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제가 벽 하나 사이로 똑같은 두 식당
▶ “누가 이길까” 호기심 찬 손님드로 성업

‘파라펠 사흐연’이라는 똑 같은 상호를 내건 두 개의 식당이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서 있다. 요즘 베이루트에서 사람들의 관심이 쏠린 형제의 대전을 치르고 있는 형 주하이르 사흐연(오른쪽)과 동생 후아드 사흐연이 각각 경영하는 식당들이다.

두 식당의 메뉴는 비슷하다. 콩 반죽에 셀러리와 양파들을 섞어 튀긴 중동식 고로케인 파라펠과 파슬리, 도마도, 래디시 등을 피타 브레드에 싼 이 샌드위치도 두 형제가 모두 자신하고 내놓는 메뉴다.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갈등과 시아파와 수니파의 충돌로 계속된 오랜 내전의 상처가 아직 생생한 레바논의 베이루트에선 요즘 또 하나의 내전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파라펠 사흐연’ - 한 식당의 간판에 써진 상호다.
‘파라펠 사흐연’ - 벽 하나를 사이에 둔 바로 옆 식당의 간판이다.
둘 다 밝은 조명과 거울이 붙어 있고, 동그랗게 빚은 파라펠들이 끓는 기름 속에서 튀겨지고 있다. 두 식당 카운터에는 빵이 가득 쌓여 있고 래디시와 파슬리 그리고 참깨 소스로 만든 중동식 수프 타라토르가 반짝이는 철제 보울에 담겨 있다.
두 식당의 메뉴도 완전 똑 같다 - 레귤러 샌드위치. 샌드위치 엑스트라. 파라펠 더즌. 스몰 타라토르. 라지 타라토르. 소프트 드링크, 요구르트.
그러나 경쟁은 치열하다. 이 지역에서 어느 경쟁 못지않게 오래된 경쟁이다 : 브라더 대 브라더, 형과 동생의 싸움이며 파라펠 대 파라펠의 뜨거운 대결이다.
“내 동생이요? 난 그가 내게서 좀 떨어지기를 바랍니다” 푹 푹 찌는 한 여름 오후 형 주하이르 사흐연은 말했다. “내겐 더 이상 형이 없어요” 라고 옆 식당의 동생도 받아쳤다.
한때는 단 하나의 ‘파라펠 사흐연’ 식당만이 있었다. 두 형제의 아버지 무스타파 사흐연이 다운타운의 바로 위쪽 다마스커스 스트릿에 개업한 식당이었다.
콩 반죽에 셀러리와 양파 등을 섞어 튀긴 중동식 고로케인 ‘파라펠’은 근로자의 점심으로 통하며 내전 중인 베이루트에서도 파라펠 사흐연 식당의 맛있는 점심은 모두의 인기를 끌었다.
당시 소년이었던 마운하드 알-샤리프는 친구들과 함께 이곳에 와 파라펠 샌드위치를 사먹고 영화를 본 후 돈이 남으면 트램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일을 기억한다고 했다.
그러나 베이루트의 길고 치열한 내전엔 파라펠 사흐연도 결국 견디지 못했다. 식당은 내전이 격화되고 이 지역이 반군들의 총격전이 치열해지는 최전선이 되면서 1978년 문을 닫았다.
식당이 폐업하던 해 아버지 무스타파 사흐연도 세상을 떠났다. 트램은 오래전 끊어졌고 영화관도 문을 닫았다.
파라펠 사흐연은 내전이 끝난 후 1992년 다시 문을 열었으나 2006년 동생 후아드가 독립하면서 두 곳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그는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라고만 할 뿐 정확한 이유를 밝히기 거부했다.
형 주하이르는 동생 아내의 “베갯머리송사” 때문이라고 투덜댔지마 곧 “내 사업엔 영향이 없어요. 내겐 늘 오던 단골이 많으니까요”라고 덧붙인다.
똑같은 상호이지만 형 식당의 간판엔 푸른색 왕관이 그려져 있고 동생네 간판의 왕관은 노란색이다. 형은 자신의 가게가 ‘원조’임을 강조하며 아버지의 사진을 벽에 붙여 놓고 아버지의 오리지널 레시피를 사용한다고 자랑한다. 택시를 타고 기사에게 “사흐연에 갑시다”라고 말하면 어느 곳에 내려 주는지 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동생은 옆 식당을 한 마디로 “케케묵은 구식”이라고 일축한다. 그는 식당 벽에 파라펠 샌드위치를 먹는 가수 브라이언 애덤스의 사진을 붙여 놓았다.
점심시간이면 멀리서 차를 타고 몰려오는 고객들도 적지 않은데 고객들 간의 대립도 은근히 팽팽하다.
파라펠을 사먹던 어린 소년에서 다큐멘터리 영화제작자가 된 알샤리프는 아직도 파라펠 사흐연의 단골이다. 그러나 동생의 식당에만 간다. 형네 샌드위치는 3,000 파운드(약 2달러), 동생의 샌드위치는 3,500 파운드인데 동생의 샌드위치엔 파라펠이 4개 들어 있고 형네 것엔 3개뿐이다. 동생네 파라펠이 담백해서 속이 편하다는 것. 더 비싸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그는 말한다.
형에 샌드위치를 먹을 의향은 없느냐는 질문에 철학적 대답이 돌아온다. “아뇨. 무엇 때문에 위험을 감수합니까? 삶에서 중요한 것은 두 가지이죠 : 먹고 싶을 땐 잘 먹어라, 즐기고 싶을 땐 즐겨라. 다음 주엔 내가 죽어 있을지 누가 압니까” 삶과 죽음이 매일 교차하는 긴 전쟁의 한 복판에서 반생을 지낸 그는 체험에서 얻은 어드바이스를 무료로 건네주었다.
세네갈에서 4명 자녀를 데리고 베이루트를 방문했다는 유므나 엘 자인은 레바논 사촌의 조언에 따라 형네 식당을 택했는데 만족한 표정이다.
물론 “아, 그게 그거지요. 팔라펠이 다 같은 팔라펠이지 다를 게 뭡니까?”라며 그때그때 아무 데나 간다는 사미르 시몬처럼 쿨한 손님들도 있다.
두 사흐연은 앙숙인 형제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있다. 둘 다 철학적인 면이 있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평화입니다. 마음이 편하지 않다면 무슨 소용입니까” 먼저 형에게 등 돌렸던 동생의 인생관이다.
“단합이 우릴 강하게 한다”고 굳게 믿는 형은 떠난 동생이 돌아오길 오래 기다렸지만 “이젠 단념했다”고 말한다.
최근 이들의 싸움은 극단적으로 치닫고 있다. 동생이 가게 앞에 위생규정을 위반한 보건국의 경고장을 붙여놓고 형의 가게를 가리키는 붉은 화살표를 그려놓은 것이다. “야비한 수법”이라고 분노한 형은 그러나 보복은 자신이 아닌 신이 해줄 것이라며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길 건너편의 내전을 겪으며 간신히 골격만 남은 오피스 빌딩, 폭격으로 유리가 다 깨져 없어진 창문들이 마치 ‘파라펠 사흐연’과 ‘파라펠 사흐연’을 향해 커다랗게 벌리고 있는 수많은 입들처럼 보인다. 내전의 상처는 아직 시내 곳곳에 남아있지만 주민들은 반군들의 총격전 못지않게 형제들의 가업 잇기 싸움에 관심을 기울이며 일상을 되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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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뉴욕타임스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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