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미국 인구센서스가 실시되고 있을 때 인구통계 전문가인 피터 프랜시스는 이런 말을 했다. “이번 센서스에서 미국 인구는 3억900만명으로 집계될 것이다. 그런데 한 명이 실종된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프랜시스가 언급한 그 한 명이란 ‘전형적인 미국인’이었다. 사회가 다양화되면서 이제는 ‘전형적’이란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미국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전형적 미국인이 사라졌다면 ‘전형적 가정’ 또한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게 당연하다.
미국인들의 가정형태는 날이 갈수록 세분화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동성 간 결혼을 합법화하는 법원 판결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그 형태는 한층 더 다양해지고 있다. 이전에는 용인받기 힘들었던 새로운 모습의 가정들이 법적, 사회적으로 당당히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고리타분한 생각으로 다른 가정들을 바라보면서 차별하는 시선 또한 여전히 존재한다. 최근 한국의 한 개그맨이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이혼가정 아이들을 조롱하고 비하하는 내용의 개그를 했다가 혼쭐이 났다. 방송이 나간 후 한 시민단체가 개그맨과 방송사를 고소했다. 사태는 당사자들의 사과와 시민단체의 소 취하로 일단락 됐지만 한국사회의 이혼가정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여전함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해프닝이었다.
남녀가 결혼을 해 아이를 낳고 이루는 가정만이 전형적이고 제대로 된 가정이라는 고정관념은 아직까지도 뿌리 깊게 남아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가정이 다수의 자리에서 내려온 지는 이미 오래다. 지난 2010년 미국 센서스만 살펴봐도 금방 확인된다.
양쪽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이른바 ‘전형적인 가정’은 전체의 4분의 1도 되지 않았다. 한쪽 부모만 있는 편부모 가정은 말할 것도 없고 이성동거, 그리고 동성결혼 가정 등도 갈수록 늘고 있는 추세다. 여기에다 요즘은 자발적 의사에 따라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사는 ‘비혼 독신’도 하나의 선택으로 존중받고 있으니 이 또한 새로운 형태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듣기 힘들어졌지만 얼마 전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되던 ‘결손가정’이라는 어휘에는 시대착오적인 차별의식이 배어있다. ‘결손’(缺損)은 ‘어느 부분이 없거나 잘못되어서 불완전함’이라는 뜻이다. 이 낱말 속에는 부모 가운데 어느 한쪽이 없는 경우를 결함으로 보는 관점이 담겨 있다.
그런데도 한국의 교실에서는 “한쪽 부모가 없는 집 손들어 보라”는 식의, 인권감수성이라곤 도무지 찾아 볼 수 없는 질문이 아무렇지도 않게 던져지곤 했다. 이번에 말썽을 일으킨 개그는 그런 흔적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군대에 입대하는 편부모 가정 출신 사병들은 주의를 기울여 관찰해야 하는, 이른바 ‘관심사병’으로 분류된다. 정상가정 이데올로기에 비롯된 명백한 인권침해다.
가톨릭은 이혼에 대해 상당히 엄격하다. 그럼에도 최근 변화의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달 256페이지에 달하는 권고문을 통해 이혼가정과 동성애자들, 그리고 이성 동거커플들에 대해 좀 더 열린 마음을 가져줄 것을 사제들에게 주문했다. 엄격한 도덕적 규범을 들이대며 정죄하지 말라고 당부한 것이다.
다수인 것이 정상적인 것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더 이상 기존의 ‘정상적 가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상적 가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비정상 가정이란 것도 없는 셈이다. 그런 만큼 가정의 형태를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과 생각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자신이 어떤 형태의 가정에 속해 있든 관계없이 모두가 다 각자의 소중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는 것이다. 가정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끈질기게 구분하려 드는 낡은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는 5월 ‘가정의 달’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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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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