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응급실에 대한 불만을 쌓아올리면 태산을 이룰 것이다. 환자는 물론이고 환자를 데려간 친지들도 모두 한 목소리로 E.R.을 성토하곤 한다.
그 중에는 정말 그래야할 케이스들도 있다. 복통으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가 몇시간이고 방치됐다가 맹장이 터져버린 경우 같은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불만은 병원 응급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잘 몰라서 빚어지는 오해인 경우가 많다.
“의사 한번 만나는데 4시간이나 기다렸어요” “간호사, 의사, 직원들이 계속 내가 있는 칸을 지나가면서도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답니다” “물 한잔 마시려는데 부탁할 사람이 없는 거에요” “몇시간을 기다려도 도대체 내가 입원하게 되는 건지, 언제 입원이 가능한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어요”
가장 흔히 들을 수 있는 불평들이다. 이중 입원에 관해서는 환자에게 맞는 병동에서 병실과 침대가 나오기 전에는 응급실에서 기다려야 하는게 정상이다.
병원 응급실은 환자가 온 순서대로가 아니라 응급 상황의 위급 정도에 따라 우선순위를 매기기 때문에 생명이 위급하지 않다면 많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림 Paul Rogers>
■E.R.에는 우선순위가 있다
심장마비·뇌졸중 등 우선 처치
나머지는 자신 차례 기다려야
■정말 급하다면 911 불러라
앰뷸런스로 후송 곧바로 진단
가족 차 타고 가면 위험초래
■사소한 증상·부상이라면어전트케어 등 전문병원으로
조급해 하지 말고 마음 안정을
병원 응급실을 찾는 미국인이 일년에 1억2,000만명이나 된다. 그리고 이 숫자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E.R.을 폐쇄하는 병원이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20년 전에 비해 미국 내 응급실은 22%가 감소했다.
질병통제국(C.D.C.) 통계에 의하면 응급실에 도착한 환자가 의사를 만날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평균 55분이다. 그러나 밤이나 주말 등 바쁠 때는 몇시간도 걸리는 것이 현실이다.
E.R.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머리 혹은 배가 아프거나 어디가 부러진 사람보다 진짜 의학적 응급인 경우-심장마비, 뇌졸중, 호흡장애, 멎지 않는 출혈 등-가 언제나 우선 처치 대상이라는 것이다.
예진 간호사가 병증의 심각도를 평가하여 우선순위를 매기기 때문에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지 않는 사람은 기다릴 생각을 해야 하고, 누군가 나보다 늦게 왔는데 먼저 치료받는 것을 보더라도 화내거나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 한 간호사의 말이 아주 좋은 약이 될 것이다.
“기다리는 건 좋은 거예요. 죽지 않을 거라는 뜻이니까”
하지만 기다리는 동안 증상이 악화되거나 새로운 증상이 나타난다면 당연히 데스크에 알려야 한다. E.R.에서는 환자가 대기실에서 토하거나 의식을 잃기를 결코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빨리 치료받으려고 증상을 과장했다가는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 정확한 진단이 내려지기 힘들고 더 많은 주사바늘과 검사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또 하나 알아둬야 할 중요한 사실은 진짜 응급상황일 때는 911을 부르라는 것이다. 호출된 앰뷸런스가 환자의 증상을 처치할 시설이 돼있는 가까운 병원으로 데려다줄 것이기 때문이다.
심근경색의 위기가 찾아왔는데 자기가 병원으로 운전해서 가거나 걸어가거나 친구나 가족에게 차로 데려다 달라고 해서는 안 된다. 앰뷸런스로 후송되면 즉시 진단되어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응급 처치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앰뷸런스를 불러서 타고 가도 상태가 그렇게 긴급하지 않은 것으로 판명되면 응급실에서 뒷줄에 놓이는 것은 마찬가지다.
