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자 함께 수용하는 다인실 공기 통한 감염 위험 높아 소음 커 잠 못 자 회복 방해 독실로 옮기면 퇴원 빨라져
▶ 간호사 스테이션 분산시키면 낙상이나 부상 가능성 줄어 조명·바닥재·커튼 칸막이 문제 햇볕·풍경화도 치료율 높여
병원 건축물의 설계와 디자인, 그 안에서 일하는 방식을 크게 바꾸면 환자들이 더 빨리 치유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병원은 어디나 비슷하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다른 나라들에서도 건물의 외관이나 내부 디자인, 병실 모습까지 거의 동일한 풍경을 갖고 있다. 콘크리트 빌딩, 긴 복도, 방들마다 드리워 있는 커튼, 백색의 형광등 조명, 가끔씩 병동 전체에 울려 퍼지는 호출 메시지, 중환자실의 살벌한 분위기… 거의 모든 종합병원들에서 동일하게 경험할 수 있는 풍경이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건축가와 의학 전문가들의 의견을 인용, 병원의 구조와 분위기만 조금 달라져도 병원내 감염을 크게 줄일 수 있으며 환자들의 치유 속도가 훨씬 빨라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병원은 가장 건축 비용이 많이 드는 건축물 그룹에 속한다. 복잡한 기반시설, 테크놀러지, 수많은 규제와 안전 코드가 적용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비싼 건축물들을 너무나 잘 못 짓고 있다는 수많은 증거가 계속 나오고 있다. 단지 미적으로 보기 싫거나 기능적으로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과 같은 디자인 결함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고 의학계와 건축계 전문가들은 이야기 한다. 병을 치료하러 간 병원에서 더 많은 병에 감염되고 죽음에까지 이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은 이제 더 이상 비밀도 아니다. 중환자실의 경우 환자 간 감염률이 30%나 된다고 한다.
학자들은 환자들을 한 곳에 수용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이야기 한다. 일인용 개인 병실에 수용할 경우 공기를 통한 전염과 오염된 표면 접촉으로 생기는 감염 위험성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다인실에서 독실로 옮겼을 때 박테리아 감염이 절반으로 줄었고, 환자의 입원 기간은 10%나 단축됐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감염이 줄어듦으로 해서 절약된 비용은 독실 사용으로 인해 올라간 병원비용을 상쇄하고도 남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청소하기 쉬운 표면재, 적절한 위치에 설치된 싱크, 고성능의 공기정화 장치 등은 병원내 감염률을 많이 감소시키는 것으로 조사됐다.
병원 내에서 넘어지거나 쓰러지는 것 역시 큰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환자가 낙상으로 부상을 입게 되면 입원기간도 길어지고 비용도 훨씬 증가한다. 환자들은 병원이라는 낯선 공간을 돌아다니다가 다치는 경우가 많다. 몸이 아프기도 하고 약물의 효과 때문에 어지러울 수도 있으니 가장 넘어지기 쉬운 집단인 것이다.
그 원인으로 또 중요한 것이 건물 디자인이다. 조명이 충분하지 않고, 바닥은 미끄럽고, 변기는 너무 높거나 너무 낮다. 병원 스태프들이 얼마나 환자에게 빨리 갈 수 있느냐 하는 것도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간호사 스테이션이 한군데 있지 않고 분산돼 있으면 병실과 가깝기 때문에 환자의 특별한 움직임이 시야에 들어올 수 있어 낙상과 부상의 위험이 크게 줄어든다는 것이다.
