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티안’이란 이름을 가진 1715년산 스트라디바리 바이올린의 앞판과 뒤판.
➊ 단풍나무 화학처리 목재에 구리·칼슘 등 미네랄 주입
➋ 헤미셀룰로스 물질 분해 습기 적어 찬란한 음색
➌ 목재 섬유조직들의 분리 악기의 훌륭한 표현력 더해줘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Antonio Stradivari)와 주세페 과르네리(Giuseppe Guarneri)는 바이올린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이름이다.
수백년이 지나도 변함없이 최고의 소리를 내는 명기의 제작자들, 두 사람의 이름은 바이올리니스트나 클래식 음악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익히 들어봤을 것이다. 지난 300여년 동안 최고의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스트라디바리나 과르네리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에 이탈리아 북부의 크레모나(Cremona)라는 작은 마을에 살았던 두 사람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현악기를 만들어낸 거장들로 불멸의 이름을 남겼다. 그때 이후 현악기 제조자들은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네리의 공예술을 모방하기 위해 수없이 노력했다. 같은 나무를 사용하고 모양과 구조적 방법을 그대로 따라해 보았지만 어느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렇게 많은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 악기가 내는 소리를 재연하지 못하는가 하는 문제는 언제나 미스터리로 남아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발표된 새로운 연구가 어쩌면 그 비밀을 밝혀줄 단서를 제공하는지도 모른다.
미국국립과학원 논문집(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그 소리의 비밀은 나무에 들어있는 ‘미네랄 처리’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수세기 동안의 숙성과 연주로 인한 변화를 거치며 악기에 독특한 음색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연구의 저자인 타이 환 칭 대만국립대 화학과 교수는 “스트라디바리에 사용된 단풍나무와 거의 똑같은 현대의 고품질 단풍나무를 비교해보면 두 목재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대만 치메이 박물관(Chimei Museum)과 공동으로 실시한 연구에서 닥터 타이의 연구팀은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 2대와 첼로 2대, 과르네리 바이올린 1대의 톱밥을 분석해 몇가지 중요한 특징을 발견해냈다.
첫째로 이 악기들 가운데 스트라디바리 바이올린을 만든 단풍나무에는 알루미늄, 칼슘, 구리 등의 미네랄을 주입하는 화학 처리가 돼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방법은 그 후대의 바이올린 제작자들에게 전승되지 않았다.
이 연구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목재의 나이테를 연구하는 테네시 대학의 지리학 교수 헨리 그리시노 메이어는 “현대의 현악기 제작자들은 이런 처리를 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나무에 미네랄 성분을 주입한 것이 악기로서 뛰어난 소리를 내도록 한 것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닥터 타이는 “크레모나의 현악기 제조 장인들이 화학 처리의 효과를 알고 한 것인지, 우연한 결과였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하고 ”아마도 목재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곰팡이나 해충을 쫓기 위해 나무를 미네랄 성분에 담가두었다가 판매한 것으로 보이며, 시간이 지나면서 미네랄과 염분의 화학적 결합으로 나무가 굳어졌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또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네리 악기들에 사용된 목재의 3분의 1에 헤미셀룰로스(hemicellulose)라 불리는 물질이 분해돼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헤미셀룰로스는 자연적으로 습기를 빨아들이는 성질이 있는데 이 물질이 분해된 탓에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은 현대 악기보다 25% 정도 습기가 적다.
바이올린 제작자이자 텍사스 A&M 대학 생화학과 명예교수인 조셉 나기바리는 “이것은 근본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요인으로, 습기가 적으면 더 훌륭한 소리가 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다른 바이올린들과 견주어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네리의 악기들은 깊고 어두운 베이스 톤과 찬란한 음색, 청아하고 명료한 고주파 음질을 내기 때문에 멀리서도 그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닥터 타이의 연구팀은 또한 스트라디바리의 바이올린에서 첼로에는 없는 한 성분을 발견했다. 바이올린에 사용된 나무의 톱밥을 가열했을 때 유난히 활발한 산화가 이루어졌는데 그 의미는 목재의 섬유조직들 사이가 분리돼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스트라디바리가 만든 바이올린의 목 부분.
오랜 세월 연주를 통한 진동의 결과일 수도 있는 이 섬유조직의 분리가 바로 악기에 훌륭한 표현력을 더해줄 수 있다고 말한 닥터 타이는 “최고 수준의 바이올리니스트들은 이렇게 오래된 악기들이 좀더 자유롭게 울리면서 폭넓은 감정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악기들을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닥터 타이가 크레모나의 바이올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0년전 칼텍(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신경과학을 전공하던 학생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한 친구를 통해 1980년대에 닥터 나기바리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네리는 악기를 만들 때 화학 처리된 나무를 사용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06년 겨울에 닥터 타이는 텍사스에 있는 닥터 나기바리를 찾아갔고 그 유명한 현악기들의 미스터리에 매혹됐다. 그는 이후 수년 동안 크레모나에서 만들어진 바이올린들의 연구를 검토했다.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네리 현악기들의 비밀에 관해서는 수많은 가설들이 나타나고 사라졌다고 그는 말했다. 한때 사람들은 당시의 현악기 제작자들이 지금은 사멸된 나무들을 재료로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 나무들은 아직도 살아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2003년에 닥터 그리시노 메이어와 연구팀은 “스트라디바리의 비밀은 그가 살았던 시기가 극도로 추운 소빙하기였고, 그 시기에 자란 나무들을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추운 시기에 자란 나무가 어떻게 더 좋은 악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정확하게 밝혀내지 못했다.
또 다른 이론으로는 스트라디바리가 멋진 소리를 내는 성분의 광택제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화학 성분을 분석한 결과 입증되지 않았다.
닥터 타이는 크레모나 현악기들을 만든 목재의 비밀을 해독함으로써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네리의 음색을 보존할 수 있는 악기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사실 지금 닥터 타이 연구소는 알츠하이머 병의 신경화학 연구에 집중하고 있지만, 그는 아직도 하이파이 오디오와 클래식 음악 애호가로서 이 방면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타이 교수는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네리 악기들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성분의 분해가 이루어질 것이고, 앞으로 100년 안에 많은 악기가 그들의 소리를 잃어갈 것”이라면서 “명기라고 해도 영원히 존속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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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The New York Times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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