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17 도전하는 리더들, 시대정신을 말하다
▶ (1)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김부겸표의 정치’의 핵심으로 통합을 강조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공존의 공화국을 꿈꿉니다”
50대 차기 대선 잠룡들 가운데 ‘맏형’으로 꼽히는 김부겸(58)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날로 심화하고 있는 우리사회 세대ㆍ계층 갈등에 대해 “정치권이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내년 대선에서 의외의 인물에 의한, 의외의 주장들이 각광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국회 의원회관에서 가진 한국일보, 김호기 연세대 교수와의 대담에서 “그 동안 참아왔던 분노, 특히 젊은이들에게 무기력을 강요하는 사회에 대한 불만이 대선에서 나타날 수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해법을 찾지 못하면, 급진적 제안이나 포퓰리즘이 분출할 것이란 진단이다.
본보 기획 ‘2017년 도전하는 리더들, 시대정신을 말하다’의 첫 주자로 나선 김 의원은 산업화 30년, 민주화 3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시대정신으로 ‘공존의 공화국’을 제시했다. 사회적 강자와 약자, 부자와 빈자가 서로 인정하고 어울려 사는 ‘공동체’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추구하는 ‘김부겸표 정치’의 핵심도 통합을 이뤄내는 정치인이라고 했다. 그 연장선에서 여야의 화두인 경제민주화와 경제활성화의 문제도 분리하지 않고 함께 풀어가야 할 과제라며, 중도적 입장을 취했다. 경제민주화만 가지고 저성장 문제를 풀 수 없다는 뜻이다.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를 참관하고 돌아온 김 의원은 “미국의 단결ㆍ통합을 강조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에서 오히려 세대ㆍ계층 갈등을 치유해야 한다는 절박감을 더 느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지역주의를 허문 정치인’이란 평가에 대해 “국민들이 지역정당 구도에서 희망을 찾지 못한 결과”라며, 달라진 표심의 선택임을 강조했다.
내년 대선과 관련해선, 여권이 결국 1명의 후보를 낼 것이기 때문에 야권이 분열해선 안 된다고 했다. 야권이 후보 단일화를 못하면 정권교체에 실패한 1987년의 대선 결과가 반복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대구에서 31년 만에 정통 야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소감을 말해 달라.
▲두 분의 정치적 스승께 마음의 빚을 조금은 갚았다는 기분이 든다. 고 제정구 의원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민주당이 분당됐을 때(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계에 복귀하면서 1995년 새천년민주당과 민주당으로 분당됐다)부터 두 선배들은 ‘지역주의 정당 극복’을 외치며 처절히 부딪히고 도전했는데, 이제서야 그 분들에게 ‘제가 숙제 좀 한 것 같습니다’라고 외칠 수 있게 됐다.
-87년 체제의 그늘인 지역주의 정치를 허무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국민들이 지역정당 구도로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절박감을 가진 걸로 본다. 이번 선거에서 더민주 후보가 영남에서 아홉 분 당선됐다. 제가 일종의 계기는 만든 게 아니겠나.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호남 출신의 이정현 의원이 새로운 당 대표로 선출된 것을 평가해 달라.
▲양면적인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새누리당도 지역주의 해체에 나섰다는 의미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박근혜 대통령의 친정체제로 내년 대선 국면에 임하겠다는 의미여서, 향후 여야관계가 대통령의 의중에 묶여 경직되지 않을까 걱정도 갖고 있다.
-당 대표 선거에 안 나갔다. 대선에 출마하는 건가.
▲대선이라는 게 내 권력의지만 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느냐의 문제 다. 저에 대한 성찰과 함께 각 분야 전문가들의 얘기를 듣고 있다. 제 자신의 열망과 그 분들의 고견이 스파크를 일으킬 때 말씀 드리겠다.
-산업화 30년, 민주화 30년이 지났다. 민주화와 산업화 이후의 시대정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또 김 의원이 꿈꾸는 대한민국은 무엇인가.
