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핑크빛 미래 1930년대 분위기에 반론 제기
▶ 창의성과 감정을 잃어가는 인간의 단면 그려
올더스 헉슬리가 그린 미래 과학기술이 지배하는 ‘멋진 신세계’에선 공장에서 조절된 태아의 생물학적 역량에 따라 계급이 나뉜다. 사진은 인공수정으로 우수 계급이 만들어지는 사회를 그린 영화 ‘가타카’(1997). 콜럼비아픽처스 제공
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떨어지면서 인류는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 과학기술이 우리의 미래를 유토피아로 이끌어 줄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은 설득력을 잃었다. 산업혁명 이후 망설임 없이 질주해 온 과학기술에 대중은 처음으로 의심과 불안을 갖게 되었다.
모든 이들이 처음부터 과학기술 만능주의에 찬성한 것은 아니었다. 예술가들은 언제나 시대의 이면에 드리워진 그늘의 징조에 예민하다. 모두가 ‘예’라고 할 때 혼자 나서서 ‘아니오’라고 용감하게 발언하는 존재이다. 세상 사람들이 과학기술의 장밋빛 전망에 심취해 있던 1932년, 올더스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를 내놓았다. 히로시마보다 13년 앞서 발표된 이 소설에 독자들은 충격에 빠졌다. 미래 과학기술 사회는 가치관과 철학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과학기술은 사고방식을 얼마나 바꿀까
아기들은 부모가 누구인지 모르는 채 공장에서 태어나고, 어릴 때부터 자유분방한 성생활이 장려된다. 지배계급과 노동계급은 세상에 나올 때부터 구분이 되어 있고, 다들 소마라는 마약으로 일상의 스트레스를 푼다. 모든 것이 기본 생활과 말초적 욕망의 충족에 맞추어진 ‘멋진 신세계’에 어느 날 야만인 청년이 나타나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유명인이 된다. 하지만 그의 가족, 그의 연인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그의 삶을 비극으로 이끈다.
‘멋진 신세계’는 겉보기에 유토피아처럼 보이는 디스토피아 이야기이다. 의식주가 높은 수준으로 보장되지만 자유분방한 창의성이나 슬픔, 비탄 등의 감정 과잉은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정교한 사회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조금이라도 갈등을 야기할 수 있는 책들은 모두 금지되어 있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소마라는 마약만 있으면 늘 행복에 취해 있을 수 있기에.
헉슬리가 이 작품을 발표할 당시 인류가 낙관적 미래상을 견지할 수 있었던 큰 근거는 통제에 대한 자신감이었다. 새로운 과학기술이 계속 나오더라도 항상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던 것이다. 그러나 헉슬리는 과학기술이 사회에 침투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영혼도 조금씩 변화시킨다는 점을 예리하게 간파했다. 사회의 비능률은 크게 감소하고 복지나 생활수준이 향상될 것은 분명했지만, 새로운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사고방식을 가지게 될 것이었다. 기계에 의한 대량생산은 막대한 부를 창출하여 계급의 분화를 가속시키고 실용주의 철학이 점점 득세하게 된다.
■과학기술적 근대화에 대한 이견
크게 보면 ‘멋진 신세계’의 탄생 과정은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문화예술계의 필연적인 반응이기도 하다. 산업혁명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서양의 문화예술인들은 새로운 숙제를 떠안게 되었는데, 바로 과학기술이라는 새롭게 부상한 변수를 가지고 유토피아 담론의 틀을 다시 짜야 했던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과학기술이 가져다 줄 장밋빛 미래상이 먼저였다. 이런 작업으로 H.G. 웰스의 ‘다가올 세계의 모습’이나 에드워드 벨러미의 ‘뒤돌아보며’처럼 유의미한 결과가 있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 1차 세계대전 등을 거치면서 인간의 이성이 질주하는 과학기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이 떠올랐고, 결국은 순진한 이상론에 대한 회의와 반성, 더 나아가서 불길한 예감까지도 포착하는 시각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예브게니 자마찐의 ‘우리들’을 필두로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그리고 오웰의 ‘1984’ 등이 이런 맥락에서 탄생한 작품들이다.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를 집필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H.G. 웰스의 1923년 소설 ‘신과 같은 인간’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몇 명의 영국인들이 평행우주에 존재하는 다른 차원의 지구로 간다는 설정을 취하고 있다. 이 별차원의 지구는 사회주의적 이념에 입각한 세계정부에 의해 평화롭게 유지되고 있으며 발달된 과학기술로 사회복지 시스템도 완벽해서 병원균이 완전히 박멸된 상태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이방인들 때문에 면역 시스템이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된다. 이런 의미심장한 설정을 통해 웰스는 이상적 유토피아론을 시도한 것이었지만, 헉슬리는 그의 이상론에 동의할 수 없었기에 그 반론 격으로 ‘멋진 신세계’ 집필을 시작하게 되었다.
■모색과 순례의 여정을 산 20세기 예술인
헉슬리는 세계가 여러 면에서 급변을 거듭하던 한 시대를 온전히 거치며 자유로운 예술혼의 정처를 찾아 문화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이민자의 삶을 살았다. 작가로서 1928년에 발표한 네 번째 장편 ‘연애대위법’으로 대가의 반열에 오른 그는 40대에 미국으로 이주한 뒤 힌두교의 베단타 철학을 접하고서 그 신봉자가 되어 크리슈나무르티 등의 인물들과 긴밀한 정신적 친교를 나누게 된다. 한편 할리우드에서 영화 ‘오만과 편견’(1940)을 각색하는 등 몇 차례 시나리오 작업을 시도했지만, 영화 관객들이 원하는 빠르고 감각적인 대사 취향과는 맞지 않아 곧 그만두었다. 1945년에는 세계 모든 종교들의 핵심적인 공통 진리만을 집대성한 ‘영원의 철학’을 집필했는데 이 저작은 오늘날까지도 스테디셀러로 널리 읽히고 있다.
헉슬리는 2차 대전이 끝난 뒤 미국 시민권을 신청했으나 충성 서약을 하지 않겠다고 하여 거절당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미국에 남았다. 1959년엔 영국 정부에서 수여하려던 기사 작위도 거부했다. 50년대 초부터는 심령 연구와 신비주의, 그리고 환각성 약물에 심취하기 시작했으며 특히 ‘자아의 새로운 내면을 각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사이키델릭한 약물의 적극 이용을 옹호한 선구자였다. 부인 로라에 따르면 헉슬리는 세상을 떠나던 당일에도 몇 차례에 걸쳐 LSD 주사를 요구해서 원하는 대로 해 주었다고 한다.
헉슬리가 ‘20세기 초반 서양(영국) 엘리트 지식인의 시각’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 작품 전반에 깔린 제국주의적, 인종적, 계급적 편견 때문에 ‘멋진 신세계’는 ‘20세기의 고전’에 머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시대가 활짝 열리던 시기에 누구도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성찰하도록 일깨운 그의 공은 분명 시대의 정점에 우뚝 선 업적이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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