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를 연습하는 시간은 참으로 고독한 시간이다. 완성된 음악을 연주하는 희열은 그 무엇에도 비할 바가 없지만 그 짧은 시간을 위해서 한 음 한 음 가다듬는 시간은 온 체력과 정신을 소모하는 참으로 고된 시간이다. 특히 ‘산조’를 연주해야 하는데다 손가락의 통증이라도 다시 도지는 날에는 그 연습 과정이 고통스럽기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태어난지 100여년밖에 되지 않은 가야금 산조는 인간의 희노애락을 담은 판소리의 구음을 악기로 옮겨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한시간 가량 되는 산조 안에 슬픔만 해도 깊은 슬픔과 애달픔, 끓어오르는 듯한 슬픔, 눌러 참는 슬픔 등 수많은 감정을 표현해야만 한다. 물론 연주자에 따라 감정을 증폭시킬 수도, 이 모든 감정을 절제가 된 아름다움 안에서 표현을 할 수도 있다.
10월 초에 있었던 총영사관 주최 국경일 음악회를 위한 연주를 준비하던 때였다. 이틀 차이로 리처드 용재 오닐의 콘서트를 같이 기획하면서 시간적인 여유도 없고 스트레스가 쌓이던 와중에 지난 5월부터 나를 괴롭히던 손가락 통증이 심해지며 연습시간이 괴롭기만 하던 날들이 있었다. 연습 중 한번도 온전히 ‘무아지경’에 이른 적도 없고 쓸데없는 생각들이 나를 자꾸만 괴롭혀 한국에 계시는 선생님께 이런 상황을 말씀드리며 괴로움을 토로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천주교 신자이신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의 연주는 하느님께 바치는 나의 기도란다.” 그 순간 상대가 누구든 한번도 온전히 다른 대상을 위한 연주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던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여태껏 수많은 연주회를 할 때마다 ‘나와의 싸움’, 또는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연주’를 하자고 수백번, 수천번을 되뇌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이런 말씀은 종교를 떠나 어쩌면 우리 선조들의 사상과도 맞닿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현재 전해져 내려오는 아악(雅樂) 중 가장 오래된 ‘수제천(壽齊天)’이라는 곡이 있다. 백제가요 ‘정읍사’의 반주였으나 이후 궁중 연례악 또는 처용무의 반주로 쓰이며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관악 합주곡으로 현존하는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라고도 불리운다. 이 수제천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듣는이에게 ‘하늘처럼 영원한 생명이 깃들기를’ 기원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멋이 깃든 음악이 내 겸손한 마음이 되어 듣는이에게 아름답게 닿기를 꿈꾼다.
<손화영(가야금 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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