▲공존의 정치, 공존의 공화국이다. 그 동안 공존이라 하면 ‘맥 빠진 섞어찌개다’ 하는 오해가 있었다. 사회적 강자와 약자, 부자와 빈자, 기회를 잡은 세대와 그렇지 못한 세대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어울려 사는 공동체가 공존의 공화국이다. 그 동안 철저하게 개인의 성공, 개인의 성취에만 모든 것이 집중되다 보니 무한경쟁으로 모두 다 불행해졌다. 공공성과 연대성이 뒷받침 해주는 그런 공동체로 가야 한다.
-지난해 한국사회를 흔들었던 말이 ‘헬조선’, ‘수저계급론’, ‘각자도생’ 같은 것이었다. 공존의 공화국으로 가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은 있는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문제, 노사문제, 그 다음 국가가 어디까지 선한 개입자가 될 것인지의 문제 등 몇 가지 분야에서 큰 틀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가령‘동일노동에서 동일임금이 왜 보장되어야 하는가’라는 문제도 그렇다. 도저히 감당 안 되는 사교육 문제를 두고선 진보와 보수의 해법이 크게 다르지 않다.
-공존의 공화국을 위해선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지만 현실에선 쉽지 않다. 예를 들어 19대 국회의 마지막 과제 중 하나인 노동법 개정도 결국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그때도 노동계의 대표성을 가진 그룹이 협상장에 안 나왔다. 정부가 일방적인 목표를 정해놓고 끌고 갔기 때문이다. 사회적 대타협을 택할 때는 정부ㆍ여당이 일방적으로 끌고 가선 안 된다. 이해당사자들로 하여금 이제는 정직하게 국민들 앞에서 자신의 처지를 진술하고 타협점을 찾아가도록 해야 한다.
-국민들은 김 의원을 ‘온건 진보적 정치인’으로 보는 것 같다. 김 의원에게 진보란 어떤 의미인가.
▲제가 학생 때 시국사범으로 세 번 구속됐는데 그 시기 살던 젊은이들이 가진 정의감보다 조금 더 나간 수준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제도 정치권에 들어오니까 국민들이 정치인에게 요구하고 바라는 것은 이념적 선명성보다는 책임감인 것 같다.
-그게 막스 베버가 말한 신념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책임 윤리’다.
▲저의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려면 상대편을 배제하는 게 아니라 설득하고 포용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는 판단을 했다. 그러다 보니 가끔씩 맹탕이라는 비난도 많이 받지만, 그렇지 않고 현실을 한 단계 진전시킨다는 건 쉽지 않다. 정치인은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같이 갖춰야 한다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씀이 더 와 닿는다.
-김대중ㆍ노무현ㆍ제정구 외에 김 의원에게 영향을 미친 정치인이 있나.
▲중국의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를 존경한다. 자기 공동체, 민족에 대한 두터운 신뢰와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처럼 정치하면서 국민에게 사랑과 신뢰를 받는다는 것, 그 이상의 영광이 어디 있겠는가.
-현재 한국경제가 부딪힌 최대의 문제는 저성장과 불평등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저성장과 관련해선, 대기업 수출 주도와 제조업 중심의 성장, 이를 통한 낙수효과 패러다임이 이제 한계에 왔다. 수출에 어려움이 생기면 버틸 수 있는 내수라는 버퍼존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 쓰는 것으로 간주됐던 내수 소비, 가계 지원, 젊은 층에 대한 사회적 부조를 비용으로만 생각해선 안 된다. 분배의 축과 함께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사회의 복지를 중(中) 정도의 복지로 올려야 한다.
-중(中)부담ㆍ중(中)복지를 말하는 건가.
▲그렇다. 부담할 여력이 있는 쪽부터 부담을 하되, 그간 면세 지점에 해당했던, 형편이 조금 어려운 쪽도 좀 더 부담하고 형편이 되는 쪽은 더 큰 부담을 해야 한다. 그 정도의 사회설계를 해야 저성장 시대에서 버틸 수 있다.
