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출 5분의 1 이끌며 한국 경제 버팀목 불구, 메모리 호황 저물고 중‘반도체 굴기’위협
▶ AI 등 차세대 시장선 점유율 한자리수 그쳐, 삼성·SK 대규모 투자로‘초격차 전략’승부수
빵으로 쉽게 보여주는 한국 반도체 이야기와 오른쪽 아래 사진은 삼성전자가 출시한 세계 최초의 64M D램 메모리 반도체. <사진 제공=대한민국역사박물관>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세계 일등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스마트폰, 텔레비전, 자동차, 신용카드 그리고 여권까지 우리 일상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 전자산업에 필수! 그래서 ‘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이것. 세계 최초로 연간 수출액 1,000억 달러, 누적 1조 달러를 넘어선 자랑스러운 국가대표다. 이게 뭐냐고요? 바로 반도체이다. 요즘 이 반도체 때문에 “한국 경제에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말들이 뉴스에서 들린다. 한국에서 반도체는 대체 어떤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걸가?
현대 전자문명을 연 반도체는 1947년 벨 연구소가 트랜지스터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며 시작됐다. 반도체는 수 억개의 트랜지스터를 손톱만 한 칩에 넣은 형태다. 이를 ‘집적회로(IC)’라고 한다. 이 위대한 발명 덕분에 더 가볍고, 얇고, 짧고, 작게 만들기 위한 오늘날 전자기기의 경쟁도 가능하다. 이 반도체 시장에서 ‘넘사벽’ 1등은 바로 한국이다. 삼성전자는 D램과 NAND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1992년 이후 지금까지 28년간 쭉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포함한 한국 반도체는 무려 18년 동안 세계 1위 자리를 단 한 번도 내주지 않고 있다. 참 대단한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가.
초기 반도체 시장은 미국과 일본이 나눠 먹었다. 주로 군사, 우주 기술에 쓰이다 가전 보급이 확대되며 점차 민간 영역으로 들어왔다. 집적회로를 최초로 만든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 사를 포함한 모토로라, 페어차일드 등 미국 기업과 히타치, 미쓰비시 등 일본 기업이 7대 3으로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을 차지하고 있었다. 1980년대 한때 반도체를 둘러싼 미·일 간 갈등이 벌어지기도 했다. 요즘 미·중 무역갈등처럼 말이다. 이 싸움에선 일본이 승리한다. 1980년대 말 일본이 미국을 점유율에서 앞서게 됐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가. 1960년대 미국과 일본은 값싼 노동력에 매력을 느껴 한국에 반도체 생산기지를 세웠다. 이때만 해도 단순 제품조립 수준에 불과했다. 여기서 등장하는 핵심 인물. 현대판 문익점이자 한국 반도체의 시조새라 불리는 강기동 박사이다. 그는 당시 미국 모토로라에서 반도체 핵심기술을 연구했었는데, 반도체 생산기술을 이식하고자 하는 포부로 한국에 들어와 1974년 한국반도체를 설립했다. 하청을 넘어 설계부터 제품 완성까지 반도체의 모든 공정이 가능한 곳이다. 한국에 반도체 씨앗이 뿌려지는 순간이다.
자, 여기서부터 삼성이 등장한다. 중동전쟁 여파로 세계경제가 오일쇼크에 빠지면서 한국반도체는 공장 준공 2개월 만에 자금난에 빠지게 된다. 이때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본 당시 이건희 동양방송 이사는 개인재산까지 탈탈 털어 이 회사를 적극적으로 인수하게 된다. 숨통이 트인 강기동 박사는 1975년 국내 최초로 트랜지스터 3,000개가 집적된 전자 손목시계용 칩을 개발하며 큰 성공을 거둔다. 이 시계는 ‘대통령 박정희’라는 이름이 새겨져 외국 국빈들에게 선물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9년 뒤인 1983년 반도체 산업에 본격적인 출사표를 던지게 된다. 이병철 회장이 일본 도쿄에서 갑자기 발표해 유명해진 ‘도쿄선언’이다. 하지만 반응은 쌀쌀했다. 무모한 도전이란 평가와 함께 업계의 냉소가 이어졌다. 당시 청와대에서조차 ‘사업 자제’를 요청할 정도였다. 일본 미쓰비시 경제연구소도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5가지 이유’를 발표했다. 빈약한 내수시장, 빈약한 기술력, 빈약한 산업 생태계 등이 거론됐다.
