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군 180만 명 중 10만이 멕시칸, 그동안 의료^물자 지원국 알려져
▶ ‘아메리칸 드림’ 미국 건너가 입대, 인천상륙·평양탈환 작전 등 참전
한국전 참전 멕시칸 생존자들을 찾아서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이었던 지난해 6월, 부르노 피게로아 주한 멕시코 대사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 약 180만 명 중 10%가 라틴계였으며 이 중 10만여 명은 멕시칸 또는 멕시칸-아메리칸이었고, 멕시코계 출신으로 구성된 부대도 있었다는 조사 결과를 소개했다. 멕시코는 한국전쟁 중 의료 및 물자지원국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멕시칸의 참전 사실은 새로운 소식이었다. 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3년부터 1952년까지 미국-멕시코 간 병역협정에 따라 멕시코에서 자란 청년들은 미군에 입대할 수 있었고,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단신으로 미국으로 넘어가 입대한 멕시칸들도 있었다. 군복무 후 다시 고향인 멕시코로 돌아왔기 때문에, 이들은 ‘잊힌 용사’가 되었던 것이다.
멕시칸 참전용사들을 찾아서
“우리가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살아계셔도 이미 90세 전후가 되셨을 텐데, 게다가 이 팬데믹 상황에…”
주멕시코 한국대사관은 솔직히 설렘 반 걱정 반이었다. 하지만 더 늦출 수는 없기에 즉각 한국전쟁 멕시칸 참전용사 찾기에 나섰다. 우선 멕시코 현지 언론기고를 통해 멕시칸 참전용사의 존재를 알렸다. 멕시코인들도 잘 모르는 사실이었다. 주한 멕시코대사관에서 두 분의 연락처를 알려줬다. 지난해 7월 맨 먼저 호세 비야레알(90)씨와 연락이 닿았고, 70년 만에 처음으로 미군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멕시코 용사를 세상에 소개할 수 있었다. 이어 9월에는 로베르토 시에라(90)씨를 만날 수 있었다.
두 분을 통해 더 많은 참전용사를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광고, TV·라디오·유튜브 출연, 군사잡지 인터뷰, 미니다큐 제작 등을 통해 멕시코 전역에 ‘참전용사 찾기 캠페인’에 나섰다. 얼마 후, 한 참전용사 유가족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비록 본인은 없지만 그래도 가족들을 찾아가 감사인사를 전했다.
드디어 올해 초 캠페인의 성과가 나왔다. 세 번째 참전용사이자, 주 멕시코 한국대사관의 자체 홍보노력으로 찾은 첫 번째 사례자였다. 지난 2월, 나는 알베르토 페르난데스(90)씨를 만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미국국경 근처인 소노라주로 날아갔다. 이달 초에는 몬테레이에 거주하는 네 번째 참전용사 헤수스 칸투(86)씨에 대한 연락을 받았다. 이밖에도 3명의 참전용사 유가족으로부터 제보를 받아 현재 확인 중이다.
현재까지 찾은 생존자는 4명. 더딘 것 같지만 그래도 70년간 완전히 잊혔던 멕시칸 참전용사들이 서서히 세상에 소환되고 있다. 멕시코 현지에선 자신들도 몰랐던 존재들을 찾아내준 한국정부에 감사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4인의 생존자
첫 번째로 만난 호세 비야레알씨는 미국 LA 출생으로 부모는 이주노동자였다. 네 살 때 멕시코로 이주해 유년시절을 보낸 뒤 18살 때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홀로 넘어와 미 육군에 입대했다. 어느 날 오후 부대장은 그에게 한국전 파병을 통보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부모님께 제대로 연락할 수조차 없었다.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는 시애틀항을 출발하던 날, 자신에게 축복을 빌어주던 어느 미국 부인의 모습을 그는 지금껏 아름답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인천상륙작전과 서울 수복작전에 참전했다. 상륙 후 사열자리에서 맥아더 장군이 “어쩌다 멕시칸이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가”라며 어깨를 다독여줬다고 했다. 이어 닥친 한국의 겨울은 멕시코에선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고통이었다. 손발이 얼어 감각이 없을 때 따뜻한 물을 데워 녹여주던 어느 전우의 사랑, 늘 자신을 도와주던 이름 모를 한국전우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었다.
