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정부, 북 체제 붕괴보다 스스로 개방 원해”
위키리크스, 미의회 대표단 노대통령과 면담내용 공개
한-미 대북정책 접근방식 차이점 보고
“노대통령, 미국의 대북 압박수단 효율성에 의문”
노무현 정권 시절 한국 정부의 북한인권 문제를 포함한 전반적인 대북정책 아래에 김정일 집권 북한 체제 유지 지원 목적이 깔려있었다는 사실이 당시 작성된 미국 외교 문건에서 확인됐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으로 최근 논란이 빚어진 한국 정부의 제62차 유엔총회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기권 행사 결정 배경을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역사기록 자료이기도 하다.<본보 2016년 10월26일자 A14면 기사>
주한 미국대사관(대사 알렉산더 버시바우)이 2006년 8월10일 워싱턴 D.C. 국무부에 보낸 ‘기밀취급’(Classified) 전보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같은 날 버시바우 대사와 함께 청와대를 방문한 미 연방하원 대표단에 한국과 미국의 대북 접근 방식 차이점을 강조하며 이 같이 밝혔다. 한국이 북한 체제 붕괴를 감당할 수 없다는 논리에서였다.
■ 북한 체제 붕괴 부담
기밀문서 폭로 전문사이트 ‘위키리크스’(wikileaks.org)에 의해 공개된 이 문건은 작성 당시 기밀취급해제 시점을 “남북통일 이후”(After Korean Unification)로 분류할 만큼 내용이 민감하게 다뤄졌다.
버시바우 대사는 “의회 대표단 하이드가 노 대통령을 만나다: 북한에 대한 접근 방식 차이”(CODEL HYDE MEETS PRESIDENT ROH: DIFFERING APPROACHES TO DPRK)라는 제목의 전보에서 헨리 하이드(공화•일리노이) 당시 하원 외교관계위원회 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의회 대표단이 2006년 8월10일 자신의 안내로 청와대를 방문해 약 1시간 동안 노 대통령과 가진 면담 내용을 종합 정리했다.
전보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다나 로라바커(공화•캘리포니아) 의원이 노 대통령에게 자신의 아버지가 한국인들의 자유를 위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고 밝힌 뒤 “한국정부가 북한과의 대화에서 인권문제를 더 강조해 자유에 대한 주의를 한층 강화시킬 수 있는가와 한국정부가 중국에 있는 탈북난민들을 (한국에) 받아들이는데 더욱더 노력할 수 있는가 여부”를 문의했다.
전보는 이에 “노 (대통령)는 인권 문제와 전반적인 대북 접근에 대해 한국의 시각은 미국의 것과 다르다”며 “한국은 한반도 평화 구축을 위해서는 북한에 정권교체가 목적이라는 의심을 가져다주지 않는 것이 절대 필요하다고 생각 한다. 이 문제에 대한 신뢰구축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전보는 노 대통령이 “북한 체제가 붕괴되면 한국이 직면하게 될 어려움은 미국의 상상을 초월하게 될 것이다. (그에 따른) 부담은 한국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설 것이다. 이에 더해 북한 붕괴는 한반도 미래를 놓고 아마도 미국과 중국과의 싸움으로 이어져 역시 한국이 관리하기 어렵게 될 것”이라며 “한국이 ‘인권’이라고 하면 북한은 ‘체제 교체’라고 듣는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 한국 정부의 탈북난민 정책
전보는 또 “노 (대통령)는 한국 정부의 탈북난민 정책에 대해 난민 신청을 들어주는 것이 (한국 정부의) 정책이다. 그러나 대량의 집단적 대이동(massive exodus)은 한국에 문제가 될 것 이라고 말했다”며 “그는 자신이 한국의 독재정권과 맞선 경험으로 확고한 인권 경력을 갖고 있다고 말한 뒤 하지만 한반도의 특수 상황은 (자신이 한국 정부에 대항했던 것과) 같은 방법으로 북한 인권 문제를 접근하기가 어렵다고 덧붙였다”고 보고했다.
전보는 이어 “노 (대통령)는 한국 정책은 몇몇 탈북자들의 인권을 향상시키는데 초점을 두는 것 보다는 북한에 있는 여럿의 삶을 천천히 개선하는 것과 북한이 개방하고 개혁을 단행하도록 설득하는 것”이라며 “(로라바커 의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우리는 북한 붕괴에 대한 위험과 위협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의원들의 이해를 부탁한다고 말하고 마무리 지었다”고 전했다.
