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트서 떼어내 소방대원들이 그라운드제로에 게양
▶ ‘테러와 희망의 상징’ 당시 사라진 후 안 나타나
2001년 9월11일 그라운드제로에 세워진 성조기의 이미지.<사진 Thomas E. Franklin>
허드슨 강변에 정박해있던 요트 ‘스타 오브 아메리카’. 오른쪽에 성조기가 걸려있다.
셜리 B. 드레이퍼스와 스피로스 E. 코펠라키스 부부가 요트에서 찍은 사진. <사진 Nicole Craine>
그 이미지는 전세계로 타전됐다. 2001년 9월11일,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잿더미 위에서 3명의 소방대원들이 성조기를 세우고 있는 한 장의 사진은 도저히 잊을 수 없는 테러의 상흔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런데 바로 그 직후, 사진 속에 등장했던 성조기는 사라져버렸다. 뉴욕시 관계자들은 이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지금, 바로 그 성조기가 다시 나타났다. 테러 15주년을 맞아 9.11 메모리얼 뮤지엄에 전시된 이 깃발은 그러나 그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미스터리가 지금껏 풀리지 않고 있다. 미동부에서 사라진 성조기가 미국 서북단의 워싱턴 주에서 발견됐으니 말이다.
2001년 9월11일 3명의 소방대원-빌리 아이젠그레인, 조지 존슨, 댄 맥윌리엄스는 허드슨 강변의 노스 코브에 정박해있던 요트 ‘스타 오브 아메리카’에서 대형 성조기를 떼어냈다. 그리고 그들이 이 성조기를 그라운드 제로에 세워 올리는 장면을 뉴저지 지역 신문사인 ‘더 레코드’의 사진기자 토마스 E. 프랭클린이 카메라에 담았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휘날리며 미국인들에게 테러의 상징으로 떠올랐던 성조기는 얼마 후 양키 스태디엄에 걸렸고, 해군 함정에 실렸다가, 2002년 시청으로 돌아왔다. 조지 파타키 주지사와 루돌프 줄리아니 시장, 마이클 블룸버그의 서명이 담긴 그 성조기는 그런데 자세히 조사해보니 바로 그 원래의 성조기가 아니었다. 요트에 걸렸던 성조기는 3x5 피트 짜리인데 서명들과 함께 돌아온 것은 5x8 피트였던 것이다.
그때 이후 그라운드 제로의 성조기 소재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13년이 지난 2014년 10월31일, 히스토리 채널의 계열사인 H2가 ‘브래드 멜처의 잃어버린 역사’(Brad Meltzer’s Lost History) 프로그램의 첫 에피소드로 이 성조기의 미스터리에 관해 방영했다. “현상 포스터 내걸듯이 그 성조기 이미지를 TV에 내보낸 것 뿐”이라고 멜처는 말했다.
4일후 한 남자가 플라스틱 백을 들고 워싱턴주 에버렛에 있는 소방서로 걸어 들어왔다. 그는 “TV 쇼를 보았는데 바로 그 성조기를 자기가 갖고 있는 거 같다”며 전달했다.
자기 이름을 브라이언이라고 소개한 그 남자는 자기가 중동 지역에 파견됐던 해병 출신이라면서 이 성조기는 미국해양대기관리처(National Oceanic and Atmospheric Administration)의 직원으로부터 전해 받았다고 소방대원들에게 이야기했다. 그에 따르면 NOAA의 직원은 9.11 테러 때 뉴욕에서 배우자를 잃은 미망인으로부터 깃발을 전해 받았다는 것이었다.
브라이언이라는 사람이 깃발을 전달할 당시 에버렛의 소방대원들이 실종된 9.11 성조기 스토리에 관해 알고 있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소방대원들은 성조기 반납이라는 점을 존중하여 핼야드(halyard, 깃발을 달거나 내릴 때 쓰는 밧줄)에서 풀어내 잘 접은 다음 상관에게 보고했다고 에버렛 소방국의 작전참모부장 마크 세인클레어는 말했다.
