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리아 게이트 전야…무슨 일이 일어났나?
▶ ‘이제는 말할수 있다’… 안홍균의 ‘코리아 게이트’증언 2

코리아 게이트 당시인 1977년 10월-79년 1월 미 하원 윤리위 특별조사위원회 전문위원 겸 통역으로 위촉돼 활동한 안홍균 씨.
본보는 코리아 게이트에 관한 안홍균 씨의 증언을 기획 시리즈로 연재한다. 안 씨는 이번 증언을 통해 코리아 게이트를 둘러싼 한미 간의 숨막혔던 긴장과 갈등의 역사적 시간들을 재구성할 예정이다. 또 그가 가까이에서 지켜본 박동선, 김형욱, 김한조와 김상근, 손호영 등 코리아 게이트의 주역에 관한 숨은 스토리와 에피소드들도 소개한다.
-닉슨 독트린과 당황한 한국
역사는 때론 이성을 배반한다. 합리와 상식이란 낮의 시간에 역사는 때 아닌 광기의 춤을 추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 예기치 못한 역사에도 전조(前兆)는 있다. 훗날을 예고하는….
코리아 게이트도 그랬다. 그 격정의 늪에 빠져들기 전, 이미 요동치는 숨 가쁜 예열의 시간이 있었다.
1970년대를 여는 벽두부터 한국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몇 개월 전인 69년 7월 25일 괌(Guam)에서 닉슨 독트린이 발표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아시아의 방위를 1차적으로 아시아인에게 맡긴다는 새로운 미국의 외교기조였다. 이에 따라 주한미군 제7사단의 철수가 시작되었고 닉슨은 1972년 중공을 전격 방문하여 데탕트 시대를 열었다.
한국의 안보는 미국이 책임진다는 냉전시대의 패러다임이 무너지면서 청와대는 다급해졌다. 박정희 대통령은 국군 현대화를 위한 종합 목록을 제시하고 미국에 추가 군사원조 2억 달러 증액 등을 요구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1972년 10월17일 장기집권을 위한 10월 유신(十月維新)을 단행했다.

1972년 중국을 방문한 닉슨 대통령이 마우쩌뚱 주석과 악수를 하고 있다.
-워터게이트로 들끓는 미국
미국도 사정은 녹녹치 않았다. 72년 6월 워터게이트 사건(Watergate Affair)이 일어났다.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노린 비밀공작반이 워싱턴 D.C.의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침입해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된 것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은폐에 관여했던 닉슨은 74년 8월 하원에서 대통령 탄핵 결의가 이뤄지면서 사임하게 된다. 사상 최대의 정치공작 스캔들에 미국은 들끓었다.
국외에선 베트남전의 수렁에 빠져 허둥댔다. 사상자가 늘고 전쟁이 길어지면서 반전(反戰) 여론은 미국을 뒤덮었다.
시간은 1970년대 중반으로 치닫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한국에 대한 여론이 악화일로를 걸었다. 코리아 게이트는 박동선이 주인공이었으나 이미 한국에 대한 불길한 루머와 보도들이 미국사회에 퍼지기 시작했다. 70년대 초반부터 박동선과 김한조가 KCIA 통제 하에 돈을 뿌리고 다닌다는 루머가 돌고 신문에도 조금씩 나기 시작한 것이다. 코리아 게이트의 예고편이었다.
-박보희와 모금
첫 불똥은 통일교로부터 튀었다. 통일교의 2인자인 박보희가 설립한 한미문화자유재단이란 단체가 있었다. 수완 좋은 박보희는 이 단체의 명예회장이나 고문에 미국의 고위인사들을 많이 포함시켰다. 특히 주한미군 근무 경력이 있는 미 고위 장성들을 대거 고문단으로 위촉했다. 이 단체는 미국 내에서 반공 활동을 명목으로 모금활동을 벌였다. 문제의 발단은 방송이었다.

통일교의 2인자였던 박보희.
한국문화자유재단은 전 세계 순회공연으로 유명한 리틀 앤젤스를 산하에 둔 단체였다. 박보희는 한편으로 1966년 ‘자유아시아방송(Radio for Free Asia’을 한국에 설립해 운영하고 있었다.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뒤를 봐준다는 말이 파다했다. 이 라디오는 서울 중앙방송국을 사용했다. 북한이나 중공을 대상으로 한 반공 방송이었다.
그런데 대(對) 중공이나 북한 방송 내용 중에 허위나 과장이 많았다. 미국에서 운영자금을 모금했기에 문제가 됐다. 상원은 청문회를 개최했다. 통일교와 한미문화자유재단은 타깃이 됐다.

