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 북한과 ‘형제의 나라’, 지금은 한국과 ‘사돈의 나라’
▶ 현지 한국 기업 70만명 고용창출, 베트남 경제 30% 차지
베트남 수도 하노이의 한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의 모습. [AP]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AP]
박항서 감독이 축구로 베트남 영웅이 되기 전부터, 베트남 사람들에게 한국은 친숙한 나라였다. 베트남 사람들은 삼성 스마트폰과 LG TV를 사용하고, 현대·기아의 버스를 타며, 롯데리아에서 친구를 만나고, CGV에서 영화를 보고, 오리온 초코파이를 즐겨 먹는다. 한국 가수와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고, 한국 기업에서 일하기를 원한다. 한국과 인연이 깊은 베트남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북한과 미국의 두 권력자가 역사적인 만남의 장소로 베트남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특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에 가 보기를 원했다고 한다. 대체, 지금, 왜, 베트남일까요?
베트남과 한국은 닮은 점이 참 많다. 반도에 위치하고 쌀을 주식으로 먹는 나라. 같은 한자·불교 문화권에 유교의 전통이 남아있는 나라. 수백 년 외세 침략에도 나라를 지켜내 한민족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강한 민족’으로 불리는가 하면, 프랑스 식민 지배와 일본의 침략 아래에선 끊임없이 독립운동과 저항을 펼친 저력도 지니고 있다. 결국엔 남북으로 갈라져 치열한 전쟁의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 때 남한과 북한도 각각 남베트남과 북베트남에 군 병력을 보내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눴다. 그 과정에서 한국군은 1만명 가까운 민간인 희생자를 냈고, 라이따이한으로 불리는 한국-베트남 혼혈인 문제와 같은, 외면할 수 없는 어두운 역사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 베트남과 한국은 친구가 됐다. 한국에선 베트남 음식점이 인기를 얻고 베트남에선 한국 식당이 유행하고 있다. 또 한국 고등학생들은 수능 과목으로 베트남어를 공부하고 베트남에서는 한국어 공부가 필수라고 한다. 게다가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 배우자 누적 1위 나라로 ‘사돈의 나라’로 불리는가 하면,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해외 여행지, 그리고 아시아 한류 열풍의 본산지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한국은 베트남과 ‘경제파트너’로 불릴 만큼 끈끈함을 자랑한다. 한국은 베트남의 가장 큰 투자국이다(1위 한국, 2위 일본). 현지에는 삼성, 현대차, SK 등 한국 기업 6,000여개가 진출해 있고 베트남인 고용 규모도 70만명이 넘는다. 베트남 전체 수출의 30%를 한국 기업이 책임지고 있다. 반대로 베트남 역시 중국 다음가는 한국의 큰 교역국으로 성장하고 있다(현재 4위, 2020년 2위 전망, 중국 1위). 베트남은 여러모로 한국과 인연이 참 깊은 나라이다.
이제 북한도 베트남과 가까워지고 싶다고 한다. 베트남을 향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관심이 남다르다고 한다. 원래 베트남은 한국보다 북한과 더 가까운 ‘형제의 나라’였다. 베트남은 15년 동안이나 치열한 전쟁을 벌일 만큼 미국과 대척점에 있던, 뼛속까지 공산국가였다. 과거 호치민 베트남 주석과 김일성 당시 북한 주석은 각각 하노이와 평양을 여러 번 오가며 우의를 다지곤 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베트남이 개혁 개방 정책으로 자본을 받아들이고 ‘친미’ 국가로 불릴 만큼 미국과 경제적, 군사적 교류 협력을 이어가자 자연스레 사이가 멀어지게 됐다.
오늘날 베트남은 전쟁 종전 40년 만에 어엿한 글로벌 국가로 거듭났다. 국내총생산(GDP) 47위, 구매력지수(PPP)로는 35위의 신흥 강국으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베트남은 ‘제2의 세계의 공장’, ‘포스트차이나’로 불리며 중국을 이은 제조업 강국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제 북한도 중국, 베트남의 길을 따라가려고 한다. 북한이 눈여겨봤을 베트남만의 매력은 무엇일까?
