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자게이트’휩쓸린 남성 총기난사하다 경찰에 체포 현실로 닥친 가짜뉴스 재앙
▶ 진위 여부 무시 익명성 근거 미 대선 계기로 세력 확산 기사 보다 SNS 공유 더 많아, 제작자 신원 파악 어렵고 흑색선전·정책 전환 목적 세계 각국 정치적 피해 우려
지난 3일 워싱턴 DC 중심가에서북서쪽으로 6㎞ 가량 떨어진 피자가게 ‘코메트 핑퐁’안으로 총을 든 한남성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손님이 뜸한 이곳에서 남성은 다짜고짜총을 난사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에게 붙잡혔다.
다행히 인명피해가 나지 않았지만미국 사회는 “피자게이트를 직접 조사하기 위해 나섰다”는 용의자 에드가 웰치(28)의 범행 동기에 발칵 뒤집혔다. 웰치가 언급한 피자게이트는 미국 대선 과정에서 널리 확산된 대표적인 가짜뉴스(fake news)중 하나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가 워싱턴 인근 피자가게 코메트 핑퐁 지하실에서 아동 성매매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는 황당한 내용이다.
각종 설과 편향된 주장만으로 존재한다고 믿었던 가짜뉴스가 실제현실에서 ‘재앙’을 일으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여실히 증명한 것이다.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으로 임명된마이클 플린의 아들은 ‘피자게이트’를 확산시킨 사실이 드러나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 인수위원회에서 해고되기도 했다. 이래저래 가짜뉴스가 진짜 세상을 농락하고 있는 것이다.
#진짜뉴스보다 파급력이 뛰어난 가짜뉴스
가짜뉴스들은 지난달 치러진 미국대선을 계기로 크게 확산된 것으로 확인됐다. 온라인매체 버즈피드에 따르면 지난 8월부터 대선일인 11월 8일 사이 가장 많이 언급된 상위 20건의 진짜 뉴스에 대해 페이스북에서 이뤄진 공유ㆍ의견표명ㆍ댓글달기등은 736만7,000회에 달했다. 동일한 기준의 ‘피자게이트’와 같은 가짜뉴스에 대한 공유 등은 무려 870만 1,000회에 이르렀다. 온라인에선 가짜뉴스가 실제 뉴스보다 훨씬 큰 파급력을 지니고 있다는 얘기이다.
이처럼 가짜뉴스는 페이스북을 비롯한 소셜네트웍서비스(SNS)를 타고 대거 유통됐다. 뉴스의 진위를 밝힐 필요없는 SNS의 익명성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 도널드 트럼프 후보 지지’ ,‘ 힐러리 클린턴, 이슬람국가(IS)에 무기 판매’ ,‘ 클린턴 재단, 1억3,700만 달러어치 불법무기 구입’등의 뉴스가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미국 대선기간 동안 유권자들이 근거가 부족한 이들 가짜뉴스에 쉽게 현혹됐다고 분석한다. 브랜든 나이핸다트머스대 교수는 “미 대선에서 가짜뉴스들이 유권자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들은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독일과 러시아는 올해 초 가짜뉴스 하나 때문에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갔다. 베를린에 사는 러시아 태생의 소녀가 등굣길에 납치됐으며, 무슬림 난민들로부터 강간당했다는 SNS 상의 이야기가 발단이었다.
가짜뉴스로 재생산된 이 이야기는 그러나 수사에 나선 독일 경찰에 의해 소녀의 거짓말로 확인됐다. 독일내 러시아인들이 크게 반발했고, 러시아가 “독일이 논란거리를 카펫 밑으로 쓸어 넣어버렸다”고 비난하고 나서면서 양국 외교장관이 설전을 벌기도 했다.
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인공수정을 통해 태어난 아돌프 히틀러의 딸이며, 이 같은 사실이 슈타지(동독 비밀경찰) 기밀문서에서 드러났다는 것도 최근 유럽을 들썩였던 대표적인 가짜뉴스다.
#정적 흠집내고 정책 방향 바꾸려는 가짜뉴스
추정은 할 수 있지만 누가 이런 가짜뉴스를 만드는지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목적은 대체로 비슷하다. 흑색선전을 통해 정적에게 흠을 내 무너뜨리거나, 정책의 방향을 틀기 위한 것이다.
