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창구 (클락스빌, MD>
때로는 가슴 벅찬 감동이, 때론 말 못할 슬픔과 절망, 고단함이 우리의 삶에는 있다. 특히 낯설고 물 선 이국땅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우리 한인들에게는 결이 다른 스토리들이 저마다의 가슴 속에 내장돼 있다.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 속, 이제는 잔잔한 강물처럼 침잠됐을 워싱턴 지역 한인들의 초기 이민생활의 애환과 남다른 사연을 들어본다.
지금도 그렇지만 치과약속날짜가 다가오면 나도 모르게 저절로 주먹이 쥐어지고, 무릎에 힘이 들어가며 오금이 저려온다. 환자들의 고통을 줄여주는 노력들이 많이 발전했는데도 치과 진료는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무겁다.
한국서 직장 다닐 때 부모에게 효도하는 정도에 따라 그걸로 직원을 평가했던 특이한 상사를 오래도록 모셨다. 다른 건 죄다 깐깐한 전형적 꼰대 상사였지만 주말에 시골 부모님께 다녀온 직원들에게는 그렇게 너그러울 수가 없다.
그러니 애경사에 대한 기준도 보통보다 훨씬 까다로웠다. 특히 초상집은 최우선으로 챙겼다. 결혼식이야 축하할 자리라서 참석 못한다손 치더라도 다음에 축하할 기회가 되지만 초상집 못가는 것은 되돌릴 길이 없다는 것이 그 상사의 논리였다. 그런 상사 밑에서 10여 년을 지내다 보니, 나도 어느새 그런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친구나 친척이라고는 없는 곳에 이민 와서 보니 처음에는 아는 사람이 전무 하다시피 했다. 어느 날 우연히 교회에 나가게 되었는데 참으로 많은 분들을 접할 수 있었다. 기댈 곳 없는 우리 가족들에게 저녁도 초대하고, 같이 어울리고, 이삿짐도 서로 도와서 하는 걸 보면서 마음의 안정을 급속하게 찾을 수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인 중 어떤 분의 어머님이 돌아가셨다고 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으니, 저녁에 교회로 나오기만 하면 된단다. 당연히 가야되는 것으로 처음 미국의 장례예배에 참석하게 됐다.
점점 내 차례가 다가온다. 모두들 근엄하고도 엄숙한데 중간에 빠져나갈 수도 없었다. 어금니를 꽉 깨물어 보지만 가슴이 벌렁거린다. 눈 한번 찔끔하면 지나간다고 생각하자 별일이야 있겠는가? 이래 뵈도 대한민국 최정예 공수특전단 출신이다. 비행기에서 수십 번 뛰어내리며 나름으로는 담력도 있다고 스스로 다짐도 해봤다.
참석 안 해도 무방할 이곳에 이민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오지랖 넓기도 하지 후회할 겨를도 없이 저만큼 보일락 말락 차례가 다가온다.
뷰잉(Viewing) 서비스라는 걸 전혀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때까지는 교회를 안 다녀서 교회 장례도 잘 몰랐다. 난생 처음 겪는 일, 생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시신을 보러 줄지어 나간다(?). 그때의 놀라움은 ‘이곳이 낯선 곳이구나!’ 하는 문화적 충격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다.
지금은 오히려 의례적인 단계를 넘어 ‘잠든 모습’을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한 사람 한 사람은 바로 ‘우주’라고 했다. 온갖 풍상과 그 우주의 역사가 얼굴에 그려져 있다는 생각을 갖고 대한다. 웃고 찍은 사진 아래 눈감고 누워있는 공간은 가깝고도 허망하게 멀다. 삶과 죽음의 사이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바로 창문 너머에 묘지가 보이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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