1975년 베트남전쟁 종전 직후 구소련의 몰락으로 베트남의 국제적 입지가 흔들리고 나라 경제가 암울해지자, 베트남 공산당은 1986년 ‘도이머이(쇄신)’ 정책을 추진한다. 공산당 일당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시장경제를 도입, 대외개방을 통한 사회주의적 경제발전을 지향하게 된 것이다. 국영기업의 이윤 추구가 핵심인 중국식 ‘닫힌’ 개혁과는 달랐다.
베트남은 적극적인 외국 자본 유치로 민간 경제를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토지와 같은 부동산의 담보, 상속 등 개인자산 권리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투자법, 기업법, 부동산법 등 경제 주요 3법을 뜯어고치는 등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위한 체제 정비를 지속적으로 이어간다. 사실상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것이다.
베트남 정부는 2007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동남아판 유럽연합(EU)인 아세안경제공동체(AEC) 등에 잇달아 참여하며 무역지대를 넓혀갔다. 이를 기반으로 베트남은 자타공인 글로벌 국가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베트남은 지난해까지 총 129개 국가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베트남 외국인직접투자액(FDI)은 해마다 최고치를 갱신해 2018년 사상 최고치인 180억달러를 기록했다. 수출 규모도 2,400억달러를 넘어 브라질·호주를 뛰어넘는 수출 강국으로 자리매김 했다.
베트남 성장을 이끈 또 하나의 주축은 바로 ‘황금 인구’이다. 베트남에는 1억명 가까운 인구(9,500만)가 있다. 나라 인구 ‘1억 명’은 내수시장이 탄탄함을 의미한다. 이중 구매력과 노동력을 갖춘 60세 미만 청장년층이 90%에 달한다. 또 35세 미만 인구가 60%를 차지하고 해마다 100만명의 신생아가 태어나는 젊고 역동적인 나라이다. 이들을 주축으로 한 디지털 콘텐츠, 블록체인 등 IT 분야의 탄탄하고 아이디어 넘치는 인재들이 쌓이고 있다. ASEAN 국가들의 스타트업 중 베트남 기업들이 가장 창의성이 뛰어난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무엇보다 베트남은 해마다 수천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찾는 매력적인 휴양지를 지닌 나라이다. ‘베트남에 한번 온 사람은 반드시 다시 찾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 덕분에 관광은 베트남의 대표적 외환 수익원이 됐다.
중국 버금가는 시장 잠재력 또한 매력적이다. 지금까지 베트남은 해마다 연평균 6.7%의 고속 성장을 이어왔다. 2018년에는 평균치보다 높은 7.08%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1990년대 초 극빈계층이 70%를 넘었던 베트남 사회는 이제 10% 이하 수준으로 뚝 떨어져 어엿한 ‘중진국’으로 자리매김했다. 베트남 정부는 2019년 한 해 신설되는 기업 수가 14만개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경제 침체가 이어지는 2019년에도 베트남이 평균치보다 높은 6.8%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토록 짧은 시간동안 이정도의 경제 성장을 이룬 나라는 정말 몇 나라 안 된다. 북한도 바로 이런 베트남의 눈부신 성장에 매력을 느낀 것이다. 베트남을 롤모델 삼아 경제 건설을 시도할 징후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컴퓨터와 모바일로 무장한 북한의 신세대들은 ‘장마당’을 통해 시장경제를 학습하고, ‘돈주’라고 불리는 신흥 자본가들은 사유재산권 행사를 통한 부를 쌓아가고 있다. 또 김정은 위원장의 핵심 사업인 대규모 관광단지 개발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미 북한 내부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과연 북한이 베트남을 따라 남부럽지 않은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뤄낼 수 있을까. 70년 넘는 미국과의 길고 긴 악연을 끝내고 새로운 국가로의 도약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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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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