-4ㆍ13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경제활성화, 더민주는 경제민주화를 시대정신으로 제시했다. 경제활성화만 가지고 불평등 문제를, 경제민주화만 가지고 저성장 문제를 과연 풀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두 가지를 다 해야 한다. 일자리를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성장이다. 다만 옛날처럼 수출 위주, 대기업 위주론 안 된다는 거다. 그동안 사회적 경제도 해보고 공유경제라는 새로운 흐름도 받아들였는데 아직까지 경제 운용의 축을 바꿀 만큼은 발견하지 못했다. 경제활성화와 경제민주화를 결합해야 하는데, 어떤 형태로 표현할지는 고민 중이다.
-최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결정으로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김 의원이 구상하는 한반도 외교ㆍ안보 정책의 기본 방향은 무엇인가.
▲이런 상황을 초래한 원인은 북한의 핵개발 능력과 의지, 그리고 미사일 능력의 강화다. 사드의 효용성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북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무기체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국민들이 상당 부분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저는 사드 배치를 반대한다. 하지만 한쪽만 볼 수 없는 게 우리 현실이다. 가장 큰 경제 파트너인 중국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채찍과 당근을 동시에 활용해야 할 텐데.
▲북핵 제재가 효과를 발휘하려면 중국의 동참이 필요하다. 중국이 제재에서 발을 뺄 명분을 주는 것은 국익과는 맞지 않다. 일부 언론은 더민주 의원들이 중국에 가는 걸 폄하하는데 그럼 중국을 다시는 안 볼 건가. 정부 혼자 끙끙대지 말고, 야당의 반대 목소리도 얼마든지 카드로 써야 한다.
-박근혜정부는 어떻게 평가하나.
▲많이 실망스럽다. 국가운영을 큰 틀에서 전개할 거라 기대했는데, 그간 인사를 보면 ‘어떻게 저런 사람만 주변에 있나’ 할 정도다. 다른 하나는 남북관계인데, 집권 초기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발표해 이명박정부와 다르게 유연하게 풀어갈 것이란 기대를 했었지만 지금은 어떤가.”
-학계에서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나름의 평가는 있었다.
▲그런 기대도 했지만 북한 정권 붕괴론, 통일대박론으로 가더니 지금은 대책 없이 북핵ㆍ 미사일 문제에 대응해 한반도 긴장만 잔뜩 높여놨다.
-20대 국회의 3당 구도는 어떻게 전망하나.
▲현재 양당제로는 국민의 다양한 정치적 의사를 반영할 수 없다. 그렇다 보니 여의도 정치와 국민들이 원하는 정치에 늘 간극이 생기고 정치에 대한 불신은 강화된다. 국민이 오죽했으면 3당 구도로 바꾸었을까 생각한다.
-개헌에 대한 입장은.
▲제7공화국을 여는 심정으로 논의를 빨리 준비해야 한다. 정확히 얘기하면 청년들을 위한,다음 세대를 위한 대한민국을 준비해야 한다. 이제는 권력구조뿐 아니라 기본권, 지방분권 등을 아우르는 제도로 만들어야 한다. 욕심 같아선 새 헌법이 다음 대선 전에 확정이 되었으면 한다.
-내년 대선은 어떻게 전망하나.
▲여권은 혼란을 겪겠지만 결국은 한 명의 후보를 낼 것이다. 야권은 분열돼선 어렵다. 6ㆍ10 항쟁의 열기 속에서 치러진 선거에서도 분열해서 지지 않았나. 당시 제5공화국의 후예인 노태우씨가 대통령이 되리라 생각도 안 했고, 되어서도 안 된다 생각하지 않았나.
-김 의원은 민주화 시대의 적자라고 표현할 수 있을 거 같다. ‘김부겸표 정치’의 핵심은 무엇인가.
▲통합을 이뤄내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 지금처럼 증오와 불신의 정치를 끝내고 그러면서 미래로 가기 위한 통합의 에너지를 만들고 싶다. 그 과정에서 제 힘이 부족하면 여러 사람들과 힘을 합칠 것이다.
<대담=김호기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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