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 한잔의 초대/ 진봉일 댄스강사• 대뉴욕지구 서울대동창회 수석고문
서울공대 출신이 춤선생으로 신나는 노후
한국과 스텝 달라 기초부터 다시 배워
한인사회 행사마다 댄스리드 ‘유명인사’
85세를 58세처럼 젊게 사는 비결
서울공대 건축과 출신이 춤선생? 이 잘 안맞는 조합을 자신의 삶에 조화시키며 사는 이가 있다. 진봉일은 전 뉴욕시 교육공무원이자 40년이상 댄스 강사로 뉴욕한인들에게 즐거운 삶을 선사하고 있다.
●외교관의 꿈이 교사로
올해로 뉴욕생활 41년이 된 진봉일, 그가 대학 동창회나 결혼식 2부 행사에서 댄스를 리드하는 모습을 보인 지 수십년, 한인들에게 유명인사다. 그에게는 하루 24시간, 일주일이 짧다. 자연히 나이를 먹을 틈이 없다.
진봉일은 1931년 4월 10일 인천에서 진학성•윤음전씨의 2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정치외교학과를 나와 외교관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아버님의 간곡한 권유로 서울대 공과대학 건축공학과를 가게되었다. ”
그런데 대학 3학년 재학 중 한 친구가 자기가 여학교 수학선생으로 부임하게 됐는데 갑자기 유럽으로 유학 가게 되었다며 한학기만 맡아달라고 한 것이 삶의 방향을 바꿔놓고 말았다.
인천여자상업고등학교의 젊고 잘생긴 남자 선생 진봉일은 여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 하다 보니 어느새 10년 세월이 훌쩍 지나고 말았다고 한다. 그새 1950년대 초반에 대학을 졸업한 건축과 동기들은 전부 일류 건축가가 되어 활동하고 있었다. “더 늦기 전에 전공분야로 돌아가야겠다 싶어 성동공업고등학교 건축과 교사로 전근해 갔다.”
●일장춘몽
이때 그는 인생 최고의 기회와 부딪친다. 60년대 말 어느 날, 창경원에 갔다가 관광 온 일본 구주산업대학 학생들을 만나게 돼 관광 안내를 해주었더니 그들이 그를 일본에 초청했다. 일본 여행 중 규슈 남부의 가고시마에서 거부가 된 인천중학교 동창생을 만나게 된 것이다.
“고향 인천에 한국 최고의 호텔을 지을테니 설계, 시공, 운영까지 모두 다 맡아 관리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큰 꿈을 안고 귀국했는데 70년대 일본에 오일 쇼크에 이어 금융혁명이 일어나면서 일체 외국으로 자본이 나가지 못하게 돼 일장춘몽(一場春夢)이 되고 말았다.”
이 일은 한국에서의 많은 것을 포기하게 했고 1974년 진봉일은 미국으로 이민 온다. 처음 메릴랜드에서 매제가 하던 델리를 맡아서 했으나 장소가 너무 외져서 장사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뉴욕으로 왔다. 택시 운전을 하면서 한밤중에 할렘으로 가자는 흑인에게 겁먹어 다음 직업으로 택한 것이 야채가게. 쓰레기를 버리다가 같이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등 도저히 힘이 부쳐서 이 일도 포기하고 찾아간 곳은 이민국이다.
“일본말을 잘 하니 그날로 채용이 되어 위장결혼 면담 일을 했는데 남자와 여자를 각각 인터뷰하면서 서로 말이 달라 이것을 적발하는 일을 하다 보니 못할 일이다 싶었다.
●뉴욕시 교육공무원과 댄스교사
그래서 진봉일은 1977~78년 뉴저지 세톤 홀 유니버시티 (Seton Hall University)에서 일본어 이중언어 석사학위를 받았고 부임한 곳이 뉴타운 고교(Community Liaison& Family worker)이다. 1982년까지 7~8년간 뉴타운•플러싱•존바운ㆍ브라이언트 고교 등에서 한인학생, 학부모, 학교와의 다리 역할을 했다.
1985~1987년 인터내셔널스쿨 237ㆍ퍼블릭스쿨 11의 이중언어교사, 1987~1997년 뉴저지 SKC 아메리카 세일즈 일도 했다. 그는 뉴욕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낮에는 공립학교 교사, 저녁에는 볼룸 댄스를 2~3년간 배우면서 이민 1세들에게 가르치는 생활을 시작했다.
1976~79년 플러싱 YMCA, 1980~1989년 맨하탄 머레이 카소브 댄스 스튜디오, 1987~1997년 뉴저지 AWCA 댄스스튜디오의 강사 등을 거쳐 현재는 뉴타운고 동료 교사 천취자씨가 운영하는 천 갤러리 문화센터에서 1주일에 두 번 웨딩댄스와 볼룸댄스를 가르치고 있다.
