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많으면 실수가 많은 법. 일상 생활을 하면서 해도 되는 말이 있고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다. 무심코 내뱉은 말이 상대방에게 큰 상처가 돼 좋았던 관계가 일순간에 원수지간이 되는 일이 많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한 말이지만 상대방의 상황을 이해하지 않을 때 실수가 발생한다. 좋은 의도지만 귀에 거슬리는 말로 들리 쉬울 때가 바로 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과 대화를 나눌 때다. 특히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는 암환자를 위로할 때는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위로한다고 건넨 말이 오히려 상처로 들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느 암 환자에게 있었던 일이다. 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시작한 지 1년이 지나 위로 겸 축하를 위해 가족과 친척이 모인 자리였다. 가까운 친척이 다가와 ‘좀 어때?’라고 물었다. 환자는 일상적인 질문에 ‘잘 지내고 있어’라고 대답했다. 여기까지는 대화 진행이 좋았지만 이후 사족이 문제였다. 친척은 다시 환자에게 ‘아니 정말 어떻냐고?’라고 재차 물어본 것이다.
다행히 암 환자는 지난 1년간 병세 악화 없이 치료를 잘 받고 있었지만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대화 분위기가 어떻게 변했을 지 짐작할 수 있다.
환자의 병세가 더 심해져 지난 1년이 그야말로 악몽의 시간이었다면 두번째 질문에 그간의 과정을 설명이라도 해야하는 걸까? 친척의 질문에 안좋은 의도가 없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환자에게는 상처가 아닐 수가 없다.
암 환자의 가족과 친구들은 암 진단 사실을 알고 나면 전과 다른 언행을 하는 경우가 많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거나 아예 암 환자와의 대화를 꺼리기도 하는데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암 환자에게는 큰 상처로 다가오기 쉽다. 스탠 골드버그 샌프란시스코 주립대 ‘의사 소통 장애’ 분야 명예 교수는 57세의 나이에 악성 전립선암을 선고 받은 뒤 자신의 경험과 다른 암 환자들을 상담하면서 느낀 점을 책으로 써냈다. 골드버그 교수에 따르면 암 환자들은 주변에서 마치 자신이 ‘치어리더’ 역할을 해야하는 것처럼 느끼는 사람들을 너무 자주 만나게 된다고 한다. ‘걱정 하지마’ ‘괜찮아 질거야’ ‘치료 방법이 있을거야’ ‘완치 되도록 함께 이겨내자’ 등 얼핏 들으면 힘이 되는 말들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아무생각없이 건네는 긍적적인 위로의 말들은 단기적인 효과는 있을 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역효과를 낼 때가 많다. 위로의 말대로 암 상태가 호전되면 다행이지만 증세가 악화되면 위로의 말들이 암 환자들에게 오히려 죄책감과 좌절감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기 쉽다. 골드 버그 교수는 “주변 사람들의 ‘거짓 낙관’이 암 환자들에게 거짓 희망을 심어줘 병세를 낮게 평가하게 만든다”며 “위로의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암 환자에게 진정한 도움이 무엇인지를 몰라서 실수하게 되는 것”이라고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설명했다.
골드버그 교수가 자신의 경험과 암 환자 상담을 통해서 알게된 암 환자에게 가장 절실한 도움은 ‘말’이 아닌 ‘행동’이다. 도움이 되는 행동 하나가 위로의 말 10번을 대신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고통받고 있는 암 환자에게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 지 알려줘’라고 영혼없는 위로의 말보다 ‘내가 이번주에 너희 가족 저녁 식사를 대접해도 될까? 어떤 날이 좋을 지만 알려줘’라는 말에 암 환자가 치유받을 수 있다. 비슷한 예로, 암 환자를 대신해 장봐주기, 암 환자 자녀 돌봐주기, 암 환자 애완견과 산책하기, 암 환자 병원 방문 동행 하기 등 암 환자의 삶의 일부분이 되어 주는 것이 훨씬 더 큰 도움이다. 이같은 도움은 1회성에 그치면 안되고 정기적으로 실시할 때 암 환자의 빠른 치유를 돕는다.
골드버그 교수는 암 환자들과 대화할 때 질문형 대화를 피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만약 질문을 하려면 ‘예, 아니오’식의 즉답이 요구되는 질문보다는 환자가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질문이 좋다. 다음은 암 환자들과 대화할 때 피해야 할 대화 유형이다. ▶환자의 신체 변화와 관련된 대화는 금물이다. 예를 들어 ‘날씬 해져서 보기 좋네’라는 식의 말에 환자가 상처 받기 쉽다, ▶같은 유형의 암을 겪고 있는 다른 환자와 비교하는 식의 대화를 피한다. 다른 환자가 치유되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더 심각한 암에 걸리지 않은 것이 다행이야’라는 식의 대화, ▶‘네 고통이 어떨지 알 것 같아’라는 말보다는 ‘고통이 얼마나 큰지 이야기 해줄 수 있니’라는 말이 낫다, ▶증명되지 않은 치료법이나 의사를 소개하는 행위도 자제한다, ▶환자의 평소 잘못된 생활습관이 암 원인이라는 식의 대화는 절대 금물이다, ▶‘네가 고통받는 모습을 보니 나도 마음이 아프다’라는 식의 말은 환자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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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 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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