만일 의사가 응급실로 보내는 경우라면 의사 오피스에 부탁해 해당 병원으로 전화를 걸고 미리 자신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보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그다지 급하지 않은 문제라면 E.R.에 가기 전에 잘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 주치의와 연락이 안 되는 상태에서 심한 감기, 인후염, 귓병, 안구 감염, 허리 통증, 꿰맬 만큼 베인 상처 등의 증상은 가까운 응급 케어 시설(urgent care facility)에서도 얼마든지 치료받을 수 있다. 응급 케어 시설은 요즘 거의 모든 도시에 갖춰져 있다.
또한 요즘에는 체인으로 운영되는 많은 드럭 스토어에 의료 훈련을 받은 스태프들이 일하는 클리닉이 있어서 사소한 증상과 부상은 거기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심하게 베이거나 다친 부상의 경우는 전문 병원으로 가는 것이 좋다.
많지는 않지만 어떤 병원들은 ‘패스트 트랙 E.R.’(fast-track emergency room)을 운영하고 있어서 덜 심각한 문제로 응급실을 찾은 사람들을 빨리 봐주도록 하고 있다. 코네티컷 주의 병원들은 대부분 이런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러면 꼭 응급실에 가야만 하는 경우, 어떻게 해야 좀 덜 불안하고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까? 보험카드를 소지하는 것은 기본이고, 자신의 전화번호와 함께 병력과 복용약들, 앨러지 유무사실 등을 기록한 카드를 반드시 가져간다. 만일 최근에 받은 의료 검사의 결과가 있으면 그것도 챙겨간다.
누군가와 함께 가거나 응급실에서 만나도록 해서 도우미와 대변인 역할을 하도록 부탁한다. 몸이 불편한 상황에서 물도 가져다주고, 다친 사람에게는 아이스팩 찜질을 계속 해주고, 데스크에 가서 입원 여부를 묻거나 수속해줄 사람이 있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어쩌면 응급실을 찾은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런 물리적 도움보다는 불안과 걱정을 덜어주고 마음의 안정을 찾게 해주는 조치일 것이다. 병원 측은 최대한 많은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 효율적으로 일하고 있다고 해도 기다리는 사람에게 뭐가 어찌 돌아가고 있는건지, 누가 담당 의사 혹은 간호사인지,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등을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면 환자가 겪는 불안과 증상은 더 커질 수도 있다.
감정의 동요가 심한 환자와 동반자에게는 어쩌면 그것이 가장 중요한 치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병원 측은 이런 일에는 가장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지적이다.
시간을 절약하고 불필요한 검사를 줄이기 위해서는 환자 자신의 메디컬 히스토리를 잘 알아야 하고 금방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복통이 심해서 응급실을 찾았다면, 그리고 이전에 맹장이나 담낭 제거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면 그 사실을 빨리 이야기해주어야 한다.
그런 한편 응급실 의사가 증세를 정확하게 진단하지 못했다고 해서 책임을 추궁해서는 안 된다. E.R. 닥터는 심한 부상을 입었거나 생명이 위독한 환자들의 처치에는 익숙하지만 다른 종류의 수많은 증상들에 대해서는 전문이 아닌 의사들이기 때문이다.
일단 응급실에서 자리를 배정받으면 담당 간호사와 의사의 이름을 알아두는 것이 좋다. 그래야 진통제가 필요하다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요청할 수 있고, 기다리는 동안 음식을 먹거나 마셔도 되는지 등의 궁금증에 대해 가장 정확한 답변을 들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응급실을 찾은 사람은 당연히 스트레스가 심하고 걱정불안도 많을 테지만 심호흡을 하거나 명상하면서 마음을 안정시키도록 노력한다. 그렇게 하면 증상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되고 응급실 스태프들에 대한 태도 역시 누그러진다. E.R. 직원들에게 적대적 태도를 보이고 화를 많이 낼수록 더 빨리 치료받기는커녕 그 반대의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은 인지상정의 세상에서 당연한 일이다.
치료가 다 끝나고 나올 때는 집에 가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팔로업 치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확실하게 알아두고, 만일 상태가 나빠지면 문의할 수 있는 전화번호까지 받은 다음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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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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