“서울 공대 졸업반 파티에서 여학생에게 춤을 권했다가 춤을 못춘다고 단칼에 거절당했다. 그후 한국에서 춤을 배웠었다. 미국학교 교사를 하면서 방과후 틈만 나면 맨하탄 댄스학원으로 달려갔다. 한국과 미국의 볼룸 댄스 스텝이 달라 기초부터 다시 배웠다.”
1975년즈음 진봉일이 브로드웨이의 호텔로 춤을 배우러 가면 당시 브로드웨이 한인상가에선 비즈니스가 한창이었다. 남들은 돈 벌 때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댄스 스텝을 밟았다.
●순간을 충실하게
“미국에서 살자면 전문직이나 비즈니스 둘 중 하나를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보니 일생 무일푼으로 살고 있다.”
비록 돈은 못벌었지만 그는 신랑신부와 결혼식 앞둔 자녀를 둔 노부부 등 수백 명의 한인들에게 춤을 가르치고 ‘진봉일과 함께 배우는 댄스’ 시간을 통해 멋진 결혼식, 잊지못할 댄스의 추억을 선사해오고 있다.
“처음에는 공과대학 무용학과 출신이냐며 손가락질도 하고, 놀리는 사람도 있었다. 요즘은 많이 나아졌고 일부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다. 한인들도 미국 생활에 댄스가 필수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진봉일은 인생관이 바뀌는 순간이 있었다고 한다.
“지난 80년 남동생이 메릴랜드 주말농장에서 일하다가 한 여자의 실수로 차 사이에 끼어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장례식에 옷을 입히려고 옷장을 열어보니 한 번도 입지 않은 신사복 10벌이 그대로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슬프고도 허무했다. 1주일을 풀타임으로 근무하면서 주말도 쉬지 못하고 매일 작업복만 입다가 떠난 것이다.
이때부터 인생관이 바뀌었다. 순간, 순간을 충실하게, 멋지게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이후 사망한 동생 진봉군의 절친한 친구 이상용은 현재 세탁소를 하고 있는데 30여년간 한결같이 그를 형님으로 깍듯이 대접하여 그는 늘 감동스럽다고 한다.
●나이 80대, 마음 50대
진봉일은 팍스트로트, 스윙, 왈츠, 탱고, 룸바, 살사, 허슬러와 삼바 등 다양한 춤을 모두 가르치나 개인적으로 탱고 음악을 들으면 무아지경에 빠진다고 한다.
“동남아 일대 유람선을 탔을 때다. 낮에 수영장에서 만난 30대 콜럼비아 여자에게 30분간 탱고를 가르쳤다. 그날 저녁 유람선 특기대회에서 그 파트너와 한시간동안 열정적으로 춤을 추며 1등을 차지, 승객들의 환호성을 잊을 수가 없다. 한시간이 1분과 같았다. 내나이 80대였다. ”
진봉일•진명숙 부부는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으며 아들은 컴퓨터 프로그래머, 딸은 은행원이며 손자1, 손녀 2를 두었다. 댄스 강사인 그는 아내의 내조를 받았을까?
“처음에는 파티에 갔다 오면 부부싸움을 했다. 춤을 가르친 남편들이 우리 와이프와 한번 춰달라고 서로 권해 아내는 혼자 멍하니 있다가 오기 일쑤였다. 나중에야 친구 부인이 춤을 추니까 건강해졌다며 춤을 배워보라고 권하니 그때부터 아내도 춤을 배웠고 이해를 했다.”
●낮엔 골프, 밤엔 춤을
진봉일은 대뉴욕지구서울대 동창회장, 서울공대동창회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대뉴욕지구 서울대학교 동창회 수석고문이다. 그에게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이 있을 법하다.
“외교관이 되었더라면 반기문 유엔사무총장만큼은 안되어도 출세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댄스강사를 함으로써 이 나이에도 건강하게 살고 있지 않은가. ”
그는 댄스와 골프로 건강을 유지해 오고 있다.
“15년 전 대장암 수술을 하고 골프를 치면서 완쾌되었다. 5년 전에는 위암 수술을 했는데 춤을 추면서 다 나았다. 늙을수록 운동을 해야 한다. 노인네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나이가 들수록 용모를 단정히 하고 말하기보다 듣기를 많이 해야 한다. ”
7~8년 전부터는 클리어뷰 골프장에서 ‘대사(Ambassdor)' 칭호인 레인저( Ranger)로 일주일에 이틀간 일한다. 무보수 봉사직인데 골프를 자유로 칠 수 있다.“골프 치는 사람이 볼룸댄스를 배우면 허리의 유연성이 향상돼 핸디를 크게 줄일 수 있다. 낮에 골프 치고 밤에 춤춰 보라. 하루하루가 멋있어진다.” 그의 하루, 하루는 골프가 있어 마음이 열리고 음악이 있어 마음보다 몸이 먼저 움직인다. 나이 85세를 거꾸로 58세, ‘젊은 오빠’로 살아가고 있으니 이만 하면 인생, 충만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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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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