그러나 삼성은 9개월 만에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메모리 반도체 64K D램 개발에 성공한다. 당시 107명의 개발팀은 무박 2일 64㎞를 행군하며 의지를 다졌다고 한다. 이때 삼성과 함께 대한민국 반도체의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는 SK하이닉스의 전신 현대전자도 중복투자 논란을 무릅쓰고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게 된다. 다시 9년 뒤 삼성은 세계 최초의 64M D램을 개발하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마침내 1993년, 도쿄 선언 10년 만에 삼성은 메모리 강국 일본을 앞지르고 세계 1위 메이커로 올라서게 된다. 이후 각국의 반도체 기업들이 공격적인 설비 투자와 출혈 경쟁을 벌이는 치킨 게임을 벌였지만 한국 반도체는 굳건했다. 세계 최초 모델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주도했다. 한국 경제에 있어 반도체는 경제 성장을 이끄는 대한민국 대표 상품으로 자리매김한다.
근데 요즘 뉴스를 보면 ‘한국 반도체가 흔들린다’ ‘반도체발 경제위기가 온다’는 말이 나온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가?
한국은 2018년 한 해 6,055억달러를 수출로 벌어들였다. 연간 수출액이 6,000억달러를 돌파한 것은 한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전 세계에서도 프랑스·독일·미국·일본·네덜란드·중국을 포함해 7개국밖에 안 된다. 이를 이끈 것이 바로 반.도.체. 한국 전체 수출의 5분의 1을 떠받치고 한국 수출 증가액의 5분의 4 이상을 바로 반도체가 이끌어왔다.
2018년 한 해에만 1,267억달러의 국산 반도체가 수출됐는데 자동차, 컴퓨터 등 완제품이 아닌 부품, 단일 부품만으로 연간 1,000억 달러 이상 해외에 판매한 건 세계 어디에도 없는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제가 있다. 지난해 한국의 수출은 전년보다 5.5% 늘었습니다. 하지만 반도체를 제외하면 0.6%로 뚝 떨어진다. 제자리걸음이었다는 얘기다.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 13개 가운데 자동차, 철강, 무선통신기기, 가전 등 7개 품목은 오히려 수출이 줄었다. 반도체가 없었다면 우리 경제가 더 나빠졌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한국 경제가 반도체에 거는 기대가 무지 컸다. 그런데 이 반도체마저 흔들리면서 한국 경제가 위기에 빠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반도체 가격도 고점을 찍고 추락하고 있다. 경기가 나빠지자 반도체를 많이 쓰는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이 서버 투자를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 대만 업체들이 대대적인 투자에 나서면서 공급과잉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한발 더 나아가 PC와 스마트폰이 견인했던 메모리 반도체 시장도 한계에 이르렀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이제는 단순 저장장치보다 데이터를 분석하고 제어를 담당하는 시스템 반도체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반도체 시장에서 시스템 즉 비메모리 비중은 70%에 이르는데 이 영역에서 한국 기업 점유율은 3% 남짓 대만이나 중국에도 밀리는 수준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선 메모리에 치중한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Built on Sand(사상누각에 불과하다)”(앤드류 노우드 가트너 부사장)라는 일각의 극단적인 평가도 나온다. 이 때문에 반도체 실적이 악화할 경우 한국 경제성장률이 함께 둔화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한국의 반도체가 이대로 무너질 리 없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이 나빠졌다면 다른 회사는 더 어려울 수 밖에 없다. 두 회사는 반도체 경기가 꺾인 틈을 타 2위권과 차이를 더 벌리는 ‘초격차’ 전략에 나섰다. 과감한 투자와 앞선 기술력으로 후발 주자들이 추격할 엄두를 못 내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3년간 반도체 시설 투자와 기술 개발에 180조원을 투자한다고 한다. SK하이닉스도 앞으로 10년간 120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한다고 한다.
반도체는 그동안 우수한 실적으로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반도체 산업은 앞으로도 꾸준히 확대될 전망이다. 웨어러블 디바이스, 드론, 자율주행차 등 반도체를 필요로 하는 곳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제 진짜 승부는 여기서 시작한다. 한국 반도체는 과연 또 하나의 성공 신화를 쓸 수 있을가?
<
박동휘·강신우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총 4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강기동박사를 인터뷰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는 기술을 한국에 이전했지만, 삼성은 결국 그를 사용한 후, 버린 것(?)으로 알고 있다. 순진한 기술자는 원천기술만 빼 먹히고 나면 팽 당하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주식배당을 처음부터 받고 기술이전 가격을 처음부터 법적서류로 받아놔도 교묘하게 자기네 이득만 챙기는 것이 대 기업의 술수이니 지금도 중국에 기술을 빼가서 파는 자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들의 교활한 수법을....
그래도 오늘 처음보는 기사로 읽는 분도 계심니다. 비반도체 미국 80%라면 삼성은 계속적으로 이 분야 연구해야 미국에 잡히지 안겠네요. 삼성 힘네세요. 전세계 공항에 삼성 간판
읽고 또 읽고. 재탕에 삼탕까지....ㅠㅠㅠ
쓰시느라 수고많았어요 다른글도 자주보고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