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걸 그룹에 대한 기대가 교차한 한 주였다. 뜨거운 화제를 모으며 화려하게 데뷔한 '구구단'과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소나무'가 두 주인공이다. 한 팀은 실망을, 한 팀은 희망을 보여줬지만 어쨌든 두 팀 모두 이제 시작이다. 새 앨범을 발판으로 딛고 서 있는 두 팀의 현재를 짚었다.
■좋은 재료로 만든 망작=구구단 'Act.1 The Little Mermaid'
완벽하게 기대 이하다. 박효신, 성시경, 빅스 등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소속된 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에서 내 놓는 첫 걸 그룹인데다, 화제의 프로그램 엠넷 ‘프로듀스101'로 선발된 프로젝트 그룹 ‘아이오아이(I.O.I)'의 멤버 두 명이 포함된 팀이라는 것만으로 상반기 최고의 ‘핫 데뷔'가 될 뻔 했다.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28일 발표한 그룹 ‘구구단'의 첫 번째 미니앨범 ‘액트 원. 더 리틀 머메이드(Act.1 The Little Mermaid)'는 유명한 드라마 대사처럼 ‘이게 최선입니까?'라고 되묻게 만드는 앨범이다. 101명 사이에서도 실력으로 돋보여 ‘갓세정'이라고 불렸던 그 김세정과, 눈웃음을 띈 등장만으로 안방 시청자를 녹였던 강미나까지 묻어버렸다.
다소 당황스럽기까지 한 팀 이름 ‘구구단'의 의미는 극단이다. 동화, 연극, 영화 등 다양한 작품을 무대 위에서 재해석하는 팀이다. 그 첫 작품으로는 인어공주를 택했다.
사람이 되는 꿈을 이루는 인어공주에서 가수가 되는 꿈을 이룬 구구단 멤버들과의 공통점을 찾았다.
의미는 좋지만 거기까지다. 콘텐츠 없는 콘셉트는 허망할 뿐이다. 타이틀 곡 ‘원더랜드(Wonderland)'는 어수선하고 지루하다. ‘소녀소녀함'으로 통일성을 주입한 노래는 다른 수록곡에서 언뜻 들리는 디바형 파워보컬까지 묻어버리며 ‘그 사람이 그 사람' 같은 몰개성한 음색을 만들어 냈다.
인어를 모티프로 한 흐느적거리는 안무는 보는 사람을 더욱 정신없게 만든다. 인어공주를 제대로 표현했다고 할만 한건 반짝거리는 비닐 의상 정도다. 이쯤 되면 ‘콘셉트돌'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한 소속사 선배 그룹 빅스의 성공은 전략이 아닌 우연이었나 싶을 정도다.
그럼에도 앨범 초도물량 1만 장을 완판하고, 음반 판매 사이트 상위권, 음원사이트 실시간 차트에서 100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건 멤버들이 가진 매력의 힘이다. ‘프로듀스101'로 먼저 보여준 게 다행이었다.
이제 막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지만 벌써 다음 앨범을 기다리게 되는 마음을 설명하는 단어는 ‘차라리'다.
제 몫을 다하기 위해 방긋방긋 웃는 아홉 명의 소녀들은 죄가 없다. 다음 앨범은 좀 나아야 할 텐데, 그럴 수 있을까. 이대로라면 아니다.
■좋은 재료로 마침내 만들어 낸 수작=소나무 '넘나 좋은 것'
완벽하게 기대 이상이다. 걸스 힙합을 내세우며 데뷔한 그룹 ‘소나무'가 이번에는 밝고 귀여운 소녀감성으로 컴백한다고 했을 때 ‘대중성과의 영합'이나 ‘시장과의 타협' 따위의 말을 떠올렸던 것을 반성하게 만드는 앨범이다.
지난 29일 ‘소나무'가 발표한 세 번째 미니앨범 ‘넘나 좋은 것'은 2014년 데뷔한 뒤 이렇다 할 성과가 없던 이들에게 확실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팀의 색을 유지하면서도 대중성을 덧입히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산 증거다.
동명의 타이틀 곡 ‘넘나 좋은 것'은 사랑에 흠뻑 빠져 어쩔 줄 몰라 하는 소녀의 마음을 표현한 노래다. 유행어 ‘넘나 ~한 것'을 가사에 차용한 것은 신의 한 수다. 지금까지 유행어나 신조어를 노래 가사에 쓴 경우는 많았지만 왜인지 유행에 뒤처진 사람이 애쓰는 느낌만 줬을 뿐, 이렇게 노래에 찰떡같이 붙는 건 전무했다. ‘넘나 좋은 것'에서는 다르다. 후렴구에서 세 번이나 반복되는 ‘넘나'가 강하게 귀에 꽂히며 머리를 떠나지 않는 훅을 만든다.
‘소녀소녀함'을 콘셉트로 잡았지만 여전한 개성이 살아있는 것도 재미있는 포인트다. 청아한 미성이 돋보이는 도입부의 민재부터 톡톡 튀는 래퍼 뉴썬과 중저음의 안정적인 래퍼 디애나까지 쉴 새 없이 변주하는 노래를 받쳐주며 지루하지 않은 한 곡을 만든다.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담은 수록곡의 스토리텔링과 퀄리티도 훌륭하다. 특히 수록곡 ‘비에프(B.F)'의 작사·작곡·편곡에 모두 참여한 막내 래퍼 뉴썬의 실력이 발군이다. 1년 동안 긴 공백을 가졌지만 이 정도 성장이라면 납득할 수밖에 없다.
소속사 선배 그룹 ‘시크릿'의 전성기 이후 이렇다 할 걸 그룹 주자가 없던 TS엔터테인먼트에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사이, 소나무는 무럭무럭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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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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