환자가 병원에서 겪는 경험의 질도 회복에 영향을 미친다. 얼마나 잘 쉬고, 적절한 대우를 받는가에 따라 회복기간이 단축될 수 있는 것이다. 특별히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관한 문제도 그중 하나다. 이에 관해선 히파(Hipaa)라고 불리는 연방법도 제정돼 있지만 사실 병원에서 각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보장해주기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의사들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환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금지돼 있다. 그러나 2인실이나 다인실에서 커튼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다른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는 상황에서 의사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환자의 성생활이나 약물사용 전력 같은 내용을 이야기하곤 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거의 모든 의사들이 이런 방식으로 환자의 비밀유지 조항을 깨뜨리고 있으며, 이 때문에 커튼 칸막이가 처진 병실에 있는 환자들은 자신의 병력이나 과거를 숨기거나 의사의 검진조차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소음에 관한 것이다. 대부분의 종합병원 내부에서 들리는 평균 소음 레벨은 권장 가이드라인의 수준보다 훨씬 높다. 이로 인해 환자들이 잠들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2인실이라면 한 사람의 뒤척임으로 인해 옆에 있는 환자까지도 밤새 잠 못 이루고 고통 받을 수 있다. 수면의 질이 치유와 회복에 얼마나 중요한지는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런 문제는 환자들에게 귀마개를 제공한다든지, 병실에 방음 마감재를 사용하여 소리를 흡수한다거나, 병원 직원들이 대화할 때 소리를 낮추도록 하는 지침을 만들고, 또한 불필요한 호출이나 알람을 줄임으로써 크게 개선할 수 있다. 병원 건축물에 관한 가장 흥미로운 연구는 이 분야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로저 울릭이 내놓은 것이다. 스웨덴의 찰머스 대학 건축과 교수인 그는 환자가 자연을 좀더 많이 접할수록 회복 속도가 빠르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와 정 반대여서 환자들은 자연광이 거의 들어오지 않고, 자연을 전혀 볼 수 없는 구조의 콘크리트 건물에서 침침한 조명 아래 끙끙 앓고 누워있다. 닥터 울릭의 초기 연구는 담낭수술을 받고 회복기에 있는 환자들이 어떤 병실에 배치됐을 때 어떤 효과를 보였는가를 조사한 것이다.
이 조사에 따르면 창밖으로 나무가 보이는 병실에 있었던 환자들은 벽돌로 된 벽만을 볼 수 있었던 환자들에 비해 입원 기간도 짧았고 진통제를 덜 먹었다. 이 연구는 이후 병원 디자인에 관해 의제가 나올 때마다 가장 자주 거론되는 내용이 되었다.
닥터 울릭은 이 연구의 아이디어를 자신이 아팠던 경험에서 얻었다고 한다. 틴에이저 시절 큰 병에 걸려 많이 아팠던 그는 집에서 오랫동안 침대에 누워있어야만 했는데, 창밖에 있는 나무들을 바라보며 마음의 안정을 찾고 침착한 상태를 유지하곤 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비슷한 연구는 각기 다른 방향의 병실에 입원했던 조울증 환자들에 관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아침에 햇볕이 들어오는 동향의 방에 입원했던 환자들은 서향 병실에 입원했던 환자들보다 거의 4일이나 일찍 퇴원했다.
창밖의 풍경만이 아니라 자연을 담은 이미지만으로도 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이야기한다. 정신병원에서의 연구 결과 풍경 사진이 걸려 있는 병원에 있었던 환자들이 벽에 추상화가 있거나 아무 것도 걸려있지 않던 병원의 환자들보다 불안과 동요에 따른 약물 처방이 훨씬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자연에 관한 비디오를 보는 동안 사람들은 통증을 더 잘 견디고 긍정적인 감정을 갖게 되며 심박수와 혈압이 낮은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연구진들은 병원을 설계하여 건축하고 그 안에서 일을 하는 방식을 크게 바꾸는 일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또한 적절한 시설의 활용으로 환자들이 스트레스와 감염 없이 충분히 휴식하며 치유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병원은 위험할 수도, 불쾌할 수도 있는 공간입니다. 하지만 환자들이 더 안전하고 빨리 치유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요. 좋은 메디컬 케어는 실증적인 병원 디자인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라고 닥터 울릭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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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The New York Tims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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