게 엄마 ‘소영’(이지은)이 아기 ‘우성’을 찾으러 돌아온다. 아기가 사라진 것을 안 소영이 경찰에 신고하려 하자 솔직하게 털어놓는 두 사람. 우성이를 잘 키울 적임자를 찾아 주기 위해서 그랬다는 변명이 기가 막히지만 소영은 우성이의 새 부모를 찾는 여정에 상현, 동수와 함께하기로 한다. 한편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형사 ‘수진’(배두나)과 후배 ‘이형사’(이주영). 이들을 현행범으로 잡고 반 년째 이어온 수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조용히 뒤를 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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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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