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
인간이 이렇게 지구의 정복자가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동물 중 가장 빨리 뛰는 것도 아니다. 치타보다 훨씬 느리다. 그러나 동물 중 가장 멀리까지 뛸 줄 아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사냥감 목표가 한 번 설정되면 끝까지 추적한다. 큰 동물 사냥감을 발견하면 서로서로 협력할 줄 알고 공평하게 나눠 먹으려고 노력한다. 다양한 원인 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인간이 뇌에 엄청난 투자를 했다는 사실이다. 뇌에다 인간이 얼마나 과도한 투자를 했느냐 하면 탄생시 인간은 절대적으로 불완전한 존재로 태어난다. 왜 그럴까.
태아의 뇌가 너무 커지면 출산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출생 후부터 오랜 기간 부모의 보호하에 교육을 받아야만 겨우 홀로서기를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압축 성장 비결의 하나는 패스트 세컨드 전략이다. 일등 뒤를 바짝 따라 붙다가 막판 스퍼트로 결승점에 먼저 도달하는 전략이다. 마라톤이나 스케이트 경주에서 자주 보는 광경이다. 그런데 결승점이 정해져 있지 않은 경주에서 패스트 세컨드 하기란 말만큼 쉽지 않다. 물론 그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은 퍼스트 무버의 입장이다. 방향까지 잡아가면서 달려야 하니까 말이다. 한참 달리다 뒤를 돌아보니 2등이 보이지 않는다. 결승점이 있는 경기에서는 ‘경쟁자가 뒤로 확 처졌나 보다’ 하고 안심할 수도 있다. 결승점이 뚜렷이 없는 게임에서는 2등이 갑자기 다른 방향을 잡았는지도 모른다. 아니 아예 전혀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경쟁자가 불쑥 나타나 승리를 주장하기도 한다.
우리도 이제 퍼스트 무버가 돼야 할 입장에 처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의도적으로 패스트 세컨드를 자처하는 것도 한 전략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봤듯이 한 조직이 두뇌에 투자하는 것만이 최고의 전략이라는 사실이다. 두뇌에 투자하는 세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첫째, 머리를 빌려라. 조직 내부에 최고의 브레인을 모두 다 가지고 있는 것만큼 좋은 일은 없다. 그러나 그것은 엄청난 비용을 치러야 한다. 그래서 외부 연구기관, 특히 대학 연구를 지원하는 것이다. 산학협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면 그야말로 윈윈이다. 그러나 대학의 연구는 기초적이고 비상업적인 경우가 많다. 대기업이나 국가가 아니면 당장 돈이 되지 않는 연구에 장기간 지원한다는 것은 말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둘째, 창업을 지원하라. 조직의 규모가 커지기 시작하면 반드시 관료주의가 나오게 돼 있다. 공무원 조직은 말할 것도 없고 민간조직도 일정한 규모를 넘어서면 비만증에 걸리게 마련이다. 영국 인류학자 로빈 던바에 따르면 150명을 넘어서면 소통이 안 된다고 한다. 조직을 잘게 자르면서도 서로 연결되게 만들면 그게 최고다. 협업할 줄 아는 사람들을 잘 연결해주는 것이 바로 리더가 해야 할 일이다. 자체에서 하기 힘들면 브레인으로 가득 찬 스타트업을 인수합병(M&A)하라. 그리고 쓸데없는 간섭을 하지 말고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잘 협업하기만 하면 된다.
셋째, ‘오타쿠’에게 주목하라. 브레인을 밖에서만 찾으려고 하지 말고 조직 내부에 있는 괴짜들을 주목하라. 조직 안에서 잘 살펴보면 다른 사람들과 그렇게 잘 어울리지도 않고 뭔가에 푹 빠져 있는 것 같은 괴짜들이 있다. 뭔가를 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도대체 뭘 하는지도 잘 모르겠는 사람들이 있다. 항상 말만 꺼내면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사람도 있다. 오타쿠일 확률이 있다. 그들이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왜 그러는지 잘 물어보라. 그래서 그 속에 있는 것을 끄집어낸 다음 조직의 목표와 방향에 접목시키면 바로 창의적 아이디어가 나온다.
등잔 밑은 항상 어둡다.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니라 조직 내부에서 괴짜들을 집합시켜라. 두뇌에 투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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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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