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벽화 192점 지도 작성·압축 ‘지오그래픽 프로파일링’ 활용
▶ “로빈 거닝햄 거의 확실” 결론

거리의 화가 뱅크시의 작품들. 유머와 익살,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그의 낙서들에서는 웃음과 함께 진한 페이소스도 느껴진다. <사진 banksy.co.uk>
■ 영국서 끈질긴 추적 끝 단서 포착
신출귀몰한 익명의 낙서화가 뱅크시(Banksy)의 신원이 밝혀진 것으로 보인다.
영국의 퀸메리 대학교 연구진이 지난 주 과학전문지 ‘공간과학지’에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유명 그래피티 예술가 뱅크시는 영국의 예술가 로빈 거닝햄(Robin Gunningham)임이 거의 확실하다. 그는 이미 영국 데일리 메일이 2008년에 뱅크시의 실제인물이라고 보도한 이후 줄곧 유력하게 거론되어온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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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시와 거닝햄 가족은 그 연관성을 부인하고 나섰다. 뱅크시 대변인은 웹사이트를 통해 부인 코멘트를 전했다. 그러나 거닝햄 본인으로부터는 아무런 코멘트도 나오지 않고 있다. 그는 등록된 전화번호가 없고 가장 최근 것으로 나와 있는 런던의 주소는 10여년 전의 것이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에서 형사 범죄사건을 조사할 때 사용하는 ‘지오그래픽 프로파일링’(geographic profiling) 기법을 활용했다. 이 연구에 참여한 4명의 학자 중 한명이며, 1990년대 경찰 조사관으로 일하면서 수사에 지리적 프로파일링을 도입한 선구자로 꼽히는 미국 텍사스대학의 교수 킴 로스모(Kim Rossmo) 박사는 거닝햄이 ‘탁월한 혐의자’라고 말하고 “그는 두 개의 전혀 다른 도시에서 뱅크시와 연관성을 드러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이 사용한 지리학적 프로파일링은 경찰에서 범인을 잡기 위해 사용해오던 기술로, 범죄자가 살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도시의 집, 사무실 같은 고정 지점을 축으로 범죄가 그 주변으로 확산한다고 가정한다. 이 방법은 사건을 해결하지는 못하지만 수사관들이 혐의자 리스트를 좁혀나가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연구진은 런던과 브리스톨에 그려진 뱅크시의 거리 벽화 192점을 찾아내 지도를 작성했다. 이 두 지역은 뱅크시가 성장한 곳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이 가운데 그가 살았을 것으로 보이는 런던의 3개 주택과 브리스톨의 4개 장소(그가 살았던 집, 다녔던 학교, 축구를 했던 운동장 등)가 거닝햄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오그래픽 프로파일링’은 LA 경찰국과 알콜담배총기국 등 사법집행 기관 및 미해병대 등지에서 도입해 사용하고 기법이다. 그러나 최근 전염병 추적은 물론, 테러범 색출작업에 활용되는 등 그 사용범위가 계속 넓어지고 있다.
닥터 르카머와 닥터 로스모는 자신들의 연구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는지 깜짝 놀랐다면서 그러나 자신들이 “뱅크시를 아웃시켰다”든가 숫자놀이로 프라이버시를 침해했다는 비난에는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또한 자신들이 뱅크시의 신원을 증명했다는 식의 신문 헤드라인들도 달갑지 않다고 말한 닥터 로스모는 “우리가 걱정했던 바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며 무엇을 믿어야할지 알기란 어려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누구를 믿는가에 따라 뱅크시 신원에 대한 미스터리는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데일리 메일은 이미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데일리 메일이 찾아낸 뱅크시의 아이덴티티를 과학자들이 옳다고 인정했다”는 헤드라인과 함께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로빈 거닝햄이라는 우리의 발견을 하이테크 도구가 확인해준 것”이라는 자랑도 곁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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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테러리스트’ 뱅크시는
얼굴없는 거리의 화가 뱅크시는 스스로를 ‘예술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면서 영국을 중심으로 세계 각지에 파격적인 내용의 그래피티 작품들을 발표해와 세계적으로 엄청난 추종자를 가진 아티스트다.
20여년 전부터 런던과 브리스톨을 비롯해 세계 여러 도시의 건물이나 벽에 특이하고 재미있는 낙서와 그림을 남겨 유명해졌다. 그의 그림에는 깜짝 놀랄만한 익살과 유머, 사회적 메시지와 풍자가 있어 인기가 높다. 거장들의 명화를 패러디한 작품을 루브르나 영국박물관에 잠입해 몰래 걸어놓고 사라지는 악동 같은 일도 했다.
최근 들어서는 국제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주제로 한 작업이 많아졌다. 특히 시리아, 이라크 등으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난민들을 주제로 심각하면서도 영향력 있는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자본주의, 기득권, 소비주의, 상업주의, 권위 등에 반대하는 의미가 담긴 그의 그림들은 사람들을 웃음 짓게 하면서도 동시에 페이소스가 느껴지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하룻 밤새 갑자기 등장하는 뱅크시의 낙서는 이제 인기가 너무 높아 아무도 이걸 낙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벽에 그려지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며, 그림이 그려진 벽을 통째로 떼어다 전시하기도 하고 거액에 팔기도 하는 일까지 일어나고 있다.
낙서는 물론 불법이다. 그래서 뱅크시는 들키지 않기 위해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만반의 준비를 갖춘 후 전광석화처럼 나타나 평균 35초만에 낙서를 완성하고 사라진다. 그는 이런 일을 25년간이나 해왔지만 한번도 경찰에 잡혀본 일이 없다. 이런 주도면밀함 때문에 한 사람이 아니라 팀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무성하다.
뱅크시의 작품은 워낙 위작도 많지만 그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있으며 자신의 작품은 공식 웹사이트(banksy.co.uk)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익명이지만 언론사와 인터뷰를 가진 적이 있다. 영국 온라인 뉴스 사이트 ‘가디언 언리미티드’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1974년생이며, 백인이고, 브리스톨 시에서 태어났으며,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14세부터 낙서화를 시작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 뱅크시의 신분이 거의 밝혀짐에 따라 향후 그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지오그래픽 프로파일링’의 검색 추정 결과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그에 관한 작품이 나오지 않을지 사람들은 궁금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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