그리고 경찰의 수사가 시작됐다. 히스토리 채널의 수석 역사학자 킴 길모어는 “처음에는 평범한 성조기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게 바로 그라운드 제로의 그 성조기인지 규명하는 일에 많은 노력이 투입됐다”고 말했다.
세인클레어는 소방서 인근의 카메라 영상들과 성조기를 받은 소방대원들의 설명을 종합해 브라이언이라는 남자의 인상착의를 경찰과 지역 신문에 알려주었다. 그러나 그날 이후 그의 종적은 묘연한 상태다.
오는 11일은 미국 최악의 테러 공격 15주년 되는 날이다. 이날 히스토리 채널은 그 성조기의 귀환에 대한 특별 프로그램을 방영할 예정이다. 이 쇼에서 뉴욕경찰국 범죄정보과의 일원이며 2004년 은퇴한 존 W. 커터는 문제의 성조기가 테러 희생자 미망인에게서 전해졌다는 이야기를 부인하게 된다. 통상 장례식에서 사용되는 성조기는 아무런 끈이나 밧줄이 달려있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보아 해병 출신이라는 그 사람은 다른 방법으로 성조기를 갖게 됐을 가능성이 크며 그 사실이 알려지기를 두려워하는 것 같다”고 커터는 말했다.
성조기의 진위를 가려줄 또 다른 주요 인물은 입자확인 분야의 전문가인 워싱턴 주 과학수사연구소의 과학수사 재료 전문가 빌 슈넥이었다. 그는 성조기에 묻어있는 먼지 샘플과 9.11 이후 채취된 먼지 샘플을 비교했다. 그 먼지에는 콘크리트, 유리섬유, 플라스틱, 금속과 석면의 용해 입자들이 섞여 있다. 그의 분석으로는 이 성조기의 입자와 트윈타워 잔해에서 나온 입자가 같은 성질을 나타내고 있었다.
슈넥은 또한 성조기의 사진 대조작업도 확실하게 실시했다. 사진기자 프랭클린이 찍은 테러 당일의 이미지를 고해상도로 확대하여 워싱턴 주에서 나타난 깃발과 비교한 것이다. 두 개의 깃발은 같은 사이즈였고, 같은 재질로 만들어졌으며, 둘 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된 스냅, 특이한 매듭의 핼야드, 그리고 검은색 전선 테입으로 감겨져 있었다.
히스토리 채널은 당시 요트 ‘스타 오브 아메리카’에서 일했던 모니카 로제로를 찾아내 성조기의 식별을 부탁했다. 그녀는 깃발의 하드웨어와 로프를 금방 알아보았고 검은색 테입은 그 선박의 엔지니어였던 자기 남편 카를로스 로제로(2008년 사망)의 솜씨라고 말했다.
이 성조기가 바로 그 성조기라는 사실에 의심의 여지가 없어지자 깃발은 바로 뉴욕으로 보내졌다. 그러나 도대체 어떤 경로로 깃발이 대륙횡단을 하게 됐는지에 관해서는 아직도 의문이 풀리지 않고 있다.
성조기의 발견을 가장 먼저 통보받은 사람들 중에는 요트의 소유주 셜리 B. 드레이퍼스가 있다. 2008년 요트를 팔았다는 드레이퍼스는 “정말 놀라운 일”이라고 말하고 2년전 죽은 남편(스피로스 E. 코펠라키스)가 이 좋은 소식을 함께 듣지 못해서 유감이라고 슬퍼했다.
“그는 이 성조기를 세기의 아이콘이라고 불렀지요. 이 성조기야말로 그날 유일했던 희망의 상징이었으니까요”라고 말한 드레이퍼스와 성조기 값을 지불했던 보험회사는 새로 찾은 이 깃발을 9.11 추모박물관에 기증했다.
이 박물관의 최고 경영자인 조셉 C. 대니얼스는 “뮤지엄에 이 성조기가 없다는 사실 때문에 언제나 무엇인가 빠져있다는 느낌이었다. 이것은 희망의 상징일 뿐 아니라 힘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때 우리에겐 그 둘 다 절실했었다”고 감격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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