메르켈 총리를 깎아내린 가짜뉴스는 지난해 국가부도 위기를 맞았던 그리스가 구제금융 협상 테이블에서 시종일관 냉정한 자세를 유지하던 독일을 공격하기 위해 유포한 것이었고,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가짜뉴스는 도널드 트럼프 진영의 선거 운동이었다는 분석이다. 또 난민에 의한납치 강간의 경우 러시아가 허위 정보를 흘려 난민정책에 대한 여론이나 정책 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것으로 독일은 보고 있다.
가짜뉴스가 SNS를 중심으로 확산되면서 세계 각국도 바짝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 대선에서처럼 자신들의 정치도 농락당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스 게오르그 마센 독일 정보보호청장은 최근 로이터와의인터뷰에서 “(가짜뉴스를 통해) 러시아가 여론을 조작해 내년 독일 총선에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4선 연임 도전을 선언한 메르켈 총리도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과거와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서 (정치적) 논쟁이 일어난다”며 온라인상의 가짜뉴스에 대한 우려와 단속 의지를 밝혀놓고 있지만, 사적 영역인 SNS를 타고 확산하는 가짜뉴스에 대응할 뾰족한 수단은 없는 실정이다.
이처럼 가짜뉴스로 인한 논란이 확대되자 프란치스코 교황도 비판에 가세했다. 교황은 지난 7일자 가톨릭주간지 ‘테르티오’와의 인터뷰에서 “일부 언론이 스캔들과 추악한 가십만 좇는 ‘대변기호증’ (배변에 병적흥미를 갖는 것)에 빠져있다”며“ 미디어 종사자가 똥(가짜뉴스)을 먹는 병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일갈했다.
페이스북과 구글은 가짜뉴스의 유통을 막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페이스북은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가짜뉴스를 판별하는 서비스 도입을 검토하고 있으며, 구글은 정확한 뉴스 검색을 위한 알고리즘 개선과 함께 광고 플랫폼에 가짜뉴스 사이트가 노출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개선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유통구조 개선으로 해결될문제가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가짜뉴스 생산자가 없어질 리 없고, 자신이 읽은 가짜뉴스를 공유하기 전에 검증할 능력을 가진 사용자가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프랑스 르 몽드 팩트체크 담당 사뮈엘로랑은 “내년 프랑스 대선에서도 이같은 식의 가짜뉴스가 판을 칠 것이분명하다”며 “진실을 가로막는 가짜를 가려낼 방법은 그렇게 많지 않다”고 말했다.
<가짜뉴스 걸러내는 세 가지 방법… URLㆍ소개글ㆍ취재원>
가짜뉴스는 독자들의 ‘무신경’을 먹고 자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글과 페이스북이 가짜뉴스를 차단하기 위해 시스템 개선에 힘을 기울이고 있지만 뉴스 소비자들이 문제의식을 갖고 뉴스에 접근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의미이다. 공영 라디오 NPR은 최근 스스로 가짜뉴스를 감별해내는 방법들을 소개했다.
-도메인 주소(URL)에 시선을 줘라
정부기관의 허가 등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설립된 언론기관이나 인터넷 미디어의 홈페이지는 고유의 도메인을 갖고 있다. 하지만 ‘0000.com.co’식으로 끝나는 사이트라면
눈을 부릅뜨고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익숙한 뉴스기업 홈페이지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완전히 다른 사이트다‘. abcnews.com’에는 진짜 뉴스가, ‘abcnews.com.co’에는 가짜기사가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회사소개(About Us)를 놓치지 마라
사이트 주소로 진위를 가리기 힘들다면 홈페이지 회사소개란이 도움이 된다. 이곳에는 경영진을 포함한 회사 조직에 대한 소개와 사업 목표가 제시되어 있다. 회사 규모가 크다면 연관 매체들에 대한 정보도 살펴 볼 수 있다. 회사소개가 그럴듯한 미디어기업이 가짜뉴스를 대서특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NPR은“ 언론사의 자매 기업들이 어떤 사업을 하는 지를 보면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곳인지 눈치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사에 실린 취재원을 살펴라
기사 속에서 이야기하는 취재원을 잘 보면 가짜뉴스인지 진짜뉴스인지 대체로 알 수 있다. 대부분의 미디어 종사자는 복수의 취재원을 확보해 기사를 작성한다. 하지만 가짜뉴스는 근거없이 흥미만 자극하는 이슈를 다루기 때문에 여러 취재원의 목소리를 담지 않는다. 편향된 시각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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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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