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NA 연구로 본 기원
▶ 대륙 붙어있던 시절 이주 다른 인류와 단절된 생활
호주 애보리진이 전통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이 전통 목관악기인 디제리두를 불고 있다.
인류가 여러 대륙으로 퍼져나간 기원을 알아보는 것은 무척 흥미롭다. 그렇다면 북반구의 유라시아 대륙이나 아메리카 대륙과 단절돼 있는 남반구 오세아니아 대륙의 오스트레일리아에는 언제부터 어떤 인종이 들어가 살기 시작했으며, 어떻게 전 대륙으로 퍼져나간 것일까?
호주인의 기원에 대한 해답은 원주민의 DNA에 저장돼 있다. 최근 발표된 111명의 호주 원주민에 대한 유전자 연구는 어떤 면에서 흥미롭고 예기치 못했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 연구에 따르면 호주에서 발견되는 인골과 고고학적 유물은 거의 5만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그 이전에는 분명히 인간이 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호주에 살고 있는 모든 원주민은 5만년 전 이곳에 도착한 단일 설립개체군의 후손들이다. 그들은 수백년에 걸쳐 해안을 따라 대륙 전체를 휘젓고 다녔다. 그리고 수만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들 원주민들은 거의 다른 인종과 섞이지 않고 고립된 채 단일 혈통을 유지하고 있다.
새로운 연구에서 사용된 DNA는 1926년부터 1963년 사이에 실행된 일련의 탐험에서 수집한 원주민들의 머리카락에서 나온 것이다. 당시 아델라이드 대학의 인류학 조사국은 연구원들을 호주 전역에 살고 있는 원주민 공동체로 보내 그들의 언어, 의식, 예술, 우주관, 계보 등에 관해 방대한 양의 정보를 수집하도록 했다.
연구 대상자들의 나이와 자세한 기록이 남아있어 과학자들은 이 머리카락 샘플을 통해 식민지 이전 시대 호주인들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아델라이드 대학의 고대 DNA 연구학 분야 선구자인 알란 쿠퍼는 이 머리카락 콜렉션이 아마도 호주인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가장 좋은 도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쿠퍼 박사와 동료들은 우선 이 머리카락 샘플을 제공한 사람들의 후손들을 찾아가 그들에게 새로운 검사를 해도 좋은지 동의를 구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원주민 커뮤니티로 들어간 그들은 여러날 동안 그 가족들을 찾아다니며 연구의 의도를 설명했고, 그 결과 단 한 가족을 제외하고는 찾아간 모든 가족들로부터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는 허락을 얻어냈다.
오늘날 호주 원주민들은 과거 선조들이 살던 곳에서 살고 있지 않다. 1900년부터 1972년까지 약 70여년간 호주정부는 원주민개화정책의 일환으로 이들을 오랜 세월 살아온 땅으로부터 강제로 몰아내 도시로 이주시켰다. 또 10만명이나 되는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강제로 분리되어 백인 가정으로 입양됐는데 이로 인해 우울증 등 정신병력을 갖게 된 사람이 많아졌고 최근에는 호주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등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쿠퍼 박사와 동료들은 DNA 분석이 쉽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수십년 동안 머리카락 샘플은 창고에 방치돼 있었으니 유전자의 흔적은 인식이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졌을 수도 있었다.
더 나쁜 것은 머리카락 샘플들이 가위로 자른 것이란 사실이다. 한 올의 머리카락에서 유전 정보를 끄집어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모근에서 뽑아내는 것이다. 그래야 DNA가 풍부한 뿌리째 채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확실성을 안고 과학자들은 세포핵 바깥에 위치한, 모계로부터만 계승되는 미토콘드리아 DNA를 찾아냄으로써 성공의 확률을 높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마침내 학자들은 모든 머리카락 샘플에서 모든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들을 꿰어 맞추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그 결과 학자들은 원주민들의 DNA 서열과 세상의 다른 인종의 DNA 서열을 비교함으로써 이들이 단일 인간계통에 속해있음을 알게 되었다. 즉 모든 호주 원주민은 이 대륙으로 이주한 단일 이주민의 후손들인 것이다.
미토콘드리아 DNA는 마치 분자시계처럼 째깍거리면서 꽤나 정기적으로 서서히 돌연변이를 축적한다. 학자들은 헤어 샘플에서 찾아낸 돌연변이들을 모두 합침으로써 머리카락의 주인들이 모두 5만년 전에 살았던 공통된 조상의 후손들임을 추측해냈다. 이 연구 결과는 호주의 가장 오래된 고고학 유적지들의 시기와 아주 적절하게 일치하는 것이었다.
미토콘드리아 계보는 또한 이 대륙에서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이 퍼져나갔는지에 대한 단서도 제공해주었다. 해수면이 아주 낮았던 5만년 전에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가 하나의 대륙으로 연결돼 있었다. 동남아시아에서 나온 인간들이 이 광활한 대륙으로 들어섰고, 일부는 현재의 뉴기니에, 또 다른 일부는 더 남쪽으로 내려와 호주에 정착했다. 4만9,000년 전 그들은 해안선을 따라 내려와 호주 남부에 도달했고, 이주가 끝났을 즈음부터 현재 원주민들의 선조들은 이곳에 둥지를 틀고 수만년을 살아왔다.
이들의 미토콘드리아 DNA는 다른 인구와 섞이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사실은 학자들을 놀라게 했는데, 모든 시대와 모든 지역에서 인구가 다양하게 섞이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다른 대륙에서의 유전자 검사에 나타난 이주 패턴을 보면, 예를 들어 유럽에서는 몇천년에 한번씩 새로운 인구가 휩쓸고 지나가면서 기존 사회의 인구와 혼합되어왔다.
닥터 쿠퍼는 이 현상을 농경의 차이로 설명하고 있다.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과는 달리 호주는 수천년전에 농경의 확산을 겪지 않았다. “값싸게 탄수화물을 섭취할 수 없는 사회에서는 인구가 증가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다른 대륙에서는 인구가 증가했으나 농작이 실패하는 재난도 감수해야 했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 이에 따른 대응책은 한가지 밖에 없다. 대량 이주가 그것이다.
그러나 호주에서 원주민들은 농산물에 의존하지 않고 여러 지역에서 노마드의 삶을 살았다. 대륙을 횡단하여 이주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호주 국립대학의 고고학자 피터 벨우드는 새로운 연구 데이터들이 고고학적 발굴 내용과 상당히 부합한다고 인정했으나 원주민들이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움직이지 않고 정주해있었는지에 관해서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는 많은 원주민 문화에서 상당히 먼 거리에 사는 원주민 부족들 간에도 도구와 언어가 공유되는 점을 지적하고 개개인이 이주하지 않는다면 언어와 도구가 어떻게 이동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다른 학자들도 미토콘드리아 DNA가 호주 원주인 역사의 중요한 상세정보를 놓치고 있을지 모를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한편 닥터 쿠퍼와 연구진은 오래된 머리카락 샘플에 대해 아직도 회의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모발 줄기에 붙어있는 피부 세포는 DNA 핵에 관한 풍부한 정보를 담고 있는데 샘플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시 원주민 커뮤니티로 돌아가 보다 정밀한 검사의 허락을 구하고 훨씬 더 자세한 정보를 얻어냄으로써 이 샘플들의 전체 게놈을 찾아내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지구에서 가장 고립된 원주민의 하나인 호주 애보리진에 대한 연구는 계속되고 있다.
1928년 오스트레일리아 북부 지역에 살고 있던 원주민 여성들.
<
한국일보-The New York Tims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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