18개월의 파병을 마치고 전역해 멕시코로 돌아온 날, 친구들은 “우리 영웅이 돌아왔다”며 환영했다. 동네 어귀 가게엔 그의 사진까지 붙어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아, 이제 떠나지 마라. 집에 프리홀(멕시코 콩요리)을 준비해 놓았단다”라면서 안아주었다. 이후 그는 시민의 삶으로 돌아와 GM멕시코에서 근무했고 노조위원장을 지냈다. 기억들을 모아 ‘어느 멕시칸의 한국에서의 기억’이라는 자서전을 쓰기도 했다. “언젠가 누군가는 이 힘들고 어려웠던 순간을 알아줬으면 한다”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그는 한국전쟁을 회상하며 동족 간 전쟁이라는 사실이 참 슬펐다고 했다. 특히 전역 후 미국이든 멕시코든 참전용사로서 기림과 존경을 받아본 적이 없는데, 이렇게 관심을 가져줘 고맙다고 여러 번 말했다.
두 번째로 만난 로베르토 시에라씨는 데킬라의 고장인 과달라하라에 산다. 정장에 나비넥타이를 매고 지팡이를 짚은 채 현관에서 우리를 맞아주었다. 그도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유년기와 청년기를 멕시코에서 보냈고, 군복무를 하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미 해병대에 지원했다. 그는 한국전쟁 중 통신병으로 네 차례 전투에 참가했다. 수색정찰 중 적의 공격에 많은 전우를 잃은 기억을 끄집어낼 때는 슬픔에 한참이나 말을 잇지 못했다. 다리 부상으로 전역한 뒤에는 데킬라 시험관으로서 평생을 보냈다. 자녀들도 잘 키워 멕시코 외교부에 대사로 근무하는 아들도 있는데, 사실 그 아들이 주한 멕시코대사에게 아버지 얘기를 들려주면서 이 모든 일은 시작되었다.
.얼마 전엔 알베르토 페르난데스씨도 방문했다. 그도 미국에서 태어나 5살 때 멕시코로 이주해 청년기까지 보냈다. 대학 진학을 위해 1948년 미 육군에 입대한 그는 제4보병사단 21연대 소속 소총병으로 주일미군으로 파병됐다가, 한국전쟁 발발 5일 만인 6월30일 대구공항에 내렸다. 풍전등화의 한국을 돕기 위해 가장 먼저 도착한 미군 중 한 명이다. 그는 11개월간 인천상륙작전, 서울수복작전, 38선 돌파, 평양탈환 작전에 참전했는데, 압록강까지 불과 5,000야드를 남겨놓고 중공군 참전으로 후퇴했다고 했다. 미국 귀국 후 신병교관을 마지막으로 총 4년의 군복무를 마쳤으며, 한국전쟁 유공으로 동성훈장과 퍼플하트 훈장을 수여 받았다.
그는 현재 거주하는 소노라에서 농축산물 관련 일을 하며 자녀 7명을 키웠다. 부인과 사별한 후엔 손주, 증손주까지 38명에 달하는 대가족이 인근에 옹기종기 모여살고 있다. 가족들은 아버지가 한국전쟁 얘기를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고 했다. 인터뷰를 할 때도 ‘왜 참전용사를 찾느냐’며 딱딱하게 반문했다. 우리의 설명을 듣고 난 후에는 한결 부드러워지고 따뜻해진 모습이 기억난다.
아직 뵙지는 못했지만 최근 연락이 닿은 네 번째 생존참전용사, 헤수스 칸투씨는 기아자동차 멕시코 공장이 있는 몬테레이에 산다. 지금까지 만난 참전용사 중 가장 어린 17세에 미 육군에 입대, 7사단 23연대 공병으로 1951년 1월 인천에 도착했고 1953년 전투 중 부상을 입을 때까지 참전했다. 장교(대위)로 전역한 후에는 현 거주지역에서 건축회사 엔지니어로 활동했다고 한다. 곧 방문해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감사를 전하려 한다.
참전용사 본인은 작고했지만, 한국에 관심을 갖고 좋아하는 유족이 있다. 오스카르씨 가족이다. 그는 1953년 첫 파병 이후 한국이 너무 좋아 전후인 1955년에 자원해 또다시 한국행에 올랐다고 한다. 유품으로 보여준 사진에는 광화문 거리, 한국 어린이와 여인들, 갓 쓴 어르신들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노부인과 딸은 한국상점에서 음식을 사서 유튜브를 보고 요리하고, 한국드라마도 즐겨보는 한류팬임을 자랑했다.
만약 이들이 미국에서 터전을 잡고 살았다면, 참전용사회 행사에 참석해 동료를 만나고 존경도 받고, 또 한국정부의 초청을 받아 발전한 대한민국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도 멕시코도 그동안 이들을 알아보지 못했고, 그렇게 70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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