미 언론에 보도된 통일교 문선명 관련 기사들.
-통일교의 닉슨 지지 데모
1965년경 미국에 진출한 통일교는 급속도로 교세를 불리고 있었다. 박보희는 1971년 12월 통일교 세계선교본부가 설치되고 문선명의 미국 포교를 특별보좌하면서 명실상부한 2인자로 군림했다.
통일교세의 확장은 기독교계는 물론 미 주류사회의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통일교의 닉슨 지지 데모는 여론을 악화시켰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 대통령 탄핵시위가 절정을 이룰 때 통일교가 워싱턴에서 닉슨을 위한 지지 데모를 벌인 것이다. 이 배후에 KCIA가 있다는 말이 나돌았다. 통일교의 배후에 한국 정부, 특히 중앙정보부가 있다는 설은 워터게이트 사건의 여진이 채 가시지도 않은 상황에서 반한(反韓) 여론을 고조시켰다.
통일교에 대한 여러 의혹들이 제기되면서 상원 풀브라이트 위원회에서 조사에 착수했다. 풀브라이트는 상원 외교위원장으로 거물 정치인이었다.
-수지 박 톰슨이란 한국계 여인
KCIA의 대미 공작설은 미 의회의 한국계 여인으로 이어졌다. 칼 앨버트 연방 하원의장실에서 일하던 수지 박 톰슨이란 여자가 그 주인공이었다.
수지 박 톰슨은 1931년 경남 통영 생이었다. 본명이 박숙래로 일설에는 대구에서 성장했다 한다. 박은 1954년 유학차 도미해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미국인 윌리엄 톰슨과 결혼한 후 1967년 대망의 워싱턴으로 진출했다.
연방 의회의 문을 두드린 끝에 여러 의원의 비서로 미 정계에서 인맥을 쌓았다. 그리고 1971년 1월, 연방 하원의장에 취임한 칼 앨버트 의원의 비서가 되면서 출세의 하이웨이가 열렸다.
당시 수지 박은 막 40대에 접어들었다. 남편과는 별거 끝에 75년 이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의원들 사이에 수지 박의 인기는 좋았다. 나중에 의원들과 염문설도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를 직접 보진 못했지만 용모와 몸매가 가냘프면서 예쁘다는 주위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연회장의 비밀
미 권력서열 3위이자 하원을 이끄는 의장의 신임을 바탕으로 그녀에게는 파워가 실렸다. 수지가 한국을 드나든 것도 그 무렵이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미 의원 초청외교가 있었다. 연방 의원들이 방한할 때 수지 박도 대여섯 차례 함께 한국을 찾았다. 앨버트 하원의장도 의원단을 이끌고 71년 8월 방한했다.
미국을 움직이는 하원의장의 비서인 그녀에게 한국 정부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한국에서의 활동내용은 나중에 하원 윤리위의 조사결과 드러나게 된다. 그 중에는 낯 뜨거운 내용도 있었다.
수지 박이 의원들과 한국에 갔을 때다. 중앙정보부에서 한국식 접대법을 동원했다. 술과 여인이다. 연회장의 수지 옆에는 유명한 미남 배우가 앉아 있었다. 정보부에서 데려다 앉힌 거였다.

수지 박 톰슨 여인의 저서 표지.
-수지와 주미대사관
수지 박에 접근한 건 워싱턴의 주미 한국대사관도 마찬가지였다. 대사관에서 미 의원들을 만나고 싶을 때 수지 박을 통하면 만사 오케이였다. 대사관에서 이 여인에게 면세 위스키를 박스로 사다주기도 하고 돈도 줬다는 소문이 돌았다. 나중에 의회 조사결과 박의 은행계좌에 갑자기 많은 돈이 들어온 게 드러났다. 수지 박은 파티도 가끔 열었다. 미 정가에 눈독을 들이는 로비스트들은 물론 김동조 주미대사도 그 파티에 참석하곤 했다. 대사관의 중정 공사인 김용환도 눈에 띠었다.
‘한국의 마타하리’라 불리기도 한 박의 화려한 시절은 오래 가지 못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 여인의 수상한 행보에 주목했고 보도가 시작됐다. 그녀의 뒤에 KCIA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수지 박을 직접 만난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그녀가 청문회 증인으로 나올 때 나에 대해 평을 한 것을 들은 적은 있다. 하원 윤리위 공보관이 그녀에게 물었다 한다.
“김형욱 통역을 한 안홍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엉터리다.” 그녀가 짧게 답했다.
공보관은 깜짝 놀랐다. 통역이 잘못됐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청문회에 참석했던 주미 한국대사관 의회 담당 참사관에게 확인해보았다고 한다.
“거의 완벽하다.”
1977년 새해가 밝았다. 칼 앨버트의 후임으로 하원의장에 취임한 토머스 오닐은 1월 3일 수지 박 톰슨을 의장실 비서 자리에서 해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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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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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사 잘 봤습니다. 이 연재물을 읽고 싶은데 어디서 찾을 수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