■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
버시바우 대사의 전보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하원 대표단과의 면담 끝에 하이드 의원의 감사 표명에 이어 서로가 상냥하게 대하는 인사를 나눈 뒤 돌연 다시 북한 문제를 언급해 잠시 논쟁이 벌어졌다.
전보는 “그(노 대통령)는 이란은 실질적으로 핵무기 보유 추구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는 반면 북한은 (핵무기 보유가 아니라) 핵무기가 가져다주는 ‘수단’(leverage)을 원한 것이다”며 “미국은 만일 원한다면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없애도록 설득하기 위해 북한에 배상을 해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양측(미국과 북한)이 서로가 약속을 지키기 않을 것이라는 의심을 갖도록 하는 신뢰 문제를 미국이 먼저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하이드 의원은 “북한 역시 신뢰 극복에 대한 책임이 있다. 특히 (북한이) 1994년 기본합의를 깬 이후 더더욱 그렇다”며 “북한의 7차례 미사일 발사는 (미국의) 신뢰보다는 근심을 쌓도록 하고 있다고 답했다”고 전보는 기록했다.
전보는 이에 “노 (대통령)이 미국은 (북한의 달러) 화폐위조와 마약밀수와 같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문제들‘(peripheral issues)에 주의를 돌리는 오류에서 벗어나야 한다. 북한은 본질적으로 미국 정부가 체제 교체를 추진하고 있다는 의심을 갖고 있다”며 “미국은 이러한 (북한의) 우려를 제거해야 한다. 미국 내에서도 미국 정부의 정책이 (북한) 체제 교체 또는 핵 문제 해결을 표적한 것인지에 대한 이견이 있다. 한국은 (대북) 압박 수단의 효율성에 의혹을 품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보는 그러자 “하이드 의원이 신뢰 구축은 중요하다”며 “하지만 미국과 한국이 압박과 대화를 모두 동원해 북한 문제 (해결)에 함께 노력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답했다”고 보고했다.
■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
노 대통령의 이 같은 대북 정책 입장은 3일 뒤인 2006년 8월13일 그가 한겨레, 경향, 서울신문 등을 포함해 자신에게 “우호적인”(friendly) 언론사 관계자들을 초청해 가진 만찬에서도 피력됐다.
주한 미국대사관이 당시 만찬에 참석했던 한 언론사 국장으로부터 입수한 녹취록에 근거해 같은 달 19일 워싱턴 D.C. 국부무에 보낸 전보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이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미국은 북한 체제 붕괴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의 입장을 전달하기가 어렵다”며 “또 다른 한 측면에서 북한은 ‘완고하다’(stubborn). 그 중간에 남한이 끼여 있다고 말했다.”
전보는 또 노 대통령이 북한 핵 프로그램에 대해 “북한의 위협은 핵 기술 문제보다는 북한과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 문제에 더 연관돼 있다”며 “북한 (핵 프로그램) 건은 인도의 것과 유사하다. 그런데 나는 왜 (북한은 보유가 불허되고) 인도는 핵무기 보유가 허용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더욱이 인도와 이란은 실제 핵무기 확보에 관심이 있고 북한은 핵 기술 판매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전보는 또 그가 “미국은 북한이 야만스럽다는 인식을 갖고 있고 야만인들에게 (예를 들어 민주, 시장경제와 같은) 문명 제도를 강압하려고 노력하는 듯하다”며 “그러나 여기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공평성’(fairness)에 대한 문제로 미국은 북(한)을 공평하게 취급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보고했다.
북한은 노 대통령이 미국 의회 대표단의 방문을 받은 뒤 2개월 뒤인 2006년 10월9일 첫 핵실험 성공을 공식 발표했으며 이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대북제재 결의 1718호를 채택했다.
한편 미국 의회 대표단과 노 대통령과의 청와대 면담에는 한국측에서 송민순 당시 대통령비서실 통일외교안보정책실 실장, 정태호 당시 노무현 대통령 대통령비서실 대변인, 조명균 당시 청와대 안보정책 비서관, 조태용 당시 외교통상부 북미국 국장이 참석했다고 주한 미국대사관 전문은 밝혔다. yishi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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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본부=신용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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