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치의 유대인 학살 피해서 숨어 일기 썼던 암스테르담 집 박물관으로 방문객 늘었지만 희망·로맨틱 이야기로 변질
▶ 반유대주의·공격 증가 속 “역사적 비극 알기 쉽게 설명” 뮤지엄 대폭 확장계획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 25개월 동안 가족과 함께 다락방에 숨어 지내면서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는 일기를 남겼다.
안네 프랑크 하우스는 방문객이 2010년 100만명이던 것이 지금은 130만명으로 늘어났다. 그중 많은 수가 홀로코스트나 안네 프랑크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 채 이곳을 찾는다. 유대인 관련 박물관 관계자들이 600만명의 생명을 앗아간 인종청소와 2차 대전의 역사를 젊은 세대에게 새로운 방법으로 좀더 널리 알리기 위해 애쓴 결과다. 이것은 최근 유럽과 미국에서 증가하고 있는 반 유대인 정서와 무관하지 않다.
워싱턴에 있는 미국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뮤지엄의 사라 J. 블룸필드 관장은 “해마다 50여만명의 학생들이 방문하지만 이들이 관심을 갖도록 하는 일은 갈수록 어렵다”고 말한다. “청소년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역사적인 사실에 덧붙여 개인적인 이야기와 아이디어를 심어주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는 그는 젊은이들에게는 테크놀러지도 중요하기 때문에 이를 효과적으로 이용하려는 노력도 병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역사적 진실을 보존하고 제시하는 박물관들은 또한 홀로코스트 부정자들 및 수정론자들과도 투쟁하고 있다. 홀로코스트를 체험한 사람들이 사라져가고 있는 상황에서 갈수록 인터넷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이들의 주장은 가짜 뉴스처럼 대중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미국 최대의 유대인 단체인 반명예훼손연맹(Anti-Defamation League)에 따르면 미국 내에서 유대인 묘지 훼손이 심각하게 늘어났다. 또 이들 사무실을 포함해 전국의 유대인 커뮤니티 센터, 학교, 회당들에는 벽에 나치 문양의 낙서가 등장했고, 폭파 위협만 150여건에 달할 정도로 증오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유럽도 상황이 지난 10년 동안 프랑스의 유대인 학교들과 코셔 상점들에 대한 공격이 늘어났는데 이는 독일, 영국 등 기타 국가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유럽연합 기본권청(European Union Agency for Fundamental Rights)의 2016년 보고서에 따르면 유대인의 76%는 거주 국가에서 지난 5년 동안 반유대인 정서가 증가했다고 보고 있다.
한편 유대인 역사를 널리 알리는 일에 집중하고 있는 유대인 뮤지엄 베를린(Jewish Museum Berlin)의 프로그램 디렉터 레온타인 메이여 반 멘쉬는 2016년 방문객 조사에서 “사람들이 홀로코스트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 뮤지엄은 1,800만유로(1,920만달러)를 들여 2019년까지 영구 전시관을 새로 디자인할 계획이다. 새로운 전시관은 나치가 부상해 독일의 권력을 잡게 된 개요와 독일 민족사회주의에 대응하는 유대인의 관점을 좀더 더 잘 보여주게 된다.
안네 프랑크 하우스 역시 확장 계획을 세우고 있다. 작고 비좁은 카날 하우스의 다락방과 여기에 붙어있는 뮤지엄을 보려고 찾아오는 방문객들이 언제나 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달 초 발표된 계획에 따르면 입구와 교육시설을 20% 정도 확장하고, 엔트리 홀을 새로 디자인하며 전시 내용도 더욱 보강하는데 약 1,000만 유로(1,070만달러)가 소요될 예정이다. 공사 기간 중 전시는 계속 오픈된다.
벌써 1단계 개축 프로젝트가 시작됐는데 우선 뮤지엄 투어 첫머리에 방문객들이 볼 수 있도록 개요 동영상을 설치한 것이다. 여기에서는 기본적인 설명이 강조된다. 안네 프랭크는 독일에서 태어났으며, 그녀가 4세때 민족사회당 선거가 있은 후 온 가족이 암스테르담으로 도피한 사실을 들려준다. 내레이터는 이후 독일은 반 유대주의 독재국가가 되었으며 이에 반대하는 사람과 유대인들은 목숨이 위험하거나 제도적으로 박해를 받게 됐다는 것, 그리고 당시의 나치 우두머리가 아돌프 히틀러였다는 것을 이야기해준다.
그 다음 전시실에서는 1941년 암스테르담을 점령한 나치가 반유대법을 제정하고 전보다 더 심한 박해가 잇달았던 사실을 전시한다. 예를 들어 41년까지 공립 몬테소리 학교에 다녔던 안네 프랑크는 나치 점령이후 유대인 전용 학교로 옮겨야 했는데 그 시절의 사진들이 여기 걸려있다.
개축 공사 2단계에서는 안네 프랑크의 스토리에 상당히 치중할 예정이다. 1923년부터 1940년까지의 유럽의 역사적 배경과 함께 도피하기 전까지의 그의 삶을 보여준다. 이 프로젝트를 관장하는 톰 브링크 부장은 “안네 프랑크는 희망과 영감의 소녀처럼 미화된 감이 있지만 사실상 굉장히 비극적인 이야기”라고 말하고 “우리는 그의 스토리를 개인적 경험뿐만 아니라 당시의 사회상에 대한 정보를 함께 조명함으로써 좀 더 균형 있는 시각에서 보여주려 한다”고 설명했다.
LA에 있는 관용박물관(Museum of Tolerance)의 리베 게프트 관장 역시 “안네 프랑크의 스토리는 많은 부분이 왜곡되고 로맨틱한 이야기처럼 변질됐다”고 지적하고, 그의 생애와 일기를 역사적인 맥락에서 조명하는 일이 젊은이들의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프랑크의 가족이 숨어있던 카날 하우스는 전쟁이 끝난 후 철거될 뻔했으나 가족 중 유일한 생존자인 아버지 오토 프랑크와 다른 보존운동가들의 노력에 의해 헐리지 않았으며 1960년 뮤지엄으로 문을 열었다. 프랑크가 신문기사를 잘라서 붙여둔 벽와 해어진 벽지는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으며 리노베이션 중에도 전시될 예정이다. 이곳은 한 시간에 300~400명만 수용할 수 있기 때문에 언제나 긴 줄이 늘어서있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꾸불꾸불 늘어선 줄에는 온타리오의 틴에이저들 바로 뒤쪽에 미국에서 온 대학생 그룹이 기다리고 있었다. 2차 대전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이들은 안네 프랑크의 일기도 모두 읽었다고 했다. 그들은 프랑크가 보여준 낙관적인 태도가 중요한 메시지라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렇게 암울한 시기에 어떻게 그렇게 희망에 가득 찬 이야기들을 쓸 수 있었는지 놀라울 뿐이죠” 뉴욕에서 온 유대인 학생 미카엘라 골리(20)의 이야기다. 이어서 “지금 미국은 정말 암울한 시기를 맞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그는 “사람들이 선하다는 믿음과 희망을 갖기란 무척 힘든 시기